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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 위기와 비관에 맞선 사람들
활동가들: 위기와 비관에 맞선 사람들
  • 김재호
  • 승인 2023.05.23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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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현빈, 현창 지음 | 빨간소금 | 288쪽

위기와 비관의 시대, 설득하고 비판하며 세상을 흔드는 이들

가난한 사람을 악마화하고, 파업에 국가폭력으로 대응하며, 혐오 세력이 퀴어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에 '위기'는 분명해 보이고 현실을 '비관'하기는 쉽다. 그 분명하고 쉬운 길 앞에서 설득과 비판을 택하고 결국엔 세상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활동가들』은 '현장의 위기'에 맞서 '혁명'을 경험하고, '이제 사회운동은 망했다'라는 비관에 맞서 '다음 세계'를 그리는 활동가 11명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이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 문제의 최전선이며, 한국 사회운동에 관한 작은 지도이다. 책에는 '강철의 활동가'라는 이미지와 달리 노는 게 진짜 좋고 반려묘와 함께하며 육아를 고민하는 여느 사회인과 다름없는 '직업 활동가'의 일상도 담겨 있다.

『활동가들』은 비영리 사회운동 교육단체 '플랫폼씨'에서 기획한 '활동가를 만나다' 인터뷰 시리즈를 재구성했다. 이제 막 활동가라는 직업을 알고, 활동가의 일과 일상이 궁금한 신입 활동가 3명이 노동조합, 여성단체, 반빈곤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일하는 젊은 활동가들을 만나 직접 질문하고 답을 들었다.

젊은 활동가들이 있는 현장, 한국 사회 위기의 좌표들

반빈곤, 여성노동, 퀴어축제, 지역난개발, 비정규직 노동, 필수노동, 알 권리, 미디어 액티비즘, 페미니즘, 노동조합 없는 작은 사업장, 국제연대…. 이 책의 젊은 활동가들이 당사자와 함께 변화를 도모하는 다양한 현장과 의제는 한국 사회의 첨예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한국 사회라는 지도 위에 찍힌 위기 지점의 좌표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부합하지 않는 빈민을 악마화하는 사회에서 빈곤철폐를위한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모두가 덜 위험한 사회로 함께 가야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밍갱 활동가는 쌍용차 사태의 국가폭력을 경험하며 운동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현재는 페미니즘적 가치를 지향하는 동시에 다른 의제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견지하며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활동한다. 이효성 활동가는 제주퀴어문화축제,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 참여했고, 정의당 중심으로 활동한다. 지역 활성화를 명분으로 진행하는 난개발에 맞서 운동의 현장 그 자체인 지역에서 더 넓은 사회운동을 그리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공성식 활동가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는 필수노동자 조직화 등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전망과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간다. 방송 미디어 산업의 청년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에 애정 있지만 인생이 갈려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일한다. 진재연 활동가는 노동자 간 갈등과 간극의 해결 및 전체 운동과의 접점을 염두에 두고 방송 비정규직 운동의 다음 스텝을 고민한다.

케이블 설치 기사, 콜센터 상담원, 방송 스태프 등이 조합원인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에서 6년 동안 조직과 정책을 맡은 박장준 활동가의 현장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200개에 가까운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업장이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는 산업재해 관련 정보의 실질적 접근성 제고, 국회의원 의정활동 자료 기록, 여러 운동영역과 협업하는 정보공개 청구 등에 함께하며 모두의 알 권리를 위해 활동한다. 퀴어가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고 혐오에 생존이 위협받는 세상이다. 빼갈 활동가는 여성주의를 바탕으로 미디어 액티비즘을 실천하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에서 콘텐츠를 제작한다. 신지영 활동가는 직장갑질119 오픈 채팅방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노동상담을 한다. 그리고 노조 밖의 수많은 노동자가 기존 노동조합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하여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사회운동은 망했다는 비관, 과연 그럴까?

사회운동 전체의 연대를 중요시 하고, 조직이 아니라 운동 전체를 살리는 방식으로 운동해야 함을 강조하는 플랫폼씨 박상은 활동가는 “활동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함께 학습하고, 정파에 갇히지 않는 대중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사회운동 활동가의 재생산 구조”(139쪽)를 고민한다. “사회운동의 정치적·이념적 구심을 다시 구축해야 합니다.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모임'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구축해보고 싶고, 때로는 '기후정의동맹'이라는 틀을 통해 시도하고 싶어요”(281쪽)라고 말하는 홍명교 활동가는 사회운동의 변곡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만하고 싶지 않고, 비관에 빠질 생각도 없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활동가들』에는 조직이 어떤 점에서 부족했는지, 그중에서도 잘한 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활동가의 목소리가 있다. 전체 운동을 조망하며 장기적 관점 속에서 움직여야 함을 인지하는 활동가의 고민, 정세를 분석할 수 있는 관점 및 이를 바탕으로 한 문제 제기를 위해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활동가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비관에 빠지지 않았다. 그럴 틈도 없이 사회와 조직과 개인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또한, 사람을 조직하고 갈등을 조직하며 나아간다. 비관의 비관하는 자의 것이었을 뿐, 우리 사회나 사회운동의 것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일선의 젊은 활동가들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강철의 활동가보다는 갓생사는 활동가

“너 안 된다, 쉬어야 한다, 건강 챙겨라”(김윤영), “아무튼 코어 근육은 미리 챙기셔야 합니다!”(박상은), “네가 행복해야 운동도 오래 해”(신지영)라고 동료에게 말하는 이들은 더 이상 강철의 활동가에 지향을 두지 않는 듯하다.

미라클모닝, 바디프로필, N잡이 갓생(GOD+生)의 상징일지언정 갓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활동가의 일상을 통해 우리는 다른 차원의 갓생을 발견할 수 있다. 활동가는 일과 일상에서 시간 운영의 통제력이 높다. 본인이 하는 일의 내용과 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 몸에 착 붙는 느낌을 받으며 일한다. 댄스팀 멤버로 서는 무대가 해방감을 선사하고 저항이자 연대가 된다. 자전거 여행을 즐기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도시 공간과 따릉이에 대해 고민한다. 물론, 익히 알고 있는 대로 활동가는 일이 많고 바쁜 직업이다. 돈이나 명예가 뒤따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활동가가 왜 계속 이 일을 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소개한다.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재미와 의미를 찾아 일하는 오늘날 활동가의 일상을.

2023년, 한국 사회운동의 최신 지도

엮은이들은 책을 펴내며 “단절을 깨고 사회운동 안에서 암묵적으로 공유했던 지식과 고민을 나누며, 활동에 새로 혹은 다시 참여하고픈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시도다. 사회운동이 무엇인지, 활동가란 뭐 하는 사람인지를 활동가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6쪽)고 말했다.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첫 번째 경험', 활동가에게 필요한 '자질', 활동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 등은 활동에 새로 참여하고픈 사람들이 가장 궁금했을 내용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활동가가 혐오를 직접 마주했을 때 드는 생각, 말해도 듣지 않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주장하고 설득하는 어려움, 노동조합 밖에서 관련 정책 연구를 하는 것과 노동조합에서 정책담당자로 활동하는 것의 차이 등을 묻고 답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엄청나게 현실적인 동시에 꽤 매력적인 활동가라는 직업의 윤곽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한다.

한편 『활동가들』은 사회운동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현재의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2023년의 젊은 활동가들은 정파에 갇히지 않는 사회운동 '활동가 재생산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사회운동에 필요한 '10년의 테제, 20년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자 한다. 활동가라는 '직업'에 대한 숙고도 놓치지 않는데 이는 운동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성향의 차이를 존중하고 조화롭게 일할 수 있도록, 단기간에 빠르게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운동 전체, 조직, 활동가 개인 등 다양한 층위에서 고민한다.

위기의 현장, 망했다는 비관 그 위에 11명의 활동가가 그린 경험과 고민의 조각을 맞춰가다 보면 『활동가들』의 큰 그림이 보인다. 아마도 그건 한국 사회운동의 최신 지도일 것 같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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