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6:40 (토)
“사랑은 이기적 열정”…사랑하는 건 자신의 욕망뿐
“사랑은 이기적 열정”…사랑하는 건 자신의 욕망뿐
  • 최성희
  • 승인 2023.06.09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자가 말하다_『니체, 사랑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최성희 옮김 | 세창출판사 | 264쪽

생리적 충동인 사랑, 이기심·소유욕이 공존하는 이면 탐구
사랑의 완성은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 사상 체계를 비판하여 지식인들을 각성시키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다. 그는 서양의 도덕과 종교 때문에 사랑의 본질이 손상되었다고 평가했고, 인간이 사랑에 대해 관습화된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진실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니체는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지만, 사랑을 단일 주제로 삼아 책을 쓴 적은 없었다. 『니체, 사랑에 대하여』는 니체가 쓴 13권의 저작 중에서 사랑에 대한 글 123편을 선별하여 번역한 책으로, 그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한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니체는 남녀의 사랑은 이기적인 열정일 뿐이라며,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이 책에서 니체는 독자에게 친절한 저자가 아니다. 그는 자주 비난하는 듯한 말투로, 이제까지 독자가 당연시했던 낭만화된 사랑의 특성들을 비판하고, 그 밑바닥에 있는 통속적이고 이기적인 요소들을 지적한다. 그는 사랑을 인간의 생리적인 충동이자, 문화적인 욕망이라고 규정하고, 사랑의 이면에는 사실상 인간의 이기심과 소유욕이 공존한다는 점을 들추어낸다. 

니체는 남녀의 사랑은 이기적인 열정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인간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하는 대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도 사실은 인간의 이기심과 소유욕의 변형이라고 본다. 그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도 새로운 소유를 갈망한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인간이 “가장 가까운 이웃을 사랑으로 유혹하려 하고, 이웃의 잘못을 발판 삼아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 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니체는 기독교식으로 이상화된 사랑의 개념과 단절한다. 

니체가 옹호하는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다. 그는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라 하면서, 사랑이란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부부에게도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우정 같은 사랑을 권한다. 니체는 “좋은 결혼이란 우정에 필요한 재능을 기반으로 한다”라고 하며, ”노년까지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의 조건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니체는 자기애를 중요시한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을 굳건히 하고, 두 발로 용감하게 버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사라진다”라고 주장한다. 자기애를 기초로 하는 사랑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 사상과 연결 선상에 있다. 그는 “사랑은 사람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며, “오직 사랑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은 어딘가 아직 감추어진 더 높은 자아를 온 힘을 다해 탐색하려 한다”라고 진단한다. 또한 친구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도, 좋은 우정은 친밀하면서도 적절한 간격을 현명하게 유지하는 경우에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장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라고 권하고, 우정의 동기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높고 적극적인 긍정으로 연결하라고 조언한다. 그리하여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여 긍정하는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니체(1844∼1900)의 생전 모습. 사진=위키백과

『니체, 사랑에 대하여』는 정확성·가독성을 갖추려는 노력이 담긴 번역서이다. 니체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만, 정작 그의 글을 쉽게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에는 다층적 의미를 포괄하는 비유적이면서 모호하고 역설적인 표현과 다양한 문체가 등장한다. 또한 이 책은 중역본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니체의 독일어 원본에서 편집된 글이 영어로 옮겨졌고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중역본은 매개어와 이를 구사하는 번역자의 인식 스펙트럼을 지나는 과정에서 원문의 의미와 뉘앙스가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중역의 흔적을 최소화하며 원전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하려 애썼다. 그뿐만 아니라 니체의 독창적인 표현은 원문 그대로 표기하여 니체 고유의 글맛을 살렸다. 

이와 더불어 이 책은 가독성을 높여서 독자들이 어려운 니체의 철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난해한 니체의 문장을 가능한 원문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윤문했다. 또한 책을 휴대하기 쉽도록 만들었으며 왼편 페이지를 공백 상태로 두어서 독자들이 글을 읽다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니체, 사랑에 대하여』는 니체의 어렵고 ‘불친절한’ 글에 독자를 편안히 이끌어가고자 하는 출판사와 번역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최성희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