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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원회가 따졌어야 할 것
교육위원회가 따졌어야 할 것
  • 서지문 고려대
  • 승인 2006.08.2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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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병준 前 부총리 논문사태에 부쳐

국회 교육위원회가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에게 추궁했어야 하는 것은 단 한가지이다.  그가 ‘관행’이라고 우기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든 일들이 정말 관행이라 하더라도, 그 관행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이다.  그것을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도덕감각 자체가 마비된 인간으로서 교육부 수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 노릇도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사람이다.  만약 옳지 못한 관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따랐다면 그는 ‘개혁’의 주역은커녕 ‘개혁’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대체 개혁이란 것이 무엇인가?  어떤 사회의 썩은 관행, 옳지 못한 관행을 바로잡고 뿌리 뽑는 것이 개혁의 기본이 아닌가?  그런데 노무현 정부 개혁의 핵심 설계자가 그런 옳지 못한 관행을 아무 비판 없이 따르고 자기는 학계의 관행을 따랐기 때문에 결백하다고 큰소리를 치고, 대통령은 그의 비 학자적인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옹호하니, 이 정부가 정말 개혁을 하고자하는 정부이며 도덕성이나 정의감이 있는 정부인가? 

자신을 악의적인 언론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라고 강변하며 분노를 토하다가 교육위원회에서 모든 의혹을 해명했기 때문에 개운한 마음으로 사퇴한다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 김병준의 면상을 보면서 한 인간의 파괴력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것인지 깨닫고 새삼 몸서리를 쳤다.  이제 개학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모든 대학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교수를 논문재탕, 제자 논문 표절의 범죄자로 바라본다면 무슨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관행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는 결백한 교수들이 전원 집단으로 김병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해서라도 결코 모든 교수들이 그 관행을 따른 것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교육의 존엄성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으며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학문의 정도(正道)를 논할 수 있겠는가?  학술단체연합회나 전국교수연합회, 또는 전국여교수연합회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사활이 걸린 이 사안을 철저히 규명해서 환부를 노려내고 교수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 사건은 대학의 학문풍토를 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참여정부의 진면목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참여정부의 개혁기치, 과거사규명이 모두 기득권세력을 죽여서 헤게머니를 잡기 위한 것일 뿐, 정의의 회복이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들어난 것이다.  순전히 자의적으로 옳지 못한 ‘관행’을 활용한 김병준을 옹호하면서 과거의 어려웠던 상황에서 현실과 타협한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참여정부는 그들의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뽑아내어야한다.

요즈음은 학문적 성취가 논문편수라는 획일적인 잣대에 의해 계량이 되고, 대학 평가에도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 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대학교수들은 논문발표의 압박을 많이 받는다.  교수들이 논문을 필사적으로 써내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이 집중탐구하는 분야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기이한 지성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학문의 지평을 넓히는데 거의 공헌을 못하는 논문도 다수 쏟아져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논문 집필과 저술의 압박은 오늘날 세계의 모든 학자들의 공통적 운명이고, 대부분의 경우 논문을 쓰면서 학자의 실력이 향상되고 학문은 발전하게 된다. 상당한 진통이 따르더라도, 이 살인적인 더위에 피를 말리며 한 줄 한 줄 성실히 논문을 쓰는, 남의 논문 표절이나 자기 논문 재탕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일도 없는 동료, 후배들의 얼굴에 끼얹어진 김병준의 오물이 깨끗이 씻어지기를 고대한다. 

<이 글은 다산연구소 ‘다산포럼’에 게재된 글을 재수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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