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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 요시다 시게루 그리고 시진핑
후쿠자와 유키치, 요시다 시게루 그리고 시진핑
  • 최익현
  • 승인 2023.07.03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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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전환기 동아시아 인식에 관한 비판적 성찰’ 학술회의

좋은 물음(질문)이 좋은 대답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회장 강상규 방송대 교수)가 지난달 24일 대학로 방송대 대학본부 3층 소강당에서 진행한 학술회의가 여기에 딱 맞는 학술대회였다. 주제는 ‘전환기 동아시아 인식에 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날 학술회의는 제1부 ‘문명기준의 역전’과 동아시아 인식 지평의 변화, 제2부 ‘전후’ 그리고 ‘21세기’의 동아시아를 보는 눈, 제3부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1부(사회 최연식·연세대)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대만」(노병호·한국외대), 「손문의 동아시아 인식: 대아시아주의에 대한 재고」(이한결·연세대), 「안재홍의 동아시아 인식」(윤대식·한국외대) 등 3편의 논문이 소개됐다. 토론에는 김현(연세대), 이혜경(서울대), 이경미(동북아역사재단) 등이 참여했다. 

2부(사회 김영수 영남대)에서는 「요시다 시게루의 동아시아 인식」(김숭배·부경대)과 「시진핑의 동아시아 인식―일대일로의 지배서사: 천하주의, 대일통, 지정학」(조경란·연세대)이 논의의 장에 올랐다. 토론에는 강여린(동국대), 신봉수(고려대)가 참여했다. 

3부 종합토론은 이택휘 서울교대 명예총장의 사회로 발표자, 토론자 및 학술회의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사진 왼쪽부터 노병호(한국외대)·김숭배(부경대)·조경란(연세대) 교수다. 사진=최익현

전환기 동아시아 인식과 그 이후

강상규 회장은 학술회의 주제와 관련해서도 “전환기 동아시아가 고비에 섰을 때 한·중·일 삼국의 핵심 인물들은 과연 어떻게 상황을 파악하면서 길을 찾아갔을까? 그들은 각기 어떤 결과와 마주하게 됐을까? 이번 학술대회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을 했다”라고 부연했다. 

강상규 회장이 개회사에서 밝혔듯 ‘전환기 동아시아의 고비’에 선 핵심 인물들의 상황 인식과 그 인식 결과는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효한 의미지평을 제공한다. 한·중·일 삼국의 현 정세가 대단히 복잡다단하게 흘러가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의 사상지평에서 현재와 미래를 잇는 지성의 고투를 엿보고, 이를 의미화하는 작업이야말로 현실적 해답을 찾아가는 실천적 학문의 질문 행위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대만」, 「요시다 시게루의 동아시아 인식」, 「시진핑의 동아시아 인식」 등 3편의 논문에 주목할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대만」을 발표한 노병호는 “후쿠자와는 작지만, 다양하고, 복잡하고 긴 역사를 가진 대만은 보이지 않고, 중국·조선에 대한 ‘반개(半開)’조차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야만, 그 중에서도 최악의 야만의 섬으로 대만을 응시하고 있다.

그 표현은 ‘만민(蠻民)’ 그리고 여러 비하적 표현으로 격하되고, 그렇기 때문에 ‘만민’을 압제하는 것은 정당화되며, 설사 앞에서는 복종하더라도 뒤에서 배신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추방과 살해를 정당화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후쿠자와의 ‘참으로 잔혹한 본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노병호가 좀 더 주목하고자 한 것은 후쿠자와의 잔혹한 본성 이외에도 후쿠자와-마루야마 마사오로 이어지는 일본 근현대의 정치사상과 지식인, 학자의 변질 문제다. “요컨대 지식인들의 학문과 행태가 ‘계급적으로’ 분리되고 괴리되는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심지어 체제파로 투항하는 자들이 왜 정치학(사상) 학도에 많은가? 아니면 눈에 띄는가? 이에 대해 후쿠자와는 반면교사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라는 게 그가 던진 화두다. 

전후 일본과 현대 중국의 전략

학술회의 1부가 100여년 전의 동아시아 사상지평을 다뤘다면, 2부는 좀더 현재적인 소재와 주제를 천착했다. 재일 한국인 3세인 김숭배는 일본의 외교관이자 정치가이며, 일본의 제45·48~5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일본 역사상 장기 집권한 총리대신들 중의 한 명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를 소환해, 그가 전후(戰後)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취했던 일련의 행위들을 진단했다.

김숭배에 따르면, 요시다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일본이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 마련을 고민했던 인물이다. 예컨대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북태평양 6국조약안」이란 다자적 안보 구상안을 통해 한반도 전역을 비군사 지역으로 만들어 일본 안보에 이용하는 것도 궁리했다. 

그런데 요시다에게서 좀더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법리적 식민주의자로서의 한국 인식’을 보였다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김숭배는 “요시다는 아시아에서 자유진영의 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한 한일관계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그러나 요시다는 한일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던 요인으로서 이승만 정권을 되돌아보며, ‘한국 통치가 조선 국민에게 고통만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에 어긋난다’라고 했다.

결국 요시다의 한국에 대한 역사 인식이란 ‘오히려 일본이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생 향상에 한 기여는 공평하게 평가해야 한다’라는 말에 집약된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국가로 부상될 수도 있다는 이승만 정권의 인식에 둔감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경란은 ‘일대일로의 지배서사: 천하주의, 대일통, 지정학’이란 부제를 단 「시진핑의 동아시아 인식」을 발표했다. 최근 중국의 세계패권을 향한 ‘일대일로’의 서사를 짚으면서, 중국의 당국가체제의 강국화전략의 문제점을 분석한 것이다. 

조경란은 “21세기 패권국가가 되는 데는 과학기술 기반의 하드파워가 중요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프트파워다. 소프트파워의 중심에 신천하주의가 있다. 이번 20차 당대회를 통해 중국공산당은 서방의 자본주의+민주주의 대(對) 중국의 마르크스-레닌주의+천하주의라는 대립구도를 천명했다”라고 지적하면서 시진핑의 강국화전략이 역설적으로 정치 이외의 모든 부분을 위축시킬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또 이런 ‘위축’의 직격탄이 중국 지식사회를 옥죄고 있다는 비판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중국 지식 전문가로서 중국의 경제성장과 규모경제는 역설적으로 지성의 붕괴, 문명의 절멸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국 체제의 강국화전략은 정치 이외의 모든 부분을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천하주의와 중화주의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중국 지식인 일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를 대상화시키지 못함으로써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자기객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기를 대상화하고 현단계 세계 지식의 구조를 재구성해 새로운 종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국가의 학문적 역량이다. 그러나 중국의 학문은 그 역할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있다고 본다.” 

중국의 경로가 이러하다면 한국 지식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한국은 중국의 큰 그림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치·경제·학계 등 다양한 트랙을 가동해 그들과 협력해야 하는 것은 협력하고, 모호하게 해야 할 것은 모호하게 하고, 비판해야 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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