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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관행, 표절의 생태학 ① 기획을 시작하며
잘못된 관행, 표절의 생태학 ① 기획을 시작하며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09.01 02: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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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지침, 일반론·각론 모두 필요

일련의 연구부정 사태 이후 학계가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규정 및 지침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연구부정의 다양한 유형과 수위 앞에서 어떻게 기준을 정하고 보편적인 규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인지 난감한 것이 사실. 또한 학계 공론을 통한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합의도 없이 학회·대학별로 진행되고 있어 복합학문의 시대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이에 교수신문은 ‘잘못된 관행, 표절의 생태학’이란 기획을 마련, 그간 지적되어온 연구부정 사례들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신종 사례들을 수집하여 이 각각이 어떤 종류의 부정에 해당하는지, 한 종류의 부정행위엔 어떤 하위 부류들이 존재하는지, 학문분야별로 이러한 모습은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파악해 공론화하고자 한다.

연재순서

① 기획을 시작하며
②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③ 자기표절의 유형학(가제)
④ 지양해야 할 관행(가제)
⑤ 지금 한국은 표절 공화국?(가제)
⑥ 표절, 연구자들에게 묻는다(가제)
⑦ 학술지 편집장들이 보는 표절(가제)

 

현재 학계는 일부 교수들의 연구부정행위로 인해 ‘표절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상태다. 물론, 표절을 저지르는 소수로 인해 전체가 비난받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표절에 관한 교수들의 문제의식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표절을 포함한 기타 연구부정행위가 발각되면, 해당 연구자의 ‘도덕성’을 질타하고 적절한 처벌을 가하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부정행위인지 명확한 지침이 없으며, 징계의 절차와 수준에 대한 논의 역시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표절에 대한 윤리의식은 철저하다. 캐나다에 소재한 캘거리대 정치학과의 경우, “어떠한 출처에서든지(from any source) 네 단어 이상을 사용하면” 반드시 인용부호를 넣고, 해당 출처를 명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Write on: A Reference Manual for students Research and Writing’). 단지 네 개의 단어인데도 그 출처를 밝혀야 할 정도로 엄격하다.

관행이라는 이름의 자기합리화, “이젠 안통해”

사례 1: 최근 ㅂ 학회 소속의 한 연구자는 박사학위논문을 쪼개고 자기표절하여 또 다른 논문을 완성했다. 이 연구자는 “선배들이 학위논문에서 부분을 소개하는 형태로 쪼개어 게재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학회의 김 아무개 학술이사는 “학위 논문의 재생산은 강하게 금하고 있다”고 일축했지만, 그 외에 많은 교수들은 “박사학위논문은 출간되지 않아 널리 소개할 필요가 있으며, 별도의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으면 사장되기 일쑤”여서 “권장하는 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학위 논문의 재생산은 지금까지의 관행상 ‘권장사항’이었던 게 사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논문이 통과되는 즉시, 어느 누구나 국회도서관 및 각종 기관을 통해 논문을 접할 수 있어, 동일논문을 재생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ㅍ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우리는 박사학위논문을 쪼개어 작성된 논문은 탈락시킨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이미 논의된 내용을 중복 게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상황이 변화하고 있어 그간의 관행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문제다.

사례 2: 윤리교육 전공의 한 교수는 동일 학술지에 실린 세 편의 논문을 그대로 오려다 편집해 다른 학술지에 게재했다. 해당 교수는 “내 논문을 인용했기 때문에 인용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당 학회에서는 이 교수의 연구부정행위를 확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마땅한 제재 규정이 없어 “앞으로는 이런 일을 삼가해 달라”는 식의 통보서를 보낼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ㅎ 학회 소속의 한 교수는 “자기표절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정량화된 업적평가 때문”이라고 주장해 주변교수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이는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를 ‘제도 탓’으로만 돌리는 부정확한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례 1’과 ‘사례 2’에서 보듯, 학위논문 재생산과 자기표절은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 저작권법 등에 저촉되지 않아 그간 학계의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은폐돼 왔다. 그러나 학위논문 재생산 및 자기표절 등의 문제는 담론형성에 기여하지 못한 채 업적 부풀리기에만 일조하고 있어 문제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종수 한국종교학회 총무이사는 “우리 학회는 무분별한 업적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해, 심사규정 제 1조에 ‘투고논문은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표절이 적발된 논문에 대해 ㅇ 학회의 ㄱ 학회장은 “이는 새로운 형태여서 전례가 없는데다가 대학이나 학회에 관련 규정이 없기에 문제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규정이 없으므로 학계의 관례를 따라야 하는데, 그러자니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하루 속히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 가이드라인을 제작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가이드라인의 필요성과 함께, 연구자들은 ‘관행’에 의존한 부정행위의 자기합리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교수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재수단이 없더라도 학자적 양심을 걸고 글을 써야 하는 것이 1차적인 문제”이겠지만, 연구윤리에 관한 제대로 된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 연구자들의 윤리의식만을 강조해서는 학계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식인 집단 내부의 혼란을 줄이고 비윤리적인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에서 각론적 지침에 이르는, 연구윤리에 관한 명문화된 합의가 필요하다.

논문 교차검색 확대 … 표절 무더기 적발될 수도

게다가 장기적으로 보면 논문의 전산화가 진행되고 있어, 국회도서관 검색 시스템이나 국내학술지인용색인(KCI) 시스템 등을 통한 논문교차검색의 가능성이 높아져, 중복여부 및 논문의 표절 여부를 더욱 광범위하게 검토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 학계가 나름의 연구윤리나 표절과 관련한 지침을 마련하지 않고, 또 현재의 연구환경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논문 교차검색을 통해 향후 연구자들의 논문 중복투고 및 표절이 부지기수로 적발될 가능성이 있어 커다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학계는 표절 방지 매뉴얼 마련 및 학습을 통해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 각 분야의 연구윤리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많은 연구자들은 학계의 암묵적 관행에 대해 비판하면서 과거를 파헤치기보다는,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갈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

폭넓게 통용될 수 있는 가이드북 시급

현재 학계가 대학·학회 차원의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는 등 분주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별, 학회별 연구윤리 가이드가 마련돼 있는 선진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일반론과 각론적 지침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연구부정행위 방지 가이드라인 마련에 앞서, 부정행위의 종류 및 유형을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부 지침들이 마련될 것이다.

해외의 경우, 연구윤리에 위배되는 주요한 행위로 위조(fabrication)·변조(falsification)·표절(plagiarism)을 들고 있으며, 이외에 자기표절, 명예저자, 중복게재 등을 ‘지양해야할 관행’으로 규정짓고 있다. 각각의 유형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통해, 그 유형과 수법을 면밀히 검토하여 대책을 마련한다면 발생가능한 연구부정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에 교수신문은 다양한 연구부정행위 중에서, 표절의 종류와 유형을 분류하고 그 수법을 면밀히 분석해 공론화하고자 한다. 또한 해외 사례를 수집해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살피고, 연구자들의 인식 조사를 바탕으로 윤리적 차원에서 기술적 차원에 이르는 광범위한 표절 방지 규정을 모색할 것이다.

교수신문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정리=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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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 2006-09-07 08:54:54
좋은 논문과 특허들을 써서 국내외에 출판하고, 이를 종합해서 학위논문으로 만드는 것을 이제까지 목적으로 해왔는데, 이것이 표절이라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컨퍼런스 발표나 저널에 싣지 못한 결과들만 모아서 학위 논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차라리 졸업 요건인 SCI급 논문 출판 조건을 없애든지. 학위용으로 쓰게.아니지 그건 불가능하겠군.논문 출판들이 절반 이상 사라질 터이니.특허도 몇 년씩 늦어질테고

글쎄2 2006-09-05 19:23:35
박사들이면 수준이 같은가? 박사논문의 수준이 높고 독창성이 있으면 세계유수저널에 실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박사학위논문은 세계유수저널에 실릴지 못는다. job 잡을때 박사학위논문 하나로 그럼 평가하나? 학위논문출판을 표절로 여기면 졸업할때 모두 박사논문 하나 가지고만 경쟁해야한다. 누가 좋은 박사이고 형편없는 박사인지 구분하나? 박사도 다 똑같은 박사가 아니다.그럼 교수신문이 박사의 질을 다 구분해줄 것인가?

글쎄 2006-09-05 19:04:26
박사학위논문은 영어 reference를 달때 "unpublished" dissertation 라고 표기한다. 박사학위논문은 공식적으로 publish 된게 아니라는 말이다. 교수신문 이 점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 박사학위논문을 왜 책으로 내나? 중복게재인데. 교수신문 주장대로라면 세계유수과학자와 사상가들도 다 자기표절이다. 자기 박사학위논문을 또다른 저명학술지에 실었기 때문에. 편집의도는 좋은데 정확하게 상황을 알고 기사를쓰시길...

행인2 2006-09-04 21:19:36
박사학위 논문을 <쪼갠다>라는 표현은 적절지 않다. 전공에 따라 다르겠지만 각 chapter 마다 연결되면서도 독립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한 chapter가 <수정의 과정>을 거쳐 학술지로 실리는 걸 쪼갠다라는 비어로 비하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가 표절에 기준이 분명치않다 이런 자연스런 학술적활동을 위축시킨다. 없어져야할 건 <울궈먹는> 행위인데 이를 학생때 쓴 박사논문을 학자로서 발전시키는 행위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행인 2006-09-04 01:48:24
박사 과정 중에 연구 실적들이 논문으로 출판되는 경우는 이공계에서도 흔한 일입니다. 나중에 박사 논문에서는 이런 논문들의 결과가 집약되게 됩니다. 물론 문맥이 연결되는 경우죠. 이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박사 논문 하나 달랑 써놓고, 그걸 쪼개서 두고두고 울궈먹는다면 그건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