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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민족주의의 균형잡힌 시각 …최신 연구성과 반영 부족
탈민족주의의 균형잡힌 시각 …최신 연구성과 반영 부족
  • 서영희 산업기술대
  • 승인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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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외교관이 쓴 매크로 한국사』 김준길 지음 | 기파랑 | 303쪽 | 2006

한국사 연구자라면 누구나 ‘세계사적 보편성’과 ‘일국사적 특수성’이라는 무거운 화두를 평생 머리에 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자기 전공 분야와 관련하여 이 화두를 논문이나 글로 정리해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실상 엄두를 못낸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사 전반에 걸쳐 매크로한 관점으로 통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몇몇 대가의 경우가 아니고서는 평생 꿈도 못꿔볼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 김준길 교수는 상당한 행운을 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 전공자가 아니니 이러한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사관을 개진할 수 있고, 또 오래동안 해외 공보 업무에 종사하면서 얻은 개인적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여 한국문화의 위상을 동, 서양 각국 문화와 종횡무진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니라고 해서 책의 내용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고대 문명사의 흐름에서 한민족의 기원과 민족 정체성 확립과정을 설명하고 서양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인 아시아적 정체성 이론을 비판하면서 한국사의 중세를 설정하는 부분에서는 전공자 못지않은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한국역사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함몰되지 않고 외국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애쓴 점이다. 일례로 조선시대 진경산수화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흔히 말하는 ‘한국문화의 르네상스’ 운운 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한반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문화권이 공유했던 풍경화 장르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 유교의 功過, 양반의 역할, 붕당에 대한 평가를 기술하는 부분에서도 일관되며, 이는 저자가 민족주의건 내재적 발전론이건 기존 학계의 문법에 구애됨 없이 객관적 진실을 추구한다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자로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개항 이후 근대사를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조선왕조와 양반문화를 기술할 때 보여준 강한 자긍심과 통찰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존의 개설서들이 흔히 택해온 구도 그대로, 동아시아 세계 질서가 붕괴되던 19세기에 왜 한국은 실패하고 일본은 성공했는가를 비교 분석하는데 치중한다. 개항 이후 한국은 수구와 개화의 갈등 속에 새로이 전개된 만국공법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근대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서술은 구래의 일국사적 설명틀을 벗어나 세계사적 관점을 견지하겠다는 저자의 본래 취지와 일견 부합하는 것 같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다. 질풍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약소국을 집어삼키던 제국주의 시대의 절박한 국제 역학관계를 사상한 채 대원군의 외교정책 여하에 따라 혹은 고종의 연미책이나 연로책 선택 시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집권세력이 청일전쟁 이후 전개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동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도 결코 사실이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실패의 원인을 찾다보니 당시의 위정자였던 이들에게 책임 추궁이 되는 것이지 정말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제국주의에 의한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은 일국사적 대응 여하와 상관없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된 세계사적 대세였기 때문이다.


이후 일제 강점시대와 분단시대에 대한 서술은 많은 부분이 구체적인 정치사적 기술로 채워져 있어 짧은 지면에서 일일이 논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거시적 관점이란 오래 전에 저자가 몸 담았던 한국 사회학계 원로들의 한국사를 보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고, 새로운 연구성과와 관점은 이 책의 모태가 된 그린우드 영문 한국사 저술시 참고했던 미국내 한국학 연구자들의 업적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현재 한국사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담론이나 새로운 연구성과의 반영에는 소홀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 언급한 이 책의 미덕들이 반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국사학계가 다하지 못한 사회적 책무를 혼자서 해낸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공과대학에서 교양 강의를 담당해 온 평자 역시 한국문화의 특성을 소위 글로벌한 시각에서 전공자의 어법이 아닌 객관적인 용어로 설명할 방법은 없을까 늘상 고민해왔고, 언젠가 시간과 능력이 허락된다면 그런 책을 한 권 써 볼 요량이었는데, 김준길 교수에게 선수를 빼앗긴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한국근대사

필자는 서울대에서 ‘광무정권의 국정운영과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한 대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대한제국 정치사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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