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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기초과학 학회들은 왜 초·중등 과학교육 혁신을 주장하나
[초점] 기초과학 학회들은 왜 초·중등 과학교육 혁신을 주장하나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6.08.26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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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안 하면 과학 몰라도 되나? … 학회들, "과학 과목 필수화"

기초과학 분야의 교수들이 “지금처럼 초·중등 과학교육이 지속되면 한국 과학계는 망한다”라며 초·중등 과학교육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학회가 발 벗고 나선 것이 특징이다.

학회장들이나 학회 임원들이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 장관과 관계자들을 만나 학계의 의견을 전달하거나 현재 과학 교과과정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중이다.

이공계 지망생도 기초과학 선택 안해 지난해에는 한국물리학회, 대한화학회, 한국생물학협회, 한국지구과학회,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전국공과대학장협의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7개 학회·협회가 ‘초·중등 과학교육 혁신 과학기술인 1백만인 서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오는 9월 9일에는 한국물리학회 등 기초과학 분야 학회들이 공동으로 ‘21세기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학 교육과정의 올바른 방향’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기초과학 분야 학회들이 초·중등 과학 교육에 요구하는 것을 정리하면 간단하다.

과학 교육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라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서의 과학 교과과정이 지닌 문제 때문이라는 의견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제대로 된 고교 과학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과학교과를 배우는 시간은 주당 3시간으로 그리 많지 않은 데다, 고등학교 2·3학년 학생들 중에 물리Ⅱ, 화학Ⅱ, 생물Ⅱ, 지구과학Ⅱ를 선택한 학생들도 거의 드문 편이어서, 이공계 학과에 진학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을 충분히 익힌 경우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더욱이 인문사회 계열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과학 과목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됨에 따라, 과학 과목들이 홀대를 받아 학생들이 과학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데, 국가적인 차원으로 보았을 때 우려할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4년에 고등학교 2·3학년 전체 학생 중에서 물리Ⅱ를 선택한 학생은 7.8%였고, 화학Ⅱ는 13.9%, 생물Ⅱ는 12.2%, 지구과학Ⅱ는 4.7%였다. 이보다 낮은 수준의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Ⅰ을 이수한 학생들도 적은 편이다. 물리Ⅰ을 듣는 학생은 전체의 22.2%, 화학Ⅰ은 25.6%, 생물Ⅰ은 32%, 지구과학Ⅰ은 23.3%였다. 생물을 제외하고, 고등학생 중에서 물리Ⅰ, 화학Ⅰ, 지구과학Ⅰ을 배우는 학생은 전체의 4분의 1도 안 되는 것이다.

학회는 이의 개선을 위해 △과학교육과정에 대한 의사 결정시 과학기술 관련 단체의 전문적 의견을 존중하고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에서 과학 교과의 이수 비중을 확대하며 △고등학교 2·3학년의 선택형 교과에서 기초 과학과목을 필수화하고 △과학 과목들을 단일 교과로 묶어 취급하는 대신 각 학문 영역별로 독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는 중이다.

때마침 교육부가 초·중등 주 5일 교육으로 인해 7차 교육과정을 수정하고 있어서, 올해 말 과학 교육과정 개정이 확정되기 전에 과학계의 확고한 입장을 반영시키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과목 이기주의로 혁신 불투명 한국물리학회의 교육과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성원 이화여대 교수는 “절대 다수의 학생들이 최소한의 과학 상식도 배우지 못한 채 졸업하고, 이공계로 진학하는 학생들조차 기초과학 학력 수준이 형편없다”라면서 “계속될 경우 기초과학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과목별 형평성 논리에 밀려 7차 교육과정에서 과학에 배정된 시간이 크게 줄었는데, 그러다보니 최소한의 과학 교육도 불가능할 정도가 돼 버렸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는 고1에서 과학교과의 이수 비중을 늘리는 것은 고려할 수 있지만, 기초 과학과목을 필수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7차 교육과정은 고등학교 2·3학년에서 모든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과학만을 별도로 필수화할 수는 없다는 설명. 교육부 관계자는 “과학교육의 비중이 낮은 것이 사실이어서 한국 과학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기는 하다”라면서도 “사회적 합의하에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7차 교육과정에서 기초과학의 필수 과목화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고1에서의 과학교과 시간 확대’가 현실화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교육부가 학계에 주당 3시간이었던 고1 과학교육을 이번 7차 교육과정 개편 때에 주당 4시간으로 늘린다고 했다가, 다시금 “늘릴 수 없다”라고 번복하고서는, 최근에는 “논의중”이라고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주당 4시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또 이 관계자는 “주5일 교육 때문에 총 시수를 3시간 정도 줄여야 하는데, 모든 교과에서 시수를 늘려달라는 상황에서 과학 교과만을 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과목 이기주의 때문에 과학교과의 시수 확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초과학계의 요구가 현실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만이 해결 방법이라는 얘기였다.

교육부가 과목 간의 시수를 1~2시간 늘리고 줄이고 하는 것을 고민하는 사이, 과학교육 부실을 염려하는 기초과학 학계의 목소리는 ‘1시간 시수 확대 논란’으로 축소되어버리고, 정작 과학계가 주장하는 ‘과학교육 혁신’은 ‘비현실적인 요구’로 치부되는 상황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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