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5:40 (일)
“칸트의 진정한 계승자”…순수한 의지론을 펼치다
“칸트의 진정한 계승자”…순수한 의지론을 펼치다
  • 홍성광
  • 승인 2023.04.17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자가 말하다_『쇼펜하우어의 철학 이야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332쪽

서양철학사·불교·인도철학에 조예 깊은 철학자
삶에 대해 ‘연민 철학’이라는 실천적 지향 제시

이 책은 무명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세계적인 철학자로 만든 성공적인 에세이집 『소품과 부록』(원제 『Parerga und Paralipomena』, 1851)에서 「철학의 역사에 대한 단편들」과 「관념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에 관한 학설의 역사 스케치」를 묶은 것이다. 알기 쉽게 『쇼펜하우어의 철학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쇼펜하우어 철학은 삶의 고통을 다뤄 요새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사를 처음으로 소개했다는 데 이 책의 의의와 중요성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단순히 고통이나 자살을 이야기한 철학자가 아니라 서양철학사 외에도 우파니샤드와 불교를 비롯한 인도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철학자였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사를 개관하면서, 선대 철학자들을 수용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철학 체계인 의지론의 성립과정에 대해 간략히 다룬다. 그는 이전 철학의 역사에 대한 그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세계에 대한 일관된 개념 체계를 통해 삶에 대한 연민 철학이라는 실천적 지향을 제시한다. 그의 서술은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신플라톤주의자, 영지주의자, 스코투스 에리게나, 스콜라 철학, 베이컨, 그리고 데카르트와 이후의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와 버클리, 흄 같은 근대 철학자들을 다룬다.

끝에서는 칸트 철학의 공과를 상세히 설명하며 자신의 철학에 대해서도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 피히테, 셸링, 헤겔에 대해서는 칸트 철학에서 말하는 ‘사물 자체’ 개념을 왜곡하고 훼손했다면서 부정적으로 간단히 처리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칸트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내세운다. 고대와 중세, 근대 철학자들에 대한 그의 서술은 학자로서 그가 갖춘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며, 광범위한 출처에 대한 상세하고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쇼펜하우어는 다른 여러 시대의 철학자들이 본질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추구한다고 본다. 그는 아낙사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의 근본 명제를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심지어 칸트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전 철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는 엘레아학파가 현상과 본체를 칸트식으로 구분했다고 보았다. 또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미움의 질서 원리를 자신의 철학인 ‘맹목적인 추진력, 즉 인지하지 못한 인과법칙’으로 파악했고, 특히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의 대결로 자신과 헤겔의 대결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1855년에 그려진 쇼펜하우어의 초상화이다. 그림=위키피디아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말한 “그러므로 의지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이성의 힘은 의지의 시녀이기 때문이다”라는 말과 스피노자의 “욕망은 모든 사람의 본성과 본질을 이루는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에서 의지론의 씨앗을 본다. 그는 이러한 철학자들의 남아있는 학설에도 진실로 증명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주장했고, 소크라테스와 칸트 사이 몇 가지 유사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쇼펜하우어는 선대 철학자들의 학설에 자신의 의지론의 맹아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철학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한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쇼펜하우어에 대해 이례적으로 국가주의에 얽매이지 않았고, ‘의지’ 개념을 강조하면서 철학을 전개했다고 평한다. 또 루소와 칸트가 그와 유사한 의지 이론을 개진했으나 그토록 순수한 의지론을 가장 먼저 설파한 철학자는 쇼펜하우어였다고 본다. 또 다른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었지만, 그의 글이 너무 난해해서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은 덕분에 칸트의 책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고 피력한다. 이처럼 쇼펜하우어의 글은 칸트 철학의 수용과 비판을 통해 칸트 철학으로 들어가는 입문서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홍성광
번역가·독어독문학 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