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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 선 소설가
교차로에 선 소설가
  • 최승우
  • 승인 2023.04.18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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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지음 | 260쪽 | 도서출판 동인

데이비드 롯지는 1971년 출간한 <교차로에 선 소설가들>에서 일군의 작가들을 “교차로에 선 소설가”로 지명하였다. 롯지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소설가들이 직면한 문제를 범박하게 사실주의 소설 전통에 대한 의심과 반동으로 규정하고, 이 시대의 작가들이 사실주의 문학의 미학적, 인식론적 전제들에 대한 강한 의심을 품은 채,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교차로의 반대편으로 뻗은 두 개의 루트, 즉 ‘논픽션 소설’에 이르는 길과 ‘우화적 소설’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소설을 발표한 존 파울즈는 다양한 면모를 가진 소설가이다. 파울즈는 사실주의 소설의 유용성과 문학의 교훈적 기능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은 전통주의자이고 모럴리스트였다.

파울즈는 실존주의 철학에 친화성을 보였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영위했으며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소설 기법과 형식의 차원에서 파울즈는 1960년대 이후 소설가들이 직면한 많은 딜레마를 공유하고 다양하고 혁신적인 실험을 통해 그 딜레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메타픽션 작가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롯지의 용어를 빌려 파울즈의 좌표를 사실주의와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갈림길에 선 소설가로 설정한다.

소설 기법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할 때, 파울즈는 전통과 혁신의 교차로에 선 작가처럼 보인다. 그는 사실주의 소설 양식의 유용성을 신봉하는 전통주의자로 평가받는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적인 표현 양식인 메타픽션의 대표적인 작가로 거론되기도 한다.

파울즈는 소설 장르의 도덕적, 예언적 기능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견지하며 소설이 모름지기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 리얼리스트이며 전통주의자였다.

한편 소설 장르의 미래에 대해 예민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던 파울즈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무엇보다 새롭게 인식된 리얼리티를 미학적으로 재현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가 작품 속에 차용하고 있는 이중적인 서술 양식, 픽션과 리얼리티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무는 실험, 소설 창작 행위에 대한 자기반영적 태도, 복수 결말의 제시를 통한 독자와의 유희 등은 실로 현대 소설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방식”이라는 딜레마에 대한 파울즈의 대응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존 파울즈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망라한 책이다. 존 파울즈를 더 가깝고 깊게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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