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논어』를 읽었다. 『논어』야 사서삼경의 으뜸이니, 오랫동안 우리 서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경서로 자리잡고 있었다. 전통시대에는 과거시험 준비를 위한 필독서였고, 그래서 ‘얼음 위에 박밀 듯’ 달달 외워야 하는 책이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는 당연히 열기가 사그라들었지만, 교양인으로서 읽어야 하는 책의 으뜸에 놓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미국 대학생의 필수 독서 목록 중 유일하게 동양의 서적으로 들어간 것이 바로 이 논어였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주석서‧번역본이 나왔겠는가. 그런데 다시 논어가 나왔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논어와 달랐고, 그리고 그러한 차이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보이는 것은 엮은이의 논어 편집이었다. 논어의 첫 번째 편명(篇名)은 “자왈(子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로 시작하는 ‘학이(學而)’이다. 모든 편명이 이처럼 처음 나오는 말로 이루어졌다. 예전 같으면, 사서(四書)의 으뜸이니 그 전개를 해체하여 다시 편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금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왔다. 편명을 처음 나오는 말로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붙이면 전체의 내용과 아무런 연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편명을 어떻게 붙일까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마치 시조의 제목이 없으니 작품의 제목을 ‘청산리 벽계수야’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과감하게 다시 ‘엮었다’. 엮은이는 ‘오늘의 시각에서 논어를 읽고, 그것으로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였지만, 그 체재마저도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바꾸어낸 것이다. 이런 생각과 실천은 논어 전체를 조감하고, 각각의 내용을 흔들어 재정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엮은이는 논어를 일관하는 기본 개념어인 ‘도와 덕, 인, 예’에 관하여 언급한 글을 먼저 배치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논어가 이 기본 개념어를 드러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책이구나 하고,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에 제시된 편명은 이 기본 개념어의 습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상적인 인간상, 바로 ‘군자’이다. 공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군자를 설명했다. 소인과의 대비를 통해서도 말하고,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같은 듯 다른 의미를 가지는 선비와도 구별했다.
제3장은 논어 속에서 드러난 공자의 삶과 세계관을 엮은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십유오이지우학(十有五而志于學)~’ 과 같이 요약하여 제시한 바 있다. 공자는 실천궁행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며 말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말에 앞서 실천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좋아했고, 바른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주저 없이 힘든 정치에 뛰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옆의 사람이 힘들어 하는데 혼자 즐기지 않았다.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 옆에서는 배불리 먹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어른이 우리 옆에 좌정해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모습을 한곳에 모아놓으니 더욱 공자는 피가 돌고 숨을 쉬는 살아 있는 이웃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제4장은 공자가 다른 사람을 평하는 글을 모아놓았다. 공자는 제자들에 대하여 좋은 점, 고칠 점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깊이 있는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면서 아, 선생이란 제자를 이렇게 대해야 하구나 하는 생각·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제자에 대한 글만이 아니라 역사상의 인물과 성현에 대한 글, 나아가한 인물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어 강하게 질책하는 글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선발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써야 할 사람을 빠뜨린 것을, 공자는 ‘지위를 도둑질한’ 것이라고 호되게 비판했다. 이로 보면 고위직에 임명되는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며 인사의 잘되고 못됨을 얘기하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이처럼 논어를 일정한 방향을 따라 재편집하여 읽어보니, 공자의 언행, 그리고 공자가 말하고자 한 진실한 의도가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성인의 글이니 조금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논어를 저 선반 위에 놓고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에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것들이 모두 소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것은 제외할 필요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것은 두고, 어느 것은 빼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편한 대로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논어를 경전으로 읽지 않은 사람들은 손쉽게 주를 제외한 채 읽어나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정말 소중한 주까지도 거기에 휩쓸려 같이 제외되는 것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엮은이는 어려운 수고를 하여 과감하게 주를 남기기도 하고, 또 제외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남겨진 원주까지도 엮은이의 재해석과 생각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엮은이의 생활과 관련된 해설을 통하여 과거의 글이 재해석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공자는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법을 우선시하면 백성들이 형을 면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다스려야 부끄러움이 있고, 선에 이른다고 하였던 것이다.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 ‘부끄러움’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일 것이다. 엮은이는 이 대목에서 자신이 미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예시하고 있다.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벌금을 내게 되었던 상황에 처하게 되자, 변호사를 통하여 없던 일로 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게 된다. 이는 법치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지만, 덕과 예를 배운 엮은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논어는 이처럼 엮은이의 생활 속에서 다시 살아나, 인생을 살아가는 지침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군자의 논어이니, 책을 읽으면서 독자도 군자로 떠올려지는 듯 자존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엮은이가 논어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읽는 독자 또한 군자로서의 삶이 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독자를 대단히 떠올려주는 책이 바로 이러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고 보니 출판사의 이름이 ‘군자출판사’였다. 아마도 군자를 지향하면서 출판사를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군자를 지향하는 엮은이와 출판사가 만든 책을 읽으면서 품격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쉽게 읽히면서, 오랜 여운이 남는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정병헌
전 숙명여대 교수·국어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