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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는 학자를 필요로 하는가?
우리사회는 학자를 필요로 하는가?
  • 권영우 / 독일 튀빙겐대 박사과정
  • 승인 2006.08.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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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우 칼럼]

대학교육은 사회적 인재의 배출과 학자의 양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와 기능을 갖는다. 전자를 통해 대학은 사회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후자를 통해 대학은 학문적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대학의 이 두 가지 역할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전자에만 치우친다면 대학교육은 개인적 출세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후자에만 치우친다면 학문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상 속으로 침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의 대학교육에 대한 인식과 대학의 현실을 살펴보면 고등교육이 견지해야할 두 가지 역할 사이의 균형이 깨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사회는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등교육현실을 곰곰이 살펴보면 도대체 우리사회가 학자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학문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와 지식을 갖춘 학자의 역할은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학자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엉뚱한 질문으로 이 글의 제목을 삼은 것은, 대학교육을 사회적 출세의 방편으로만 오해하고 있는 현 세태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조선시대의 문치주의전통은 학자의 덕목을 국가적 인재의 필수적인 자질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과거제도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된 제도를 통해 국가적 인재를 선발했다.

따라서 당시 공부는 곧 사회적 성공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잡학이라는 말에서도 짐작될 수 있듯이 학문의 자율적이고 균형 잡힌 발전은 더디게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당시 학문은 오로지 국가통치에 이바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 연구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조선의 문치주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당장의 국가적 이익에 따라서 대학교육에 대한 지원, 정확히 말해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학문의 자율적이고 균형적인 발전은 불가능하게 된다.

현재 우리사회와 정부는 학자의 지식과 연구역량을 소위 국가경쟁력재고를 위해서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학자를 양성하고 길러내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지원하는 데는 무관심해 보인다. 도대체 학자의 지식만을 도구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사회는 과연 진정으로 학자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반문해 본 것이다.

2006년도 교육예산 중에서 대학교육이상 고등교육에 배정된 예산비율은 12.3%뿐이다. 이것도 전년도 대비 0.1%삭감된 비율이다. 결국 이렇게 낮은 비율로 배정된 예산으로 학문후속세대를 지원한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고등교육지원 정책방향에서 재확인되듯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학문분야만을 지원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따라서 매우 적은 예산이 학문후속세대 연구지원사업에 투자되는데, 이 속에서 대학들과 학과간의 위화감과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근본적 비판 없이 연구지원사업의 진행에 대해서만 비판을 가하는 것은 근원적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학과 연구자들에게 자율적인 학문연구를 기대하기란 사실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정부가 각 학문의 균형적이며 자율적인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본 필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굳이 인문학에 국한시켜 국가의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은 피하고 싶다.

왜냐하면 모든 학문분야는 균형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발전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 발전의 혜택은 사회와 인류전체가 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교육의 수혜자는 개인뿐만 아니라 넓게는 사회전체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경쟁력을 위해 고등교육의 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정부와 사회전체는 아울러 대학교육의 공공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대학교육의 공공성 내지 사회적인 지원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자가 배출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대학교육의 공공성이 사라진 사회 속에서 값비싼 고등교육은 곧 투자의 의미로 전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상황에서 값비싼 대학교육은 개인적 성공의 수단으로만 여겨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학문을 더욱 근시안적으로 만들 것이며, 그리고 긴 호흡을 가지고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꽃피게 되는 학문의 잠재적 가치들은 외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학문적 성과는 근시안적인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서만 여겨지게 된다.

학자양성에 대한 생각은 뒤로 한 채,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만을 도구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회와 그러한 추세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대학의 모습 속에서 희망적 미래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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