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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한 정치 지도자…역사에서 미래를 보다
노벨문학상 수상한 정치 지도자…역사에서 미래를 보다
  • 박지향
  • 승인 2023.05.19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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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 박지향 지음 | 아카넷 | 452쪽

복지국가의 틀 마련하고 전장에 직접 뛰어든 정치인
유럽이 히틀러에 굴복할 때 전쟁 나서도록 이끌어

많은 사람들이 윈스턴 처칠(1874∼1965)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처칠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처칠을 안다고 믿는 사람들도 그의 위트에 많이 끌린다. 그가 남긴 많은 재치 있는 입담이 여전히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이러한 처칠의 이미지에서 간과되는 것은 그가 대단히 진지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많이 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는 처칠의 면모를 밝히고자 이 책을 썼다. 바람직한 리더십이 부재한 현실에서 처칠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당위도 물론 동기를 유발했다. 처칠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히틀러에 굴하지 않고 전쟁을 궁극적인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조차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처칠이 총리에 임명된 후 V를 그리고 있다. 사진=위키백과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소련이 이긴 것이라고 간단하게 결론짓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깨닫지 못한 사실은 유럽이 완전히 히틀러에게 굴복하고 점령당한 1940년 6월에 처칠은 영국 혼자서라도 전쟁을 해나갈 것을 ‘결단’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던 일인지를 후세인들은 모른다. 결국 영국을 이길 수 없었던 히틀러는 눈을 동쪽으로 돌려 소련을 침공하는 실책을 벌이면서 무너져갔다. 만약 그때 처칠이 버티지 않았더라면 유럽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포츠담 회담(1945)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만일 영국이 버텨주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미국 연안에서 히틀러와 싸우고 있을 것’이라고 처칠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처칠은 영감을 주는 지도자였다. 1940년 유럽 대부분이 히틀러에게 굴복하고 독소조약을 맺은 스탈린은 이익을 챙기고, 루스벨트는 방관하고 있을 때, 처칠은 영국 혼자서라도 전쟁을 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영국 국민들은 전쟁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적당히 히틀러와 타협해서 그럭저럭 생존하기를 원했다. 그런 그들에게 하고 싶어 하지 않던 임무를 떠맡기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 것은 처칠이었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만든 것, 강제가 아니라 영감을 주어 기꺼이 하도록 만든 것, 그것이 처칠의 위대한 지도력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처칠의 면모 가운데 급진적 개혁가의 모습이 있다. 처칠은 20세기 초에 상무부 장관으로 봉직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현되는 복지국가의 틀을 마련했다. 노사정이 함께 기여하는 실업보험제가 이때 세계 최초로 제도화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해군부 장관이던 처칠은 다르다넬스 전략이 실패하자 장관직에서 물러나 프랑스 전선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는데,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을 여러 번 겪는다. 만약 처칠이 그때 전사했더라면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비록 나라를 구한 위대한 수상으로 기억되지는 않았겠지만 처칠은 복지국가의 초석을 닦은 ‘선구적이고 자비로운’ 정치인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오래된 제국들이 무너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처칠은 식민부 장관으로 일하게 된다. 그때 영국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던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인물도 처칠이었다. 그는 아일랜드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제 죽이는 짓은 그만두고 대화를 합시다”라며 손을 내밀었다. 정치무대에서 잠시 쉬어가는 동안에는 글을 써서, 그것도 대단히 훌륭한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953). 이처럼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이 무척 길었고, 남들보다 몇 배나 더 열정적으로 살고 활동했기 때문이다. 긴 삶을 통해 그는 자신의 운명만이 아니라 영국, 나아가 세상의 운명을 만들어갔다. 

 

처칠이 사망한 지도 어언 60년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처칠에 대한 책이나 논문이 아직도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다. 요즘 잘못된 유행 가운데 하나는 그의 실수를 과대 해석하고 자극적인 말로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공과 과가 있듯 그에게도 당연히 잘못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공은 과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의 결점을 아무리 세세히 끄집어내도 그의 장점은 그것을 압도한다. 처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처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우리는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대 과거의 인물과 시대를 재단하기 전에 일단 그 인물과 시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래야 한다. 

처칠은 역사를 무척 좋아했고 스스로를 역사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 멀리 과거를 돌아볼수록 더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그런 통찰력을 지녔던 ‘역사가’ 처칠에게 바치는 한 역사학자의 헌정이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서양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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