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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읽기]『이론과 서사』(엘릭스 캘리니코스 지음)와 『역사학을 위한 변론』 (리처드 에번스 지음)
[비교읽기]『이론과 서사』(엘릭스 캘리니코스 지음)와 『역사학을 위한 변론』 (리처드 에번스 지음)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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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5:09:45
『이론과 서사』(엘릭스 캘리니코스 지음, 일신사刊, 2000)와 『역사학을 위한 변론』 (리처드 에번스 지음, 소나무, 1999)거대서사 객관성 옹호하며 탈근대론 대적


최갑수 / 서울대 서양사

최근에 들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하‘탈근대론’)의 열기가 다소간 진정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건축 분야에서 비롯하여 예술과 문학이론을 거쳐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심대한 인식론적 충격을 가했다. 그것이 20세기초의 전위적인 모더니즘과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냐 하는 논의가 최종적으로 결판난 것은 아닐지라도, 1968년을 전후하여 나타난 탈구조주의와 70년대의 해체주의를 철학적 기반으로 하는 80년대의 탈근대론이 소련의 해체 및 동구권의 몰락과 ‘역사의 종말’이라는 일견 거스르기 어려워 보이는 역사의 대세에 힘입어 ‘계몽사상의 기획’을 뛰어넘는 해방성과 첨단성을 뿜어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탈근대론의 대두와 역사학

탈근대론자 가운데 “오늘날 우리는 탈근대성의 일반적 조건 아래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왜냐하면 탈근대성은 우리가 동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이념 또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근대성은 바로 우리의 조건이다.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외쳐대는 강경론자들은 비교적 소수지만, 탈근대론이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사상의 ‘탈근대적 전환’을 야기했음은 물론 근대국가라는 둥지에 깃들어 있는 근대대학과 분과학문체계에 대한 의미 있는 근본적인 반성을 일으켰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탈근대론자들은 거대담론의 억압적 속성을 폭로하는 한편 그것이 갖는 백인, 남성, 유럽중심주의를 고발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차이를 승인하는 새로운 ‘정체성 정치’, 탈정치화된 반어법적인 미학을 제시하였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거대서사를 “역사적 진실이 배제된, 억압적이고 본래 반동적인 신화”라고 비판하면서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표상적 실재론 자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개념의 유동성을 부각하고, 언어와 실재의 일치도 간접적이고 우연하며 심지어는 자의적이거나 비존재론적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탈근대론의 공세가 기존의 역사학이나 역사이론의 존재근거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지녔다는 점이다. 오늘날 탈근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고 이에 따라 기성학계가 놀란 가슴을 상당 정도 진정시키고는 있지만, 탈근대론의 문제제기가 영미학계의 패권 장악을 위한 기도로 치부하기에는 손쉽게 논박하기 어려운 건강한 윤기를 발하고 있음이 사실인 것이다. 이 점에서 위의 두 책은 탈근대론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보수’란 표현에 대해 의아하게 여길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캘리니코스는 이미 트로츠키주의자로 소문나 있고 혁명사상으로서 맑스주의의 적실성을 변함없이 주창하고 있는 ‘개전의 정이 없는’ 정치학자이고, 에번스는 19세기 독일사회사를 전공한 학계에서는 꽤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역사가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이라면 좌파나 중도 좌파로 분류됨직한 인물들을 ‘보수’로 간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탈근대론이 이데올로기의 지평에 야기한 변화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실 양자는 학계나 지식인사회에서의 위치나 입장에서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근대론에 대한 비판이라는 면에서 꽤 두터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이는 양자가 과거에 대한 총체적 파악이 가능하다는 전체사적 전망은 아닐지라도 그것을 이해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논의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양자가 이 낙관론에 기반하여 탈근대론의 공세를 건설적인 자기반성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런 속에서 각기 맑스주의 역사이론과 전문적인 역사학에 일정하게 새로운 색조를 부여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과연 이들은 탈근대론적 전환에서 얼마나 성공했을까? 애초부터 이들은 이 전환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캘리니코스는 한편으로 역사에 단일한 거대 서사를 부여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헤이든 화이트 류의 탈근대론에 맞서 거대 담론의 가치와 효능을 옹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베버 류의 역사이론이나 후쿠야마 식의 종말론에 맞서 맑스주의적 접근이 철학적으로 더욱 엄밀한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여전히 혁명적임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는 역사철학과 역사이론을 준별하면서 서사로서의 역사이론이 인간을 논리적 ‘철창’ 속에 가두기보다는 해방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몇 가지 예를 통해 역설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적 유물론에 “환원할 수 없는 우연의 요소”를 도입하려고 하는 등 유연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급진적인 맑스주의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전통적인 도덕주의자로 보이며, 맑스를 유럽중심주의자로 보는 비판적 견해를 논박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당황해 그가 부르주아지의 범죄를 결코 은폐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전통적 도덕주의자 캘리니코스

에번스는 과연 영국의 사가답게 선배인 E. H. 카와 제프리 엘튼의 유명한 이론서로부터 출발하여 탈근대론을 맞받아 치고 있다. 그는 지식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탈근대론을 역사학계가 1980년대에 겪은 충원의 위기와 지위 하락의 산물로 보면서, 그것을 마치 계량경제사, 사회사, 구술사와 같은 종류의 한 전문분야로 간주한다. 그는 탈근대론의 성과를 흔쾌히 인정하면서 그것이 역사학의 방법과 절차에 대한 보다 면밀한 성찰을 일깨우고, 새로운 주제와 영역을 개발하고, 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을 강조하여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복원하는 동시에 역사서술을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그는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보여주었던 상대주의에서 오히려 후퇴하여 엘튼의 객관주의로 복귀한 느낌이 짙다. 사실 그의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과거에 대한 참된 인식이 가능하며, 경쟁적이고 심지어는 대립적인 역사해석도 증거에 맞대어 종종 검증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럴까? 카를 한때의 스탈린주의자라고 명명하는 그에게서 왠지 냉전적 사고방식이 전도된 형태로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기에 족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투수의 폭투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리라.

탈근대론에 맞서는 좌파적 대안

탈근대론에 맞서는 유일한 방식은 그것이 제기한 비판과 성찰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적 유물론은 계급환원론과 유럽중심주의의 혐의를 극복해야 하며, 페미니즘이나 소수자운동의 영역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거대담론은 승리한 자들의 성공담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역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역사학은 민족사관적인 역사해석에서 벗어나야 한다. 흔히 지적되는 바와는 달리 유럽의 역사학 역시 우리의 역사서술 못지 않게 철저하게 민족주의적이다. 우리는 유럽적 보편주의의 신화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의 대안적 역사상을 모색해야 한다. 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울 지는 제대로 된 도서관에 가 본 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문은 무엇보다도 ‘기록문서고’요 지식체계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담론의 억압성을 고발한다고 하여 그것의 실재론적 근거를 부정한다면 이는 곧 어린아이를 목욕물과 함께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셈이다. 이 점에서 탈근대론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탈근대론의 해방성을 환영하면서도 끝내 그것의 해체주의적 요청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해방이란 담론이 아니라 오직 운동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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