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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인양’ 연구와 포스트제국
‘해외인양’ 연구와 포스트제국
  • 최승우
  • 승인 2023.03.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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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후미 지음 | 김경옥 외 7인 옮김 | 소명출판 | 481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부류로 나누어진 일본인

패전으로 대일본제국은 메이지 이후 획득해 온 점령지를 모두 상실했다. 광대한 제국을 구축하고 ‘1등 국민’을 자부하던 일본인은 하루아침에 겨우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4등 국민’으로 전락했다. 전후 일본인에게 ‘8월 15일’이 가진 의미는 매우 컸다.

그것은 패전이라는 충격도 그렇지만 오히려 긴 고통의 전쟁 시대가 겨우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긍정적 의미가 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서민이나 위정자들의 일기를 보면 알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패전기념일’이 아니라 ‘종전기념일’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현재에 이른 일본인의 의식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8월 15일을 대일본제국의 역사와 단절하고, ‘4개의 섬나라’ 일본인과는 별개로 식민지, 점령지의 일본인은 전혀 다른 8월 15일을 맞이했다.

그들에게는 신시대의 도래가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청산’이라는 형태로 구시대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것은 전후 일본인 사이에 전후의 출발 시점부터 넘기 어려운 깊고 어두운 틈새가 존재하고 있던 것을 말해준다.

패전 시에 식민지나 점령지에 있던 일본인에게는 국내 일본인과 다르게 그들이 인양될 때까지는 아시아와의 관계는 농밀한 것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인양 과정 속에서 일찍이 국공내전이나 미·소 대립에 휘말려진 것으로 전후 국제정치의 가혹한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인 사이의 의식 갭은 전후 부흥 속에 매몰되어 인양문제는 관련자의 체험담이라는 형태로만 전해지게 된다.

그렇지만 전후에 인양자문제가 일반 일본인의 마음 깊은 곳에 침전하고 사회에 매몰되어 간 것은 처음부터 왜 인양자가 발생했는가를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박탈했고, 대부분의 일본인이 전전 일본은 식민지를 갖는 대일본제국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식민지체험의 기억을 상실에 의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알력의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과 동아시아의 관계는 전전과 전후를 단절한 형태로 취할 것이 아니며 식민지, 점령지라는 요소를 빼고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해외인양은 일본인의 미·소 냉전 구조하의 동아시아관을 포함한 전후의식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 나아가 세계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이나 프랑스에서의 서구 식민지 종주국의 탈식민화와 비교하여 일본과 동아시아의 특이성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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