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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는 어떻게 등장했나…‘중간계층·신기술’이 열쇠
인상파는 어떻게 등장했나…‘중간계층·신기술’이 열쇠
  • 임인재
  • 승인 2023.04.14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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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예술의 사회학적 읽기: 우리는 왜 그 작품에 끌릴까』 최샛별·김수정 지음 | 동녘 | 335쪽

고독하고 가난한 천재의 노력 아닌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탄생하는 예술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1888)를 감상하며, 모차르트의 「레퀴엠」(1791)을 들으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위대한 걸작은 고독한 천재 예술가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예술의 사회학적 읽기』는 예술에 대한 기존 생각들에 도전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위대한 예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와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예술사회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소개한다.

 

예술사회학은 예술을 사회학적으로 읽어내는 학문이다. 예술사회학은 예술은 본질상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제도 △직업 훈련 시스템 △창작 행위에 따른 보상 △예술가에 대한 후원 △예술작품의 소비 등 사회의 여러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 이를 맥락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술에는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대중예술·대량예술 등이 포함된다.

우선 이 책의 저자는 앤디 워홀과 그의 작품 세계를 예술사회학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통념을 깬 사람이 바로 앤디 워홀이다. 그는 현대 미술계에서 예술적·대중적·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 방식은 여러 측면에서 논란이 됐다.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에서 사용하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예술에 접목한 것이다. 워홀은 ‘예술은 비즈니스’라고 주창하면서, “고독한 천재의 외롭고도 긴 작업이 바로 예술”이라는 통념을 산산조각 냈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은 예술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사진=위키백과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반영이론, 형성이론, 그리고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 등 여러 가지 이론을 바탕으로 예술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우선 반영이론은 예술로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 근대문학 속 주인공들을 왜 결핵으로 죽어갔을까?” 이는 당대에 결핵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왜 혈액암인 백혈병으로 죽어갔을까” 이는 우리 사회에서 암이 위협적인 질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성이론을 바탕으로 하면, 예술은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컨대, 폭력적·선정적인 미디어 프로그램은 실제 사회에서 모방범죄를 유발할 수 있으며, 왜곡된 성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여러 가지 이론들을 종합한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을 제시한다. 문화의 다이이몬드 이론은 △예술 △생산 △사회 △소비 등 이 네 가지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모델로 보여준다. 저자들은 미술역사에서 인상파 부상을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을 바탕으로 해석한다. 네 가지 요인 중 예술 요인은 ‘견고했던 로열 아카데미 시스템의 붕괴’이다. 사회요인은 ‘중간계층의 확장, 사진 기술의 발전’이다. 생산 요인은 ‘미술 재료의 발달, 야외 작업의 발달’ 등이다. 소비 요인은 ‘중간계층의 취향(예를 들면, 대저택에 걸 수 있는 큰 그림보다 거실에 걸 수 있는 작은 그림 선호) 부상’이다. 이 네 가지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상파가 등장한 것이다. 이어 저자들이 이 네 가지 요인에 ‘분배’라는 요인을 가미시킨 ‘보완된 문화의 다이아몬드 이론’을 제시한다. 분배는 예술품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미디어 등을 통해 분배되는가와 관련이 있는 요인이다.

결국 하나의 예술품이 창조되는 과정에는 무수한 행위자들이 개입하고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예술품이 불멸의 걸작으로 남으려면, 창작자의 가족·동료·제자들이 그 명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이 책의 저자들은 설명한다.

프랑스 언어학자인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의 개념을 대중예술에 접목해 분석을 시도한 점도 흥미롭다. 소쉬르가 제시한 랑그는 문법적입 체계, 언어를 조직하는 법칙과 관습의 개념이다. 파롤은 랑그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발화의 개념이다. 이를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적용하면, 이 시리즈의 기본적이며 공통적인 이야기 줄거리는 랑그가 된다. 그러나 각 시리즈별로 약간의 다른 서사들이 존재한다. 이는 파롤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사회의 문화적 가치관에 따라 원작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예컨대, 일본 애니메이션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인공 캔디는 원래 말괄량이 소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캔디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참고 참는 인내”의 아이콘이 된다. 개구리 소년 왕눈이 또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비바람이 몰아쳐도 일어나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의지의 한국인이 된다.

임인재 기자·언론학 박사 mimohh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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