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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될 수 없는 것, 또는: 장소의 재발견
압축될 수 없는 것, 또는: 장소의 재발견
  • 페터 슬로터다이크
  • 승인 2006.08.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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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중 옮김

다시 한번 말하건대: 결정화(結晶化)된 세계체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운동성과 가변성을 띠게 된다. 그러한 세계 안에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들 중 그 어떤 것도 아직 “역사”라는 성질을 지니고 있지 않다. ‘세계사’라고 불렸던 많은 복합된 사건과 이야기에 덧붙여진 유일한 부록은 세계기후의정서(Weltklima-Protokoll)나 그에 상응하는 세계에너지법안(Welt-Energie-Kodex) 및 세계환경경찰(Weltumweltpolizei)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것의 관철이 현재로서는 단지 희박하고 먼 미래의 선택으로만 보이는, 아직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을 비롯한 소비지향적 국가들은 당분간은 상승된 세계소비에 대한 그들의 우선권을 포기하기엔 자신들이 너무도 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이 겪은 공간체험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 국가의 거주자들에게 있어서 지리적인 전지구화(terrestrische Globalisierung)가 낳는 가장 주된 결과는 세계의 놀랄만한 거대화인데, 이는 대양(大洋)이 지니는 숭고한 거주불가능성 앞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에 의해 수반된다. 앞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근대 유럽인들의 대체적인 성향에 들어 있는 양면적인 성격을 띤 반해양적(反海洋的, anti-maritim)인 기본정서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정서는 사물들이 인간의 인식장치를, 그것도 종신직이 보장된 철학교수의 인식장치를 향해야 한다는 칸트의 요구에서 정점에 이른다; 항구도시나 심지어는 배 위에서의 삶을 하나의 심대한 탈선으로 간주했던 하이데거의 지역주의(Regionalismus)는 칸트의 이러한 생각을 메아리처럼 되뇌었다. 바다를 향한 정신적 개방은 오랜 세월 동안 소수인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즉 그것이 실질적으로 친숙한 정서였던 것은 해안도시 상인들의 기층문화에서였을 뿐, 그러한 개방성은 내륙에서는 언제나 먼 것을 동경하는 몽상가들이나 탐험가들의 회고록을 읽는 독자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근대 전체 동안 만연되었던, “바다에 거품을 내는 자들”(Seeschäumer)과 “대지를 밟는 자들”(Landtreter) 간의 대립은 어떤 언급할 만한 역할도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바다에 친근함을 느끼건 육지에 친근함을 느끼건 간에, 고속의 매체들은 수평선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수평선은 모든 방향에서 가득 차서 넘친다.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세계이며, 이 모든 것은 자칫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된다.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분기점은 편리한 시설 안에서 인간들이 가지는 공간감각을 기준으로 정해질 수 있다. 언제 어디서건 들려지는 뉴스들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예전에는 그토록 넓었던 세계를 마치 가득 차 넘치는 더러운 작은 공인 것처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텔레비전 앞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탈경계화된 세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달콤함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던 실질적인 근대적 감각은 느린 매체가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들, 지구의(地球儀), 그리고 여행책자들만이 경외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상태에다가 새로운 형식을 부여할 수 있었던 바, 바다를 항해하는 민족들과 육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바로 이 새로운 형식을 통해 로 지구의 새로이 열려진 차원들에게 응답하였다. 대항해 시대에 있어서 원거리교통의 속도는 매우 느린 것이어서, 이로 인해 각 지역간의 먼 거리가 여전히 그것의 존엄성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 한 몫을 하였다; 머나먼 길들은 이방인들에게 이르는 가격을 여전히 높게 유지했다; 이 먼 길들은 새로이 발견된 세계로까지도 여전히 쳐져 있었던 이국적인 베일에 함께 작용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단체관광이 출현하기까지는 세계에 대한 지식은 값비싸고 희귀하며 또한 오도되기 쉬운 것이었다. 우리는 오텔로가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자신이 황야를 여행하는 동안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를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20세기의 스피드기술에 의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단순한 기억으로 되어 버렸다. 전화망과 방송기술, 그리고 항공비행에서의 제트추진장치로 인해 거리의 극복에 즉한 그러한 척도는 두 세대도 채 지나기 전에 자명한 것이 되었으며, 그럼으로써 이제 공간은 마치 거의 전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크기인 것처럼 지각된다. 공간은 그것이 빠르고 초고속으로 횡단되는 것에 대해 그 어떠한 유의미한 저항도 행사해서는 안되었기에, 그것은 인간의 세계-내-존재의 기본영역인 것처럼 보였으며, 축소와 압축 및 파기를 마치 자발적인 양 받아들였다. 마르크스와 엥엘스가 1848년의 󰡔공산당 선언󰡕의 가장 잘 알려진 대목에서 부르주아 시대의 혁명적 업적들을 조망하면서 “모든 신분적인 것과 정지해 있는 것은 사라진다”(Alles Ständische und Stehende verdampft)고 확정했다면, 20세기의 감수성은 여기에다 다음과 같은 것을 추가한다: 연장되고 공간을 요구하는 모든 것은 압축된다(Alles Ausgedehnte und Raumfordernde wird zusammengepreßt). 국제전화는 이 중에서 가장 단순한 징후이다. 공간이 사라진다는 신화가 참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저 전화수화기를 들거나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 하면 된다.

칼 슈미트는 땅과 바다가 담당했던 세계사적인 역할이 점점 더 퇴색하고 있음에 관해 고찰하면서 오늘날의 “공간혁명”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고자 했는데, 그의 주제는 기실은 공간의 압축이었다. 공간의 압축은 거리의 중화․무력화(Neutralisierung)를 수반하였다; 그것은 두 지점 사이에 위치한 공간이 그 지점들을 갈라놓는 작용을 지양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압축할 수 있는 잔여공간을 제외하고는, 여기와 저기 사이의 길을 단축했다. 이 잔여의 공간은 단지 성가신 것일 뿐, 그 어떤 더 이상의 주목과 경외도 요구할 수 없었다. 현대인들은 비록 중세의 몇몇 성자들이 할 수 있었다고 하는, 동시에 두 위치에 존재할 수 있는(Bilokation) 능력은 지니지 못했지만, [적어도] 위치이동(Translokation)의 능력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만은 자명하다; 그들은 정확하게 동시적으로 두 개의 장소에 있을 수는 없으나, 매우 짧은 시간에 여러 장소를 자의적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면 공간은 어찌 보면 무시해도 무방한 크기가 되어 버린 것으로 여겨진다. 즉, 실천적인 면에서는 거리와 장애로서의 공간이 정복되었으며, 이론적인 면에서는 남성들의 차원으로서의 공간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교통과 의사소통의 담지체로서의 공간은 무언의 배경으로 되었고, 도덕적으로는 물화(物化)의 소재지로 간주되었다. 빠른 것에 대한 수요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오로지 죽은 공간만이 좋은 공간이었다; 공간이 지녀야 할 제일의 덕목은 그것이 느껴질 수 없게 하는 능력에 있었다. 빠른 속도의 여러 과정들을 위해 공간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존재론적 규정들을 구성했던 모든 것으로부터―즉 이웃간을 구분하고, 부분들을 흩어 놓고, 육체를 떼어 놓고, 대리인들을 위치시켜 놓고, 연장된 것들 간의 경계를 제공하고, 군중집회를 방해하고, 폭발을 차단하고, 다수를 통일시키는 것 등등으로부터―물러나야만 했다. 공간이 갖고 있던 고전적 특징들 중 남은 것은 오직 그것의 가전도성(可傳導性),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도성(Konduktivität)-접속성(Konnektivität)-중간성(Medialität)이라는 국면들의 다발뿐이었던 바, 이것이 없이는 압축을 통해 공간을 극복하려는 근대의 고투들은 아무런 유의미한 결과도 얻지 못한다. 자연에게 호칭으로 부여되었던 거리의 공간, 분리의 공간 및 배치의 공간 대신에 모음의 공간, 연결의 공간, 압축의 공간이 그 자리를 대신했거니와, 바로 이러한 공간이 우리를 기술환경으로서 둘러싸고 있다. 이 기술의 공간에서는 멀리 떨어진 것들이 물질적으로든 상징적으로(in effigie)든 임의적으로 먼 곳으로부터 ‘여기’와 ‘지금’으로 불려올 수 있다. 모니터들은 실제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불러오고, 조작하고, 연결하고, 확인하고, 지운다. 전지구적인 네트워크 덕분에 지표면의 무수한 지점들이 독서실로 바뀐다. 물론 여기에는 하이데거가 ‘지금-여기의-진리저장소에서 존재의 기호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불렀던 바의 독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물론 하이데거는 진정한 세계독서실은 오직 두 개 밖에 없다고 하는, 즉 하나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상가들(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이요, 다른 하나는 프라이부르크-토트나우베르크라고 하는 기이한 생각을 가졌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하이데거가 이러한 점 말고도 다른 점에서도 별로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는 언급으로써 만족하고자 한다. [사람들을] 모으는 가장 권위 있는 것이 언어라고 하는 그의 생각 역시, 현금의 명백한 멀티미디어 세계 앞에서는 지지되지 못한다.

(공간의 “혁명”이라 칭해지는) 근대의 공간압축은 고대 그리스에서 동방의 자음문자에 모음을 덧붙임으로써 이루어졌던 것과 같은, 문화적 분기점을 지속적으로 낳는다. 맥루한, 구디, 헤이브록 등이 지적했듯이, 고대 유럽의 인본주의적인 독자(讀者)-주관성(Leser-Subjektivität)은 오로지 그리스 문자의 발생을 통해서만 발전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주관성이 지니는 뚜렷한 특징은 바로 “텍스트와 관계”할 수 있는 능력에, 다시 말해 [실제의] 상황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있었다. 그리스의 시문학과 산문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만 잠재적인 채 남아있던 인간 지성의 능력을, 즉 인간들과 사물들과 성좌들을 그것들이 [눈앞에] 없이도 표상할 수 있는 능력을 표출한다. 문자로 기록된 텍스트 덕분에 인간의 지성은 다소간을 불문하고 어쨌거나 어떤 상황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상황-안에-머물러야’(In-Situ-Aufhalt) 한다는 강제로부터 해방된다. 다시 말해: 하나의 상황을 인식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나는 더 이상 그 상황의 참여자로서 그 속에 빠져들거나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그 상황과 함께 섞여서는 안되거니와, 텍스트에 있는 그 상황에 대한 서술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때 나는 마음대로 내가 [지금]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연상해낼 수 있다. 문자로 인한 이러한 역사적 분기점이 이루어진 이후에 세계-내-존재는 체험된 상황들과 표상된 상황들로 분명하게 나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표상된 상황들은 그것의 문자화 덕분에 ‘상황-안에-있음을-통한-이해’(Verstehen-durch-in-der-Situation-Sein)가 행사했던 독점으로부터 뿌리쳐 나올 수 있다. 그리스 문자와 더불어 의미의 탈콘텍스트화라는 모험이 시작된다; 19세기에 매체의 전환이 있기까지는 유럽의 모든 고등 문화는 ―음악과 그림의 특별한 발전을 차치하고는― 바로 문자문화였다는 것을, 즉 부재(不在)하는 것을 꾸며내는 것(Simulation von Abwesendem)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러한 탈콘텍스화의 모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관료주의와 제국 서사시의 정신에서 나온 정치가 상응했다.

고대 유럽의 문자화는 근대적 공간압축의 전사(前史)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콘텍스트에 대한 텍스트의 저항을, 즉 생생하게 체험된 상황으로부터 의미가 이탈하는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문자화는 탈콘텍스트화하는 사유(일반적으로 ‘읽음’(Lesen)이라고 불리는)를 훈련하기 때문에, 그것은 실제의 상황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강제로부터 지성을 해방시키며, 또한 무한하게 넓은 ‘[직접적인] 상황-안에-있지-않은-세계들’(Nicht-In-Situ-Welten)을 지성에 대해 열어 놓는다. 그것은 이론적 인간(der theoretische Mensch)을 낳으며, ―이를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빗대면서 공박하였다. 이 막강한 관찰자, 이 절대자의 후예는 바로 문자화의 대표자로서, 그는 자신의 실제적 삶의 그 어떤 처지에 있든 간에 그것과 원칙적으로 다른 곳에 가 있다. 심지어 자신이 죽는 순간에도 이 현자는 마치 자신이 그 광경을 이미 어떤 곳에서 읽었다는 듯이 행동한다; 더욱이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자신을 데려다 줄 곳에 이미 가 있다고까지, 즉 다른 무대에, 영원한 형상들의 장소에, 불멸의 문자들이 사는 고향에 가 있다고까지 사칭한다. 소크라테스가 단연 뛰어나게 유럽 지혜의 영웅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현존하는 것(das Anwesende)의 권위를 줄곧 거절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수사가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수다꾼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들에 의해 조작되던 상황들 속으로 말려들어 가리라는 기대를 거절한다. 그는 스스로를 관념적인 환경들 속에서 재콘텍스트화[=탈콘텍스트화]하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상황들, 자신을 빨아들이려는 모든 상황들로부터 “빠져나오는”(aussteigen) 지성의 제일증인이다. ‘지성의, 눈앞의 상황들과의 단절’ 더하기 ‘이상적 상황들 속으로의 재이주’라는 이러한 이중적인 활동은 플라톤 이래로 철학이라고 불린다. 철학이 자신의 자취를 남길 때, 사람들은 삶에 대한 ‘읽으면서 맺는 관계’와 ‘같이 하면서 맺는 관계’ 중에서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유럽의 이와 같은 가장 위대한 해방운동에서 초래되는 결과는, 이미 고대에서도 반지성적인 복고운동이 일어났다는 데에서 읽어낼 수 있는데, 이 운동은 [눈앞의 현실로부터] 떨어져 있는 표상의 공간에서 떠돌아다니는 그릇된 자유에 대한 저항이었다. 우물에 빠진 철학자 탈레스에 대한 트라키아인 하녀의 비웃음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의 비난 역시 ‘읽혀지는 것’(das Gelesene)에 대한 ‘살아지는 것’(das Gelebte)의 이러한 반동에 속한다. 스토아학파 이후로 고대의 지혜의 스승들은 무엇보다도 이 ‘살아지는 것’과의 재연결을 갈구하는 소망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고 있다; 디오게네스는 물체화될 수 있는 것(das Verkörperbare)[=실질적인 것, 구체적인 것]을 향한 결코 우스꽝스럽지 않은 복귀를 대변하는 우스꽝스러운 영웅이다.

이러한 경향들은 상황-안[에-있어야-함의]-원칙(In-Situ-Prinzip)의 최초의 복원이라고 부를 만하다. ―즉 이 경향들은 관찰의 주체인 지성을 주어져 있는 [생생한] 상황으로부터 (단지 명목상으로든 또는 실질적으로든) 과도하게 분리해 버리는 것에 맞서는, 참여하는 감각(Teilhabe-Sinn)의 저항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디오게네스와 예수, 그리고 트라키아인 하녀는, 적어도 사는 것보다 읽는 것을 선호하는 자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야말로 그 단어의 의미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반동분자들이다. 스토아와 에피쿠로스학파와 마찬가지로, 이 세 인물은 [자신들에게 붙여진 ‘반동분자’라는] 이러한 레테르에 매우 만족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삶은 언제나 끊임없이 원초적인 자기충동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때때로는 반동이어야만 한다고, 즉 기형화하는 강제들에 대한 순수한 거역(Dagegen)이자 부당한 압축에 맞선 순수한 저항이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천명할 것이다. 하녀들의 말로 하자면[=좀 거친 표현을 쓰자면]: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만족할 수 없다; 그리고 좌파의 표어로 하자면: “저항하지 않는 자는 거꾸로 사는 자이다”(Wer sich nicht wehrt, lebt verkehrt). 예로부터 그러한 “반동적” 충동들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띠고 시대들을 관통한다; 그 충동들은 초기사회주의자들, 상황주의자들, 공동체주의자들 그리고 집단요법치료사들에서 다시 도래한다. 그것들은 이론적 공론에만 머무는 방관자들에 대한 생기론자들(Vitalisten)의 비판에서 다시 메아리친다. 이 반동적 충동은 아마도 오디오 문화에 대해, 그것은 책에 의해 강탈당했던 권리를 총체적이고 비직선적인 지각에게 되돌려 준다고 한, 마셜 맥루한의 찬사에서 그 최고의 지적인 단계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에 대해 모리스 블랑쇼의 책-낭만주의적(buch-romantisch) 테제는 문학은 어떤 “총체적 경험”에 이르는 잠재력을 그 속에 지니고 있다고 응답한다. 블랑쇼의 이러한 입장은 바로 그것이 지닌 부조리한 경향을 통해 설명된다: 그것은 생생하게 체험된 상황들의 전체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바로 읽는 행위의 본성에 놓여 있다는 점을 잊도록 만들고자 함으로써 총체적 힘으로서의 독서를 칭송한다.

오늘날의 사고에서 이와 견줄만한 수정운동은 주로 위축된 공간의 문제와 관련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의 거대한 복귀는 수동적 연대(passive Solidarität)로서의 “자리에 듦”(Einbettung)에 대한 다양한 반성에서 나타난다. 거리들이 오로지 극복되기만을 위해 현존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뒤로; 지역의 문화가 오로지 다른 전통들과 혼합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시작한 뒤로; 지구의 모든 표면들이 오로지 지리학적 지도와 항공사진 상의 멋들어진 적요(摘要)에 대한 부동의 대응물만을 의미하기 시작한 뒤로; 공간이 그저 전자기기로 작동되는 두 작업장 사이에 있는 無를 의미하는 데 그치기 시작한 뒤로 ―이러한 추이에 맞서는 저항이 선택하게 될 노선은 이미 예견될 수 있다: 즉 현존의 문화(Präsenzkultur)가 그것의 권리를 상기시켜야[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연장된 것의 체험은 조만간을 불문하고 압축, 축약 그리고 개괄의 효력에 맞서 저항하게 된다. 제아무리 탈콘텍스트화된 의미라고 해도, 그것이 아무런 구속력도 없는 추상작용 속에서 완전히 해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종심급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의 건너뛸 수 없는 상황에 계속 종속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압축된 공간 또한, 그것마저 제거됨으로써 완전히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산의 연장체험(Ausdehnungserlebnisse)에 연결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이러한 통찰은 보편주의와 원격기계(Tele-Maschinen)의 탈콘텍스트화하는 경향에 맞서 지역적인 것에 대한 상기를 옹호하는 이들에 의해 관철되고 있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사고는 곧 수축된 세계에 맞서는 봉기이다. 장소적 연장(örtliche Ausdehnung)은 바로 느림의 발견과 결부된다. 만약 우리가 고유한 현존재를 ‘일 대 십만’ 또는 ‘일 대 천만’이라는 척도로 축소해 버리는 것을 돌연 그만둔다면 어떨까? 만약 우리가 지도에서 연장된 삶을 읽는 법을 갑자기 배운다면? 만약 우리가 시간숭배(Chronolatrie)에서 깨어나 친장소적인(topophil) 감각들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몇몇 뻔뻔스런 장사치들을 사원에서 추방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장사치들이 물러난 뒤에는 장소의 순수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과연 확신할 수 있을까? 지역적인 것을 다시 강조하는 것에는 모종의 위험요소가 숨어 있다. 왜냐하면 “지역적”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보기에 정치적 선언을 위한 원료를 제공해 주는) 혼란을 [신문]사설로 가공하는 저널리스트들과 사회학자들의 언어게임에서 가장 흔히 곡해되고 있는 어휘에 속하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반동적인” 사유 또한 잘 숙지되어야 한다. “지역적”(lokal)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는 “전지구적”(global) 또는 “보편적”(universal)의 반대말로 사용된다. ―이 경우 전지구적/지역적이라는 단어쌍은 동질적(homogen)이고 지속적인 공간의 동일한 질서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동질적 공간들은 등가치를 지닌 점들 및 직선을 통한 그 점들의 연결가능성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공간개념에 의거해서 다음과 같은 명제가 성립된다: “보편적인 것은 벽이 없는 지역적인 것이다”(The universal is the local without walls). ―이는 비록 귀에 쏙쏙 들어오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릇될 수 없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한편으로는 분명] 호감을 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를 여러 지역거주지의 총괄개념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즉 보편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지역간의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주장은 어떤 [좋지 않은] 징후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글로벌 시대에 실존이 처한 공간적 상태가 말해지는 경우에는 언제나 만나게 되는, 속수무책의 ‘상식’(common sense)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나이브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어떤 대칭도 존재할 수 없는 곳에 하나의 대칭이 있다고 여기며, 아무런 벽도 없는 곳에서 벽을 허물기 때문이다. 세계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Roland Robertson)에 의해 인기어가 된 ‘지구지역적’(glocal), ‘지구지역화하다’(glocalize), ‘지구지역화’(glocalization)라는 합성어들도 그와 같은 유형의 것이다. 즉 이 신조어들 또한 현금의 세계화 담론에 잠복해 있는 기만행위들을 반영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오류는 바로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을 마치 점과 면처럼 서로 연관짓는 데에 있다. 이렇게 되면 지역적인 것은 불가피하게 마치 그것이 지구적인 것과 이미 근본적으로 동종(同種)의 것인 것처럼, 그리고 이 점을 단지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을 뿐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지역적인 것은 규칙적인 수정격자(水晶格子) 안의 한 부위인 듯이 생각되며, 마치 어떤 다국적 기업의 지점이 기반을 잡은 조용한 촌구석인 듯이 말해진다. 만약 여기에서 경영자들이 토착민들에게 그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설명하고, 또한 낯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다지 해로운 일이 아니라고 현지인들이 수긍한다면,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우리’와 ‘저기 있는 사람들’ 사이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큰 것은 작은 것에서, 또한 역으로 작은 것은 큰 것에서 안식처를 얻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낯선자들과 토착인들 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동질적인 장소공간에서 이루어지고, 또 거기서는 [그들 간의] 지위가 원칙적으로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지만, 이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지역적”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엄청나게 많은 함축을 지닌 비대칭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이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는 정신적 사건이다. 왜냐하면 장소에 대한 이러한 강조를 통해서는 바로 압축되지 않은 것과 축약되지 않은 것을 위한 하나의 언어가 예고되기 때문이다. 지역적인 것에 대한 강조는 ―공간의 탈콘텍스트화, 압축, 도표화, 중성화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자기-안에서-연장된 것’(das In-Sich-Ausgedehnte)의 고유한 권리를 관철시킨다.

지역주의를 통해서는 실존주의가 공간분석적으로(raumalaytisch) 다시 정식화된다. 이제 그것은 스스로를 공간화하는 힘으로서의 현존재가 원래 어떤 것이었는지를 더욱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현존재가 바로 자리에 들어 있음(Eingebettetsein)을 통해 규정된다는 점이 실제로는 오래전부터 불가항력의 엄청난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상세하게 표명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참여(Partizipation), 상황의존성(Situiertheit) 및 ‘들어 삶’(Einwohnung)이라는 보편적 논리가 생겨난다. 축약되지 않은 연장됨, 연결됨, 귀속됨이 없이는 그 어떤 현존재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여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리에 듦’의 의미가 어떤 정신이상(Psychose)으로 인해 손상되거나 끊임없는 도피를 통해 교란되지 않았다면 말이다(하지만 심지어는 정신이상마저도 어떤 야만적인 집짓기가 아닌가? 그리고 도피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들어가 사는 세계관계에는―20세기의 위대한 공간사상가들이 이것을 지적하였다― 실내장식을 만드는 행위,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거리를 제거하는 실천(ent-fernende Praxis) 그리고 (슈미츠적 의미에서) 울타리를 두르는 경작(befriedende Kultivierung)이 언제나 이미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가 사는 곳에서는 여러 사물들과 사태들, 공생자(共生者)들 그리고 인격체들이 지역적인 연대체계(Solidarsystem)로 통합되어 있다. 거주하는 행위는 오랜 동안 장소에 충실하는 실천(Praxis der Ortstreue über lange Zeit)을 기획한다. ―그 밖에도 이는 특히 거의 규칙적으로 같은 장소들을 찾아 나서는 유목민들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거주의 행위는 반복가능한 몸동작과 인식을 통해 하나의 면역체계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성공적인 습관화를 통해 ‘짐이 없음’(das Entlastet-Sein)을 분명한 과업들로 ‘짐 지고 있음’(das Belastet-Sein)과 연결시킨다.

바로 이 때문에, 들어가 사는 행위는 곧 비대칭성의 어머니이다. 우리가 배우고, 다른 사람의 역할을 이어 맡음으로써 “사회화”된다고 주장한다면, 사회학자들의 생각은 옳을 수 있다; 이 말은 강탈도 구매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집을 넘겨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피부 안에 있는 장소는 대여될 수 없다. ‘들어가 사는 것’은 바로 내가 오로지 나와 나의 사람들에게서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오로지 그와 그의 사람들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드러난다. ―양면대칭으로 된 신체의 왼손과 오른손처럼, 위치들은 존재론적으로 뒤바뀔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우리는 ‘쉰오이키스모스’(synoikismós), 즉 주거공동체나 ‘코이노스 비오스’(kóinos bíos), 즉 공동생활을 결심할 수 있다. 그러한 함께 삶을 통해서는 공동경작의 새로운 아궁이가 생겨나는데, 이 아궁이의 충만함과 다툼으로부터 다른 타인들은 제외되어 있게 된다; 이들과도 또한 장소교환은 다시금 불가능하다. 더 높은 단계의 주거공동체들만이 우리를 다른 타인들과 다시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합(통합)들은 어떤 특정한 크기의 저편에서 단지 수사학적이고 법학적인 형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기초적인 라운지-연대(Foyer-Solidarität)는 ―만약 이렇게 불러도 된다면― ‘우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의 기본층위(Grundschicht)이다. ―이 [‘우리’라는] 대명사는 어떤 집단적 객체(Gruppenobjekt)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자기촉발과 자기공간화를 통해 스스로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수행적 현실화(performative Aktualisierung)이다. 이 대명사는 이방인들을 알게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다지역적 연대를 배제하지 않는다. ―(쌍방간에 축복을 담합하지 않는 한에서의) 기독교의 교회와 불교의 승가(僧家, sangha=공동체)는 먼 곳에 대한 주목과 소수인들의 응집력으로서의 사랑이 일종의 ‘연장된 것’(res extensa)을 형성하고 있음을 매우 잘 증명해 준다. 물론 그것 말고도 원격-감수성(Tele-Sentimentalität), 시대별로 등장하는 히스테리의 변종들, ‘우리’를 나타내는 의상(Wir-Kostüm)과 불화를 이루는 기획적 연대(projektive Solidarität)도 존재한다.

‘들어가 사는’ 이는 자신의 집과 그 집을 둘러싼 주위환경 및 그 공동구성요소들을 결코 제도제작자나 토지측량가의 눈으로 대하지 않는다. 지리학자도 일단 집에 돌아오면 측량하고 축소하기를 그만둔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일대일의 척도로 그 자신이 살고 있는 것 속으로 기획해 넣는다. ‘들어가 사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상황에 수동적으로 참여해 있는 것, 즉 그 상황의 혼연하고 뚜렷한 연장성(Ausgedehntheit)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 산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역의 충만함(Pleroma)에의 참여하는 것이며, 또한 그 충만함에 자기 스스로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척도에 준해서 축소되어서도, 특정한 척도를 넘어 확장되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들어와 자리하고 있는’(einbettend) 상황들의 연장성(Ausgedehntheit)―우리는 이를 즉각 이해한다―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의 자연적인 공범(der natürliche Komplice des Nachhaltigen)이다. 바로 이러한 연장성에서 경작[=문명화, 도야, 교화]이 비롯되거니와, 이는 하나의 사태에서 이루어지는 반복과 감내가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사해서 새로이 집을 꾸밀 수 있고, 이혼하고 또 다시 결혼할 수 있으며, 이민을 가서 다른 곳에 귀화할 수 있다. 근대인들은 이 모든 것을 고대인들보다 더 자주 행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관계는 새로운 상황들에서도 다시 도래한다. ―우리는 하나의 특정한 지점에 발을 딛고 있으며 연장되고 있다. 횔덜린의 직관은 ‘상황-안-원칙’을 가장 분명하게 표명한 바 있다: “인간은 대지 위에서 시적으로 산다”(dichterisch wohnet der Mensch auf der Erde); 메를로-퐁티는 현존재는 세계를 품으면서(welthaltig) 또한 세계를 여는(weltöffnend) 풍만함 속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써 설명했다: “신체는 공간 속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는 공간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Der Leib ist nicht im Raum, er wohnt ihm ein);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을 분석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존재 속에는 가까움을 지향하는 본질적인 경향이 있다.” 이러한 모든 이론들은 하나의 공간이론적 시각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것들은 현존재란 바로 압축될 수 없는 것 속에 머무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언명한다. 이러한 시적인 거주는 즉흥시를 포함한다. ―제아무리 끊임없이 자리를 이동하는 사람도 그 도중에는 ‘거주’(das Wohnen)라는 행태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다. 심리학자들은 이동을 많이 하는 이들에서 일종의 ‘이동식 보금자리 만들기’(mobiles Cocooning)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동유형을 고찰한 바 있다; 이를 대표하는 모델들은 유목민들에서 발견된다. 왜냐하면 유목민들은, 예쁘게 표현하자면, 바로 이동하는 것이 집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는 덜 예쁜 말로 표현하자면, 바로 탈영역화(Deterritorialisierung) 그 자체에서 자신의 영역을 다시 찾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유목문화는 사회적 진화의 과정에서 출현했던 체계들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집에 있기 좋아하고”, 가장 폐쇄적인 것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분적인 것과 정지해 있는 것이 사라진다는 마르크스와 엥엘스의 주장은 틀렸다. 자본에 의한 엄청난 유동화(Mobilmachung)도 해체(Liquidierung)에 저항하는 많은 것들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역문화를 해외송금을 통해서 옮겨놓을 수 없다; 그것은 번식의 과정을 약간 수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연장된 것이 압축에 의해 사라진다는 것도 틀린 말이다. 무엇보다도 구석구석까지 세세하게 항목화되어 있는 완고한 근대적 법체계는 언제나 보수적 세계관행의 극히 드문 차변항목을 제공해 줄 것이다. 오히려 마르크스와 무공간성을 주장하는 현대의 소피스트들이 내 놓은 테제는, 자본주의적 세계압축이 수많은 오만한 과장 속에서 반영되고 있음을 증명하거니와, 우리는 그러한 과장이 계속해서 받아들여질 만한 것으로 여겨지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전지구화”는 그것의 본색을 완전히 숨기고 있는 바, 그것은 도깨비불로 치장하고 있는 의미론적 장소이다; 그것은 세계의 진행(Weltlauf)에 관한 끊임없는 주장들을 위한 저장소로서 기능한다; “전지구화”는 그것의 복합적인 실질경영 말고도 가정용과 국가용의 여러 성급한 환상들과 공포들에 입각한 상부구조를 산출해냈다. ―그 대부분은 하늘을 나는 꿈의 사회학적 버전들, 일자리와 몸무게의 상실에 대한 두렵고도 자극적인 상들이다. 그것들은 장소적인 관할권의 평가절하를 가져오며, 침범과 외세개입을 포고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것을 더 낫고 더 싸게 만드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보이지 않는 자들과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부득이성을 들먹인다. ―이들은 서유럽 산 틀니를 반값에 대체해 버리는, 헝가리와 폴란드의 저 파렴치한 치과의사들과도 같다.

시간의 유익함을 즐기는 정치적 출판업자들은 대중의 머리 위에 용들을 날게 하며, 사람들은 머리를 뒤로 제치고 한동안 황홀하게 그 용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친숙한 환영들과 과장들을 실제의 크기로 되돌리면, 다른 말을 하는 구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계화”라는 원격-정신착란(Ferne-Delirium)의 한 가운데서도 대다수의 거래와 업무들은 불가피하게 장소적이다. 전화통화에서 시내통화는 불가피하게 시외통화를 압도한며, 반드시 얼굴을 맞대는 상황에서가 아니라도, 대다수의 거래들은 지역에서 그리고 이웃간에 일어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의 수출경제마저도 그 주된 거래는 유럽연합에 있는 파트너들과 더불어 이루어지며, 가장 활발한 거래는 바로 옆에 울타리가 있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와 더불어 이루어진다. 그리고 비록, 엄청난 규모의 유조선과 컨테이너선박들이 보여 주듯이, 자금시장의 투기적 기업들에 관해 침묵하기에는 재료들의 원거리무역이 현실의 너무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실제의 상품들을 사고파는 대부분의 행위들은 확장된 주간시장(Wochenmarkt)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로 남아 있다. 이것이 없다면 경쟁은 많은 분야에서 단지 하나의 뜬소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실질경제의 영혼을 이루는 것은 내부의 수요이다; 잘 알려진 사례를 들자면,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오래 전부터 그들의 생산품을 국외에서 판매하려는 시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의 다수는 ―그들이 세계화를 말하건 지구화를 말하건 상관없이, 그리고 그들이 주권국민이건 대서양 연안 시민이건 간에― 언제나 자기 땅 안에서 휴가를 보낸다.

그럼에도 이러한 언급들은 지역주의의 의미를 단지 간접적으로만 건드릴 뿐이다. 왜냐하면 지역화의 결정적인 차원들은 ‘세계시장 대 지역시장’ 또는 ‘시골 대 대도시’와 같은 대립관계를 통해서는 완전하게 해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을 통해 체험된 연장성은 이웃간이든 바다를 건너서든 양도나 매각될 수 있는 생산품이 아니다. 도시와 시골이라는 대립관계 또한 ‘장소에-있는-존재’(Sein-Am-Ort)의 실존위상적(existentialtopologisch)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 예컨대 ―독자들에게 가장 생생한 실례를 들자면― 번식이라는 과정에 대해 우리는 ‘지역적’이라는 술어를 결코 박탈할 수 없다; 번식의 과정은 그것의 고유한 공간적 법칙들에 의거한다. 즉 그것은 어머니의 배가 불러지는 것에서 시작하거니와, 이 배불러짐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언명 속에서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언명 속에서도 결코 제대로 재현될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최초의 적소(適所, Nische)에서 이루어지는, 본의 아닌 은근한 침입성의 거주는 방문자와 주인 사이의 그 어떤 대칭관계도 표현하지 않는다. 어린아이 때부터 볼 때 그러한 거주는, 만약 그 아이가 후일 독재자가 되어야 했다면, 그가 자신의 삶에서 시작한 가장 일방적인 작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축하받을 것으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은 비대칭성―바로 이것이 삶이다―이 지니는 활력을 증명해 준다.

생물학적 번식에 바로 이어서는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 문화의 전수 및 수용세대에 의한 유산의 상속이 압축될 수 없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패러다임을 제공해 주거니와, 이 압축 불가능한 것은 끊임없이 비대칭적인 과정들 속에서 전개된다. 삶을 배운다는 것은 바로 장소에 있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장소들은 본질적으로 단축될 수 없는 둥근 구면(球面)의 영역으로서, 이러한 영역은 떨어져 나가 먼 곳에 있는 사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내-존재는 그것[세계-내-존재]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속에 자리하고 있을 수 없는 모든 것을 내버려 두는 것(Weglassen)을 언제나 특징으로 지닌다(∨?). 따라서 현존재의 학교는 연장을 배우는 것을 함축하는 바, 이는 곧 압축될 수 없는 공간-시간의 구조 속에서 항해하는 것을 뜻한다. 현존재의 학교는 그 출발점에서 수만 가지의 의미론적 장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모국어의 어휘들을 알게 해 준다. 이 의미론적 장소들에서 우리는, 그 지점을 소홀히 함이 없이, 그 어떤 글자도 지워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언어학에서는 너무나도 간과되어 온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휘사전들은 일정 정도에서는 어떤 주어진 문화 속에 포함된 사물들에 대한 주소록이라는 점과, 구문론들은 상징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자들과 사물들의 모임을 위한 집회규정들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이다.

번식과 어린아이 기르기를 고찰하는 가운데, 세대간의 모든 성공적인 과정 내지 “전수”에는 전달의 비대칭성(Übermittlungsasymetrie)이 있음이 뚜렷하게 눈에 띤다. 문화적 지식의 전수에서 어린아이들이 받는 편(die nehmende Seite)으로서 행동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문화는 지금까지 없었다. 언어는 언어를 배우게 될 이들 앞에 현존한다; 언어의 넓이와 높이는 워낙 대단한 것이어서, 바로 언어 속에서 “존재의 집”을 보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현대의 매체세계에서 일어나는, 언어적 실행의 주변화에는 들어맞지 않는 낭만적인 과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모두가 더욱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테제를 옹호하는 자들이 보기에 어째서 자연언어들이 엄청나게 불쾌한 것인지를 더욱 더 잘 이해한다: 활력이 없는 언어체계들은 불쾌감을 유발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체계들은 압축과 가속에 결코 간단히 고개를 숙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호의 영역에서 그러한 체계들은 사물들의 영역에서의 부동산에 견줄 수 있다. ―다만 이들 간의 차이는, 후자가 상품으로서 순환될 수 있는 반면에, 언어는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것으로, 오로지 습득되어야만 하는 데에 있다. 빠른 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배우는 것은 최악의 시험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중국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고문행위와도 견줄만하다. 왜냐하면 고문에서는 ‘느림’이 곧 잔인함의 영혼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자연언어들은 전세계적으로 현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로 여겨진다. 자연언어는 화자의 과거지향성(Rückwärtsgewandtheit)과 자기만족을 입증해 준다. 아직도 프랑스어, 폴란드어, 독일어 및 무기력증을 담고 있는 이와 유사한 언어로써 21세기를 통과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이는 분명코 패자의 그룹에 속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무능력이 가지는 이름은 ‘단일국어 구사’(Monoglossie), 즉 자기 종족의 언어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다. 현대화를 지향하는 이들에 의하면 세계는 허용되는 모든 상황들은 ‘기초영어’로 표현될 수 있게끔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는 특히 공항들과 지도자들의 회담들에서 잘 확증되고 있는데, 어찌 삶의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지 않겠는가. 이와 비슷한 근거에서―즉 좀 더 발전된 문화적 실천들은 팽창에 대해 고집스럽게 저항하기 때문에― 실증주의적 교육입안자들은 일반적으로는 정신과학들에 대해, 그리고 특수하게는 문학적 교육과 음악적 교육의 개념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파우스트>를 강독하는 데는 여러 날이 소요되고, <안나 카레리나>는 몇 주일 씩이나 독자를 잡아두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들과 볼프강 림의 현악사중주를 제대로 해석하고자 하는 이는 몇 달을 투자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첨예화된 경쟁의 시대에 이러한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치인 것이다.

비대칭적 연장의 원리는 단지 미시사회학적 현상들이나 언어적 전개양상들 및 고급문화 영역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 원리는 또한 정치 분야의 핵심 영역에서도 관철된다. ―이는 국가의 시민권에 관한 법에서 [이미] 시작된다. 이 법은 살아있는 깃털 없는 이족(二足)동물들의 집합을 날카로운 비대칭적 집합들로, 즉 국가의 구성원과 비구성원들로 갈라놓는다. 상이하게 연장된 것은 커다란 연대공동체적(solidargemeinschaftlich) 구조들을 이룩하고자 하는 가슴 속에서 비로소 제대로 둥지를 튼다. 이러한 연대공동체적 구조들 중 특히 연금(年金)제도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의 부여를 어떤 상응하는 업적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정당한 시기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공로자와 비공로자 사이의 비대칭성을 성공적으로 기초짓고 “사회기생충들”(Sozialparasiten)에 의한 전복을 차단할 수 있는, 체계의 능력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지역주의가 결코 반동적인 본성의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장소에서의 연장’(Ausdehnung-am-Ort)을 긍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공공의 과업”을 위한 시의회를 통해 시민들을 징발하는, 민주적 삶의 본산에서 잘 드러난다. 중세 유럽에서 도시들이 다시 등장한 이후로 도시민들을 공동의 조직에서 함께 참여하도록 불러 모으는 것은 바로 장소적인 힘의 장(場)(Kraftfeld)이다. 여기에서는 자신의 관심사를 가장 민첩하게 따르는 자들도 단번에 시민으로서, 즉 ‘치타디니’(cittadini) 내지 ‘시뜨와엥’(citoyen)으로서, 다시 말해 공동의 관심사와 통합적 자극을 담지하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장소적인 힘의 장이 정치적인 것은 그 속에 집단적 충동이 순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정치는 단지 지역적인 기분들과 악의(惡意, Perfidie)들의 발산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은 도시나 국가 같은 (그리고 또한 국가들의 집단과 같은) 공동의 조직이 바로 의견과 욕구들의 차이에서 오는 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인식하는 과제를 해결하고 또한 발견된 해결책을 재검토하려는 구체화된 의지를 자신의 장소에서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로지 정치적 장소가 지역이기주의적으로 그리고 지역열광적으로(lokalenthisiastisch) 미래에도 동시에 투영될 때만이 ―다시 말해 장소가 이데올로기들보다 더 강력하고 시민공동체가 국가를 향해 손을 뻗치는 다국적 분파들보다 더 매력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때만이― 성취될 수 있다. 내가 [내가 몸담은] 지역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면,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공공의 것’(res publica)은 오로지 장소혼(Ortsgeist)들의 의회로서 기능한다. 곳곳에 손을 뻗치는 이데올로그들과 분파의 우두머리들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시민사회는 급격히 몰락한다(히틀러는 무기력해진 토착민들 가운데 들어가 미사여구로 권력을 잡은 이방인의 원형이었다. ―바로 이 점을 헤르만 브로흐는 간파하여 <산소설>(Bergroman)―이 책은 지금도 가장 심오한 파시즘 이론서이다―에서 기술하였다; 탈지역화된 원한(deterritorialisierte Ressentiments)의 수입자로서의 레닌에 대한 고찰에는 아직 이에 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20세기의 전체주의적 정치입안자들은 폴리스에 토대를 둔 면역력과 시민적 장소혼을 짓밟고 이루어지는, 허깨비같은 강령들에 의한 권력획득이 짧은 세월 동안 어느 나락으로까지 치달을지를 보여 주었다.

추상적인 침략적 성공프로그램으로서의 투기적 자본주의에 관해서 보자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현금의 해석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결코 전지구적으로 횡행하는 분파의 추종자가 아님을 증명하라고 요구해야만 할 것이다;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대하는 의혹은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라는 삶의 형식은 오로지 그것이 ‘자기관심’과 ‘자기우선’의 의미론을 ‘타자를 위한 자유’와 ‘무엇을 주어야 함’(Etwas-zu-Geben-Haben)의 의미론과 화해시킬 때만이 존속할 수 있다. 향유될 수 있는 민족적 정체성은 장소에서 산출되고 세계 속에서 재현될 수 있는, 하나의 ‘검증된 호칭’(appellation contrôllée)이다.

출처: 한국철학회 홈페이지(http://www.hanchu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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