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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공 영어교사 연수제도에 대해
부전공 영어교사 연수제도에 대해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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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6:02:27
한학성 / 경희대·영어학

지난 여름,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위탁받은 부전공 영어교사 연수를 주관하고 나서 우리나라 영어교육 문제와 관련한 또 다른 걱정을 하게 됐다. 이 제도는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2 외국어 및 실업계 과목 등의 과원 교사들을 단기간 연수해 영어교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제도로서, 그 발상의 무모성과 아울러 그 시행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제도에는 담당 과목의 수업 시간 축소로 인해 입게 되는 현직 교사들의 불이익을 덜어 주려는 긍정적 측면이 분명 있으며, 이번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 중 상당수가 진지한 자세로 연수에 임하였고, 그들 중에는 영어교사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는 훌륭한 영어 능력을 구비한 분들도 다수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능력이 단기간 연수로 현저히 신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영어교사에게 요구되는 적절한 영어 능력 및 자질이 3백45시간 정도의 연수로 터득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근본적으로 무모한 제도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제도 시행과 관련한 또 다른 무모성은 교육청이 부전공으로 영어 연수를 받고자 희망하는 교사들의 선발 과정에서 그들의 영어 능력을 측정하는 아무런 절차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최선을 다하다’나 ‘팔을 잡아 당기다’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을 모르고 있었으며, ‘팔’을 ‘army’라고 쓰거나 아예 쓰지 못하는 교사들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영어 능력이 극히 불량한 교사들 사이에서 연수와 관련한 불만이 연수 기간 내내 표출됐다. 이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철저한 연수를 시행하려는 연수 기관 측의 노력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연수자 전원에게 영어 교사 자격증을 발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요구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끊임없이 전해 왔다. 이들은 영어 수업에서 영어를 사용하거나 영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체육 대회가 없다거나 축제 분위기가 아니라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한 어떤 교사들은 시험에서 부정 행위를 저지르는 등의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엄격한 자격요건 필요

이러한 문제를 방치해 영어 교사로서의 적격성을 검증하는 절차 없이 이들 연수자 전원에게 영어 교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이들 중 영어 능력이 극히 저조한 사람들까지 조만간 중학교나 혹은 일반계로 전환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직접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문제가 사범대학에서 영어교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문제와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대 졸업생들은 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극히 일부만이 교직 진출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이들은 현직 교사라는 유리한 위치 때문에 부전공 연수를 통해 영어교사 자격증을 얻기만 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영어교사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신규로 임용할 수 있는 영어교사의 정원을 잠식해 결과적으로 자격있는 신진 영어교사들의 교단 진출 기회를 그만큼 봉쇄하게 된다. 한 해에 서울 시내에서 영어교사로 임용되는 수가 수십명에 불과하다는 점과 올 한해에만 이러한 부전공으로 영어교사 자격을 얻으려 하는 현직 교사의 수가 80명에 이르는 점을 비교해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장래를 위해 결코 방치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이의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부전공 영어 연수에 참여할 수 있는 엄격한 자격 요건을 두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토플(TOEFL)이나 토익(TOEIC) 등의 일정 점수 이상자를 지원 가능자로 한 후 이들 중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순서로 연수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연수는 전적으로 영어를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는 데 집중돼야 할 것이며, 당연히 이들 중 일정한 요건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만 영어교사 자격증이 발급되도록 철저한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현직 영어교사 중에서도 토플이나 토익의 기준 점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정 기간 기회를 준 뒤 그래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이들의 영어교사 자격증을 재고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영어교육 문제는 결국 영어교사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 영어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점진적으로라도 적절한 영어 능력 및 자격을 갖춘 영어교사의 수를 그렇지 못한 교사의 수보다 늘려 나가는 방법뿐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단순히 3백45시간의 연수만으로 다른 과목의 교사를 영어교사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운전 면허증도 단순히 일정 시간 연수를 이수했다는 것만으로 면허증을 발급하지는 않지 않는가? 하물며 21세기에 들어와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 가는 영어교사 자격증이야.
과원 교사 문제와 영어교육 문제를 혼동하는 잘못을 교육부가 더 이상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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