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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구조개선법’, 국고 좀먹는 ‘좀비대학’ 창궐 우려
‘사립대 구조개선법’, 국고 좀먹는 ‘좀비대학’ 창궐 우려
  • 양성렬
  • 승인 2023.06.21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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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대학’ 퇴로 마련,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사립대 구조개선법’ 제정과 관련해 세 가지 사항을 검토해야 한다. 
① 폐교 정책 수립에 앞서 사립대 진흥 정책을 제시하고, 
폐교 대상 대학을 전수조사한 후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② 학교법인의 부실 운영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③ 폐교에 앞서 구성원의 자구노력을 살펴봐야 한다. 

대학에 대한 여론이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취업도 안 되는데 대학은 가서 뭐 하냐는 비관론이 퍼지고, 대학이 너무 많으니 절반은 없어져야 한다는 축소론도 있다. 대학의 감축과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눈앞의 현실이다. 

이런 여론 동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념도 모호한 ‘한계대학’ 퇴출이 해결책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사뭇 기이하게 흘러간다. 2023년 6월 현재 이른바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태규 의원과 정경희 의원 발의)을 내놓았고, 더불어민주당이 「사립학교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강득구 의원 발의)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올해 내에 이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세 법안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철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구조개선 위한 실질 조항은 없다

 세 법률안의 제정 목적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개선 차원의 해산과 청산을 지원함으로써 구성원을 보호하고 대학의 건전한 발전과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라고 한다. 그러나 법안에는 자발적 해산이든 대학 재정진단 결과에 따른 강제해산이든 폐교의 방도만 세세하게 규정할 뿐, 구조개선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항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

폐교 대학의 학생과 교직원에 대한 보호 규정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대학의 건전한 발전과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이룰 실효적인 조항은 아예 없다. 측정할 수 없는 성과를 내세우면서 어울리지 않는 방법으로 달성하겠다는 부조화가 낳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정원 감축 효과는 7%에 불과

폐교대학의 법인만 해산하고 청산을 지원하면 과연 대학은 발전하고 고등교육의 경쟁력은 강화될까? 결단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한계대학’을 모두 폐교한다 해도 실제로 대학 총정원의 감축 효과는 고작 7%에 불과하다(재정지원제한대학에 2회 이상 선정된 대학정원의 50%를 기준으로 하였음). 태산 명동에 서일필 아닌가? 

그렇다면 필시 이 법안에 무슨 곡절이라도 있거나 혹은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과연 사립대(일반대·전문대 포함) 총 정원의 7%도 되지 않는 부실 대학을 솎아내어 퇴출하기 위해 이런 거창한 법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빼든’ 이 이상한 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명칭이나 목적과 달리 실제로 발의된 법안의 핵심은 학교법인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것은 21대 국회에서 가장 빛나는 여야 협치의 성과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야가 각기 제출한 법안 모두 한국사학진흥재단의 대학 재정진단을 거쳐 강제 폐교를 명령할 수 있다. 다만 여당 법안이 교육부 산하 구조개선심의위원회를 거쳐 장관이 폐교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만, 야당 법안은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에게 최종 결정권을 부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다른 한편으로 폐교·해산대학 잔여재산과 관련하여 이태규·강득구 의원 법안은 국고 귀속 대신 타 공익법인으로 이양할 수 있게 규정하나, 정경희 의원 법안은 추가로 학교법인에 ‘꽃놀이패’로 이용될 수 있는 잔여재산의 30%를 해산장려금으로 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교육부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2회 이상 선정된 사립 일반대(32곳)와 전문대(31곳)의 입학정원(2022년 기준)은 5만4천146명이다. 사립대 전체 입학정원 38만7천496명의 약 14%에 해당한다.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에서 2회 이상 선정된 사립대(63곳) 가운데 절반 가량을 ‘한계대학’으로 분류한다면, 약 7%의 입학정원 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출처: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TF, 입학정원은 2022년 기준, 대학수는 2023년 기준이다. 

교수·직원 통제 악용 소지

법안의 내용에 따르면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사립대학의 존폐에 관한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재단은 교육부 산하기관으로서 사학의 진흥을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명칭에 걸맞은 실질적인 역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기관에 폐교 대학의 잔여재산 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폐교 결정에 관하여 사실상 전권을 가진 교육부 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조차 물을 수 없는 강득구 의원의 법안은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해산장려금의 지급이 폐교의 촉진제로 작용할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법안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학교법인이 폐교를 빌미로 교수와 직원의 신분을 협박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예견된다. 사립대학의 속성을 아는 사람들은 이 법안이 교원을 통제하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경남의 Y대학은 이미 일부 정원미달을 구실로 교수의 연봉삭감을 단행했고, 정교수의 정년 보장도 없애버렸다. 이런 사립대학의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법률 제정을 강행한다면 현실을 모르는 의원들이 일부 사학법인에 교수와 직원을 부당하게 통제하는 합법적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

이 법안은 분명히 재고되어야만 한다. 법안에는 명확한 폐교 근거와 기준이 제시되어야만 한다. 재정진단만을 근거로 교육부 장관에게 사립대학의 생사여탈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그뿐인가? 사립대학 진흥을 위해 국고로 운영되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대학의 퇴출·폐지에 물적·인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 또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모순이다. 

교수와 직원을 구제해야

법안 통과 후 예상되는 폐교 대학과 정원 감축 규모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사립대학의 현황과 운영에 관한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급하게 해산장려금으로 잔여재산의 30%를 지급하겠다는 방안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폐교 대학으로 지목받는 이유를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학교법인의 부정과 비리에 있다. 따라서 그런 대학의 잔여재산을 민법의 규정대로 국고로 귀속시키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군다나 폐교 귀책 사유의 당사자인 사학법인에게는 해산장려금을 지급하자고 규정하면서도 정작 대학의 본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교수와 직원을 구제하기 위한 규정은 없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대학에 대한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법안의 제정 의도가 지극히 의심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아가 한시법이라면서 경과 기간을 10년씩이나 둔다는 것은 구조조정은 한낱 빌미일 뿐,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확실하게 사학법인의 이익을 챙겨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부정·비리로 좌초한 대학의 퇴출은 당연

이 법안의 제정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사항을 강력히 요청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공정과 상식에 맞게 사립대학의 구조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선(先) 평가 후(後) 컨설팅을 통해 탈락 대학을 압박하고 시혜를 베풀 듯 임의로 구제해주는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해왔다. 그런 잘못된 관행을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폐교 정책 수립에 앞서 사립대학 진흥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전수조사를 통해 폐교 대상 대학을 파악한 후, 그에 따른 정책 효과와 소요 예산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법률에 담아야 마땅하다.

둘째, 향후 발생할 각종 법적 분규에 대비하여 폐교 결정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학교법인의 부실 운영으로 폐교를 맞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조치하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폐교에 앞서 구성원의 자구책 제시와 노력이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특히 폐교로 인한 구성원의 물질적 보상과 향후 연구 활동 지원책, 학업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대책 등 세심한 사항들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부정과 비리로 위기를 자초한 대학의 퇴출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학법인의 속성상 현실적으로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그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인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은 시도다. 대학의 건전한 발전과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는 결코 한계대학 퇴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법안은 해산장려금과 국고지원금을 좀먹는 ‘좀비대학’을 양산하는 합법적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칫 법인에게 교수와 직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강력하고 정교한 발톱을 달아주는 격이 아닌지도 우려된다. 따라서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좀비대학’의 창궐 개연성이 큰 ‘사립대학 구조개선지원법’의 폐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해양생물학으로 박사를 했다. 역서로 『토양미생물학 원리와 응용』 『병원미생물학』, 공저로 『대학법 체제 정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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