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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블랙홀의 그림자’ 촬영했나
인류는 어떻게 ‘블랙홀의 그림자’ 촬영했나
  • 손봉원
  • 승인 2023.02.06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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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을 만나다_『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하이노 팔케·외르크 뢰머 지음 | 김용기·정경숙 옮김 | 에코리브르 | 376쪽

“5천5백만 광년 떨어진 M87이라는 거대타원은하 중심에서 성공했다. 
우주의 실존하는 블랙홀과 수학적 모형 사이의 경계에서 실험을 지속한다.”

 

블랙홀은 천문학과 물리학을 넘어 자연과학 전 분야를 통틀어 대중에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다. 이를 반영하듯 대중문화에서도 블랙홀이 자주 등장한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진 삼인조 밴드 뮤즈의 「supemassive blackhole」이나 최근 음원차트를 역주행하며 인기를 끈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그리고 전설적인 록그룹 러시의 「Cygnus X-1」 등 대중적으로 성공한 노래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특별히 크게 성공했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블랙홀이 중심 소재다. 

블랙홀이라는 천체가 가진 극적인 특징에 아인슈타인과 호킹 등 연구자들의 매력이 더해진 덕분에 블랙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각별해진 것이다. 블랙홀의 매력은 뛰어난 젊은 연구자들의 진로에도 영향을 주었다.

저자가 우리은하 중심의 블랙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던 30년 전 일화는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 주변에서 방출되는 전파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그의 연구는 여전히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블랙홀의 영상,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블랙홀의 그림자’ 영상을 얻는 데는 성공했다. 태양계에서 5천5백만 광년 떨어진 M87이라는 거대타원은하 중심에서 ‘블랙홀 그림자’ 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난해 5월에는 2017년에 같이 관측했으나 자료처리와 분석이 훨씬 어려웠던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 Sgr A*의 영상도 공개했다. 참고로 Sgr A*는 “싸지-에이-스타”라고 읽는다. Sgr는 궁수자리 Sagittarius의 약자이고 A는 궁수자리 방향에서 보이는 가장 밝은 전파 천체라는 뜻이다. 스타는 Sgr A의 중심에 응집천체가 있다는 뜻이다. 응집천체는 블랙홀을 조심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EHT 협력단의 아인슈타인 메달 수상 기념 사진이다. 2020년에 선정됐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실제 수여했 다. 지난해 6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사건지평선망원경 프로젝트 연례 회의에서 찍었다. 상장을 들고 있는 사 람이 하이노 팔케 교수, 옆에 메달을 들고 있은 사람이 셰프 돌먼 박사이다. 사진=EHT협력단

 

우리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응집천체 발견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라인하르트 겐첼과 안드레아 게즈의 업적이 “우리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응집천체의 발견”이었다. 2019년과 2022년에 공개된 두 블랙홀 영상은 사건지평선망원경(EHT) 협력단이 지구 여러 지역 8개 망원경을 연결해 관측한 자료에서 얻은 결과다.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의 저자 하이노 팔케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학교 전파천문학 및 천체입자물리학 교수는 이 협력단의 과학위원회 의장으로 창립 소장인 셰프 돌먼과 함께 협력단을 이끌었고, EHT를 확장한 차세대 EHT 건설을 위해 노력 중이다.

블랙홀 이론과 관측 양측에 정통한 저자는 적절한 비유와 여러 배경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그간 블랙홀 소개서에서 느꼈던 어려움이나 혼란을 해소시켜 준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간 여러 블랙홀 소개서들이 독자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던 것은 우리 우주에 실존하는 블랙홀과 수학적 모형 사이의 경계에 대해 독자의 주의를 충분히 환기시켜주지 못했던 데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 소개서들의 저자에게도 그 경계가 모호했을 수도 있는데, 대개 블랙홀 소개서가 이론 연구자들에 의해 쓰였다는 점도 이유일 것 같다. 

 

책에 소개된 19세기 말 물리학에 대한 막스 플랑크와 필리프 폰 욜리의 일화에서처럼 그 경계는 인류의 인식 확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우주에 실존하는 블랙홀과 ‘현재까지는’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모형에 대한 저자의 고찰은 적절한 시도로 보인다. 저자의 생각은 수학적으로 가능한 다양한 우주 모델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로 이어진다. 저자는 양자중력 연구자 헤르만 니콜라이의 입을 빌어 “사고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실험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블랙홀 소개와 함께 EHT 협력단이 블랙홀 영상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미국 측 연구자를 중심으로 이 과정을 소개했는데, 유럽 연구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언젠가는 EHT 협력단의 세 축 중 하나인 동아시아 연구자 중심의 소개가 더해지기를 기대한다. 

책의 세 번째 부분은 자연과학의 한계와 그 한계 너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개신교 성직자이기도 한 저자의 고찰을 창조과학적 관점으로 한정 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 사이의 진지한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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