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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김재권의‘극단에 선 물리주의’
[강연]김재권의‘극단에 선 물리주의’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0.1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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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5 13:08:28
물리주의의 옹호…"물리계 바깥은 없다"

(학술협의회 주관 제1회 석학연속강좌)

“물리주의는 거의 진리에 가깝다. 완벽한 진리는 아니더라도 진리에 가까우면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말하는데 동의해주리라 믿는다.”
지난 11일 한국학술협의회(이사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가 주관한 제1회 석학연속강좌에서 김재권 교수(미 브라운대 철학과 석좌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김 교수는 ‘극단에 선 물리주의’라는 제목으로 다섯 번에 걸친 연속강좌를 진행했다. 이날 강의는 다섯 번의 강좌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일반인 대상 강좌였다.

“영혼이나 정신은 인과적으로 무력”

강의 주제인 ‘물리주의’는 50년대 이후 서구철학계를 풍미했던 철학논쟁의 핵심적 주제였다. 김재권 교수는 현대 물리주의의 핵심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물질과 물질로 구성된 구조들이며, 이것들은 물리법칙에 따라 작용한다는 논제와 이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설명될 수 있다면 그것은 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물리주의가 기본적인 틀로서 받아들여진다면 “마음에 관한 주요한 형이상학적 문제는 물리계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심성이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된다는 것. 이러한 입장에 근거하자면, “물리주의는 거의 진리에 가깝다”는 김재권 교수의 결론은 물리주의의 옹호, 곧 우리의 심성과 마음은 물리계 안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영혼이나 정신과 같은 비물리적인 것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끌어들인다. “우리는 시공간적인 세계에 있는 물체들이며, 물체들과 인과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것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라는 진술이 그것. 데카르트의 영혼과 같은 비물리적인 것들은 시공간상의 위치를 떠나 물리계밖에 있으므로, 그것은 물리계와 아무런 인과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이나 정신은 인과적으로 무력하고, 따라서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심성은 물리계로 환원가능한가

그렇다면, 인간은 마음과 정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물체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수긍해야만 할까? 우리를 단순히 물리적 속성들로 환원할 수 없다는 ‘창발론(emergentism)’은 의식과 합리적 사고를 지닌 피조물로서 우리의 특수한 성격을 강조한다. 김재권 교수의 논적이었던 퍼트남과 포더는 심리적인 속성들이 물적인 속성을 넘어서서 자율적인 영역을 구성한다는 ‘비환원적 물리주의’를 주장한다. 이들 입장은 “자연계에서 특수한 위치를 지니는 자율성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조화시킬 것을 기약하는 매력적인 메시지”였지만, ‘심적 인과’를 설명할 수 없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반론. 다시말해, “믿음, 욕구, 느낌, 감각 등과 같은 심적 현상들이 어떻게 물리계안에 있는 사건들의 과정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칠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마음속의 고통(심적 원인) 때문에 두통이 생긴다면(물질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심적 인과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청중의 질문에 김 교수는 “머리를 부숴버리면 두통은 없다”고 농담을 던졌다. 즉, “하나의 신경사건이 원인을 가진다면 그것은 물리적 원인이나 물리적 설명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 김 교수는 이러한 논리를 “물리영역의 인과적 설명적 폐쇄원리”라고 규정한다.
이날 강연의 결론은 “심성이 물리계 안에서 인과적인 영향을 가져야만 한다면, 그것은 물리적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심리상태에 관한 한 우리는 행동과 물리적 사실들의 영역 안에 있다. 그것들은 우리를 이 영역바깥으로 넘기지는 못한다”
아트선재 센터 대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질의는 인간은 물리계 안의 존재인가, 영혼과 정신과 같은 자율적 속성을 가진 존재인가라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왜 물리주의인가”라는 한 청중의 소박한 질문에 김재권 교수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물리계이므로,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세계는 물리적 세계밖에 없으니까”라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30여년 동안 논쟁을 이끌었던 이 老대가의 대답은 의외로 소박한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서 있는 세계에 대한 긍정과 수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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