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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문호가 본 구한말의 조선 … 관찰력과 묘사가 白眉
러시아 대문호가 본 구한말의 조선 … 관찰력과 묘사가 白眉
  • 정막래 계명대·러시아어문학과
  • 승인 2017.02.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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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전함 팔라다Ⅰ·Ⅱ』 이반 곤차로프 지음 | 정막래 옮김 | 살림출판사 | 1,007쪽 | 36,000원

19세기 격동의 시대에 서양인의 눈을 통해 우리를 보는 시리즈가 바로 ‘그들이 본 우리’ 총서 시리즈이다. 『전함 팔라다』가 그 중의 하나다. 

곤차로프(Ива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Гончаров, 1812~1891)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러시아 대문호로 전함 팔라다를 타고 아프리카를 돌아 일본을 거쳐 조선시대 우리나라 동해안에 들렀다. 곤차로프는 1852년부터 1855년까지 세계 일주를 하면서 여러 나라의 풍습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과 자신의 감상을 기록했다. 여행기 『전함 팔라다』의 가치는 제2권 제6장 마닐라에서 시베리아 해안까지에 1854년 당시 조선에 대한 언급이 있기에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몇 쪽밖에 안 되는 이 장면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1천700쪽이 넘는 책을 읽는다. 

문호가 직접 항해를 함으로써 탄생한 당대의 베스트셀러 여행기 『전함 팔라다』에는 구한말, 개방을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 전함의 눈을 통해 시대적 흐름인 개방에 직면하고 이에 대처하는 동양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곤차로프는 여러 나라의 풍습을 접하며 사실적인 묘사와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영국뿐 아니라 마데이라 제도와 희망봉 등 식민지를 살펴본 후 홍콩과 싱가포르, 상하이에 이어 나가사키와 거문도를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극동아시아 상황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19세기 극동아시아 상황 사실적 묘사

러시아 문호 곤차로프는 러시아의 사실주의 작가로 러시아 심비르스크에서 태어나 모스크바국립대를 졸업하고 관료로 활동했다. 작품으로 장편 소설 『평범한 이야기』, 『오블로모프』 등이 있다. 곤차로프는 전함 팔라다호를 타고 제독 푸탸틴의 비서로 항해하면서 여행기 『전함 팔라다』를 남겼다.
곤차로프는 안정된 공무원의 삶 대신 몇 년간의 바다 생활을 택하고 1852년 10월에 크론시타트 항구에서 전함 팔라다에 올랐다. 친구들에게 약속대로 편지를 쓰면서 곤차로프는 항해 모험 소설에서 말하는 거친 선상 생활과 달리 400명의 러시아인이 폭풍우와 지루한 일상 사이에서도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현실을 고스란히 전한다. 영국과 마데이라 제도, 열대의 대서양을 거치는 동안 향수병에 걸리기도 하고 무풍지대에서 기약 없이 바람을 기다리는 등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항해 끝에 희망봉에 도착한다.
전함을 개조하고 작은 스쿠너를 사는 등 오랫동안 머문 영국에서는 산업 선진국과 러시아를 비교하면서 뒤처진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희망봉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식민지 정책을 통해 아프리카 개방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다음에 기착한 자바 섬과 싱가포르, 홍콩에서는 상업이 왕성하게 꽃피우는 아시아의 역동적인 모습을 본 후 드디어 항해 10개월 만에 일본의 최남단인 보닌 제도, 즉 현재의 오가사와라 제도에 도착했다.
세계 일주를 친구들에게 편지로 전하는 저자는 대문호라는 명성에 걸맞게 사실적인 묘사와 생생한 감상으로 독자를 팔라다로 승선시킨다. 뱃사람의 생활이나 마주치는 새로운 문물과 풍습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군데군데에서 매력적인 묘사를 하는 곤차로프의 뛰어난 필력과는 별개로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무지와 편견 역시 은연중에 드러나기도 한다. 희망봉에서 만난 흑인 여성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 대한 솔직한 편견을 보여준다. 
“검은 얼굴 위의 미소는 무언가 무섭고 악한 것을 지니고 있더군.”(제1권 302쪽)
허례허식에 가까울 만큼 지극히 폐쇄적인 일본의 대외정책 앞에서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고, 일본을 방문한 서구인의 기록을 통해서만 이해한 탓에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당시 서구 지식 세계에서 흔하던 ‘선량한 야만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과정에서 탄생한 이런 솔직한 묘사는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꾸밈없는 사실적인 기록이야말로 이 책의 생생한 생명력 그 자체다.
이 글에서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은 지식인답게 비판적인 시선으로 살펴보는 식민 본국이자 서구 열강의 모습이다.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영국을 비판하면서도 이 나라와 대비해 고국 러시아의 봉건적인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보이기도 한다.
“남쪽의 거무스름한 주민들이 땀을 쏟으며 자기 땅에서 귀중한 과즙을 채취하고 나무통들을 해변으로 굴려서 먼 곳으로 보내는 과정을 그 형상은 차갑고 엄격한 시선으로 감독하더군.”(제1권 35~36쪽)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의 여행기

잘 알다시피 19세기 후반은 전 세계가 요동치는 시기다. 구미 열강은 무자비할 정도로 식민지를 확장하며, 전함의 힘을 빌려 폐쇄적인 국가들을 개방시켜나가는 중이다. 동양의 강대국인 청나라는 그런 구미 열강에 대응하며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과도하게 밀려들어오는 서구의 개방 압력에 무기력한 관료 체제가 첫 번째 모습이며, 무섭게 꿈틀거리며 자신의 생존을 영위하는 민간의 역동성이 바로 두 번째 모습이다.
이런 양면은 일본에서도 슬쩍 비춰진다. 페리 제독이 방문한 직후라 아직은 폐쇄적이지만 곧 서구 열강을 본받아 근대화에 성공하게 되는 일본에서도 개방에 반응할 준비가 돼 있는 민간 영역과 어떻게든지 개방을 회피하고자 하는 관료 사회 사이의 갈등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시대적 상황은 개방과 폐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조선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아는 현재의 시선에서는 안타까움이 서리지만, 이 책은 당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돼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당시의 조선을 바라보는 곤차로프의 자세한 묘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해안에 들른 곤차로프는 19세기의 조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 일행 가운데 몇 명은 즉시 해변으로 출발했네. 나는 해변을 멀리서 바라보았지.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해변으로 가는 것을 서두르지 않았다네. 도처에는 작은 만들의 졸린 듯한 물 위로 조선인들의 오두막이 무리지어 보였네. 단지 초가지붕만이 보이더군. 여기저기에 거니는 주민들이 가끔 눈에 띄었지. 모두 흰 옷이라, 마치 수의를 입은 것 같았네. 마침내 우리는 극동지방의 종족 가운데 이 마지막 민족도 보게 된 걸세.”(제2권 656~657쪽)
프랑스인이 적은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조선인을 평가하기도 하는 모습 등 곤차로프의 해박함이 『전함 팔라다』에서 마음껏 펼쳐진다. 이로 인해 번역은 어려워지나 독자들은 곤차로프와의 기나긴 전함 여행이 지루하지 않게 된다. 
곤차로프의 말대로 우리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그 긴 지루한 항해를 마치면서 곤차로프가 시원섭섭해하고 있듯이 역자인 나 역시 끝이 없어 보이던 항해기 번역 작업을 끝내면서 그와 비슷한 감정이 일었다. 낯선 곤차로프를 따라 낯선 여행을 나선지 몇 년이 지나자 어느새 곤차로프가 바라보는 풍경은 내 눈으로 보는 풍경이 됐다. 
새로운 것을 대할 때의 세심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그를 통해서 배우게 됐다. 때로는 여자보다 더 세심한 그의 모습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관찰력과 투시력과 묘사 능력에 대해 감탄을 하면서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전함 팔라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곤차로프를 친구로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정막래 계명대·러시아어문학과
필자는 한국외국어대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으며 모스크바국립대 러시아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정교수님 토르플 기초단계』, 번역서로는 『고대 러시아 문학사』, 『희극성과 웃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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