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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엇갈리는 시선들…‘한국 장자학’을 꿈꾼다
‘따로 또 같이’ 엇갈리는 시선들…‘한국 장자학’을 꿈꾼다
  • 박원재
  • 승인 2023.06.29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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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장자중독: 소요유』 박원재·유병래·이권·정우진 지음 | 궁리출판 | 276쪽

3세대 노장학 연구자 4인의 주해서
매년 2권 내외 출간해 2025년 완간

『장자』는 천의 얼굴을 가지 고전이다. 거기에는 중국철학의 황금기인 선진(先秦) 철학사에서 다루어진 거의 모든 철학적 이슈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듯 중국 선진 철학사의 담론 지형을 이해하는데 지남(指南) 역할을 하는 이 중요한 고전에 대해 한국의 3세대 노장학(老莊學) 연구자 네 사람이 ‘장자중독(莊子重讀)’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주해서를 펴냈다.

한국의 노장철학 연구 계보는 고려대 철학과에 봉직했던 김경탁 교수(1906~1970)에서 시작된다. 그 뒤를 이어 김충열(1931~2008), 김항배(1939~2001), 송항룡(1938~2023), 신동호(1934~2013), 이강수(1940~2022) 등이 2세대를 이룬다. 현재 한국 노장철학계에 활동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들의 제자들이다. 『장자중독』의 작업에 참여한 저자들 역시 이에 속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 이루어진 노장철학의 연구성과를 잇는 한편, 다음 세대에 새로운 연구 지평을 열어주는 계왕개래(繼往開來)의 문제의식이 스며 있다. ‘한국 장자학’의 정립을 위한 디딤돌인 셈이다. 이 같은 생각을 지면으로 옮기기 위해 저자들은 ‘따로 또 같이’의 전략을 취했다. 

먼저 전체 체제 면에서 『장자』 각 편을 각각 단행본으로 기획하여 펴내기로 했다. 무엇보다 깊이 읽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이번에 첫 편 「소요유」를 먼저 냈고, 해마다 2권 정도를 출간하여 2025년에 내편을 완간할 예정이다. 내용은 각자가 따로 쓴 편 해제를 가장 앞에 두고 이어서 본문 번역, 단락 요지, 구문 해설 순으로 구성했다. 

이 가운데 저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같이’를 추구한 부분은 본문 번역이다. 몇 번을 고쳐 읽으며 최대한의 공약수를 찾아 옮겼다. 그럼에도 일치되지 않는 소수 의견이 있으면 일단 다수의 의견을 채택하고, 소수 의견은 당사자가 해당 구문의 해설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도록 했다. ‘따로’를 추구하되, ‘공저(共著)’의 의미 또한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다.

배운 스승과 공부한 이력이 다른 이상 생각의 차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김충열 밑에서 공부한 박원재는 기본적으로 정치철학적 시각에서 『장자』를 읽어내려 한다. ‘탈정치적’이라고 평가받는 장자철학의 특징을 올바로 조명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것의 ‘정치적’ 측면을 제대로 해석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이다. 

김항배를 사사한 유병래는 장자를 삶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철학자로 이해하면서, 가급적 『장자』를 『장자』 자체로 읽고 해석하는 ‘이장해장(以莊解莊)’의 방법을 취한다. 요컨대, 『장자』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대하는 입장이다. 

이강수의 제자인 이권은 장자철학의 본령이 심미적 경험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이 내편에 특히 집중적으로 담겨 있다고 본다. 아울러 내편에 대한 독법도 각 단편의 맥락 안에서 개념과 내용 및 의미를 파악하는 ‘이편해장(以篇解莊)’의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보고, 이 시각에서 『장자』를 읽는다. 

마지막으로 동양 의철학(醫哲學)을 공부한 정우진은 구성주의적 입장에서 『장자』는 실재 세계가 아닌 구성된 체험의 세계에 대해 말하는 텍스트라고 본다. 이 체험을 구성하는 요소는 언어와 공명인데, 이 중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공명이다. 공명은 물질 사이에서도 발생하며, 이 경우 공명하는 물질은 단순히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명의 행위자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신물질주의(new materialism)적 관점이다.

장자의 모습이다. 이미지=위키피디아

이렇듯 『장자』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시선들이 동거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책 제목의 ‘중독’ 또한 그래서 다의적이다. 우선은 글자 그대로 ‘거듭 읽는다[重讀]’는 뜻이다. 그런데 ‘거듭’ 읽는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견해를 참고하며 깊이 읽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중독(衆讀)’이다. 또한 다양한 견해를 참고하며 읽으면 당연히 이해가 깊어져 빠져들게 마련이다. 곧 ‘중독(中毒)’이다. 

독자들을 『장자』에 대한 중독으로 이끄는 책, 저자들의 궁극적인 바람이자 목표이다. 그렇게 하여 ‘중(重)’이 ‘중(衆)’을 이어질 때, ‘한국 장자학’은 비로소 우뚝 설 것이라 믿는다.

 

 

 

박원재 
율곡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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