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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가 아닙니까?
난 여자가 아닙니까?
  • 김재호
  • 승인 2023.06.13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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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지음 | 김보명 해제 | 노지양 옮김 | 동녘 | 332쪽

인종주의를 이야기할 때 읽어야 할 가장 첫 번째 책!
흑인 여성, 반인종주의자, 반제국주의자, 벨 훅스의 눈으로 본 미국사

2023년 개봉한 디즈니의 영화 〈인어공주〉를 둘러싸고 영화계 안팎의 여론이 뜨겁다. 지금껏 수많은 매체에서 백인 여성의 모습으로 재현돼온 인어공주를 흑인 여성 배우가 연기한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를 ‘흑인 인어공주’라고 새롭게 명명하며 그에 대한 찬반 또는 호불호를 활발히 표출하고 있다.

한편 정부와 서울시에서는 저출생과 보육 문제 해결을 위해 동남아시아 등에서 가사도우미를 들여오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한국인 가사노동자보다 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 계획은 여성계와 노동계의 공분을 샀다.

이러한 논란들은 비백인 이주민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 인식을 드러내는 시험지처럼 보인다. 그와 동시에 이는 인종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한층 성숙할 수 있는 계기로 보이기도 한다.

인종주의와 이주민 여성에 대해 논의하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이 가장 활발히 이야기돼온 미국 사회의 맥락과 역사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데, 이는 흑인 여성과 미국사에 관한 벨 훅스의 이 역사적인 책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유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7세기에 시작된 흑인 노예무역부터 20세기의 흑인민권운동과 여성운동까지 이르는 미국의 역사를 흑인 여성 당사자의 시각으로 다시 쓴다.

노예제 시기 흑인 여성이 경험한 억압과 폭력, 흑인 여성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그 영향, 흑인민권운동에서 흑인 남성의 성차별과 여성운동에서 백인 여성의 인종차별, 그리고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주류 역사가들이 기록하지 않은, 우리가 몰랐던 미국사의 한 조각을 제공한다.

또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 여성혐오, 제국주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다층으로 얽히며 약자들이 벌이는 파이 경쟁과 권력 투쟁의 역학을 흥미롭게 드러낸다. 사회적 불평등 간의 이러한 역학과 교직은 오늘날 불평등에 관한 사회적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론틀로 자리한 상호교차성 개념의 초기 경험적 텍스트로도 읽힌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 간 차별과 혐오, 여성에 관한 대상화와 타자화, 피식민 남성의 남성성, 분리주의적 여성운동의 출현 등의 현상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놀랍도록 일치하며 우리 사회를 비추는 날카로운 거울상이 된다. 그리고 숱한 차별의 경험에도 저자가 건네는 화해와 연대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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