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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와 형벌
교화와 형벌
  • 최승우
  • 승인 2023.05.02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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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훈 지음 | 혜안 | 384쪽

3백년에 걸쳐 지방민의 교육에 활용되는 자료교재로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모한 『경민편』을 통해 본 조선시대 교화와 형벌의 역사!

이 책은 16세기 이래 수백 년간 조선에서 『경민편』을 간행하고 활용하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을 좇아 정리한 연구이다. 『경민편』은 1519년(중종 14) 황해도 감사를 지내던 김정국이 편찬하여 지방민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중앙 정부와 지방 권력은 이후 19세기 말까지 이 책을 4차례나 증보하며 보급했다.

조선에서 숱한 책들이 나타났지만 『경민편』만큼 권력의 사랑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지방민들의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에 좋은 내용을 이 책이 적절히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 정호훈 교수는 우선 『경민편』이 16세기 초 기묘사림의 정치의식을 반영하며 만들어진 경세(經世) 문헌이라는 전제 하에 이 책의 성격을 살폈다.

김정국은 지방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범죄를 13개 주제로 정리하고, 각 주제 별로 도리(道理)와 사리(事理)를 들어 범죄를 저지르면 안되는 이유를 거론하는 한편 죄를 범할 경우 받게 되는 형률의 처벌 규정을 제시했다. 지방민들이 범죄가 가진 인륜 혹은 사회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알게 되면 범죄를 피하며 살 수 있으므로, 지방의 권력은 이점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계도해야 한다는 것이 김정국의 생각이었다.

『경민편』은 내용과 구성에서 크게 보아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범죄의 위계를 재구성하여 가족과 혈연에 대한 범죄를 중요하게 부각했다.

김정국은 범죄를 배치하며 부모를 비롯한 가족·친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살인·강도와 같은 강력 범죄를 그 다음에 위치시켰다.

범죄를 두루 포괄하되, 가족과 혈족·가문을 중시하는 의도된 구성이었다. 여기에는 종법(宗法)의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사회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려던 이 시기 사족(士族)의 사회적 이해가 강렬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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