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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문화’와 ‘근대의 초극’
[디자인 파노라마]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문화’와 ‘근대의 초극’
  • 최범
  • 승인 2022.04.29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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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⑮_최범 디자인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 사진=일본민예관
야나기 무네요시. 사진=일본민예관

“미술문화에서 공예문화로 나아가는 방향, 여기에 문화의 올바른 방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올해는 일본의 미학자이자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공예문화』(1942)가 세상에 나온 지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위 인용문은 초판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공예문화』는 단연 독보적인 공예 이론서다. 야나기는 아이에게 부드러운 음식을 떠먹이기라도 하듯이, 한 치의 논리적 비약도 없이 차분하게 우리를 공예의 길로 이끈다. 야나기는 조선 공예와의 만남을 통해 ‘민예(民藝)’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민예운동을 전개해 현대 한국과 일본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미술문화에서 공예문화로 나아가는 것이 문화의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사실 이 말은 매우 도발적이다. 미술(문화)에 대한 공예(문화)의 선전포고 같기도 하다. 지나친 해석일까. 여기에서 미술문화는 ‘서양’을 가리킨다. 그리고 공예문화는 ‘동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술문화에서 공예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곧 서양에서 동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동양문화 또는 일본문화에 대한 국수주의적인 자부심의 발로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공예문화』(민병산 옮김, 신구문화사, 1993). 사진=신구문화사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공예문화』
(민병산 옮김, 신구문화사, 1993). 사진=신구문화사

공교로운 것은 『공예문화』가 출간된 1942년은 일본에서 ‘근대의 초극(超克)’ 논의가 전개된 시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근대의 초극’이란 태평양전쟁 개전 직후 일본 지식인들이 펼친 담론으로, 말 그대로 ‘서구적 근대’의 질서를 넘어서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실제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서양에 대항하는 동양의 정의로운 전쟁으로 포장해 정당화하는 것이었으며, 그 귀결은 우리가 역사에서 확인하는 바다.

서양에 대항하는 동양의 전쟁이라는 ‘근대의 초극’ 논리와 미술문화로부터 공예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예문화』의 논리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서양과 동양의 분리 및 대결이다. 여기에 어떤 시대정신(?)이 관통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을 동일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전쟁과 문화적인 대결은 같은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도 동일하지 않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물론 문화가 정치와 무관한 것도 아니고 정치적 함의를 띠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도 그 행위와 해석의 층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야나기의 이러한 사고에는 동양의 근대와 관련해 읽어내야 할 것이 많이 들어 있다.

야나기가 말하는 미술문화는 정확하게는 르네상스 이후 발생한 서구 휴머니즘의 산물인 ‘미술(fine art)’을 가리킨다. 그에 반해 공예문화는, 야나기가 조선에서 그 이상적 모델을 발견한 동양의 ‘전통공예’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야나기는 미술(문화)과 공예(문화)라는 유비를 통해서 서양과 동양을 문화적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이 점이 보기에 따라서 1940년대의 ‘근대의 초극’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런데 야나기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미의 왕국’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미의 왕국’은 미(美)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야나기 특유의 관념으로, 여기에는 불교의 정토사상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니까 야나기는 ‘미의 왕국’이 미술(문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예(문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데, 그것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미술이 아니라 공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야나기가 서양 미술문화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미의 세계는 소수의 천재에 의한 미술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미의 왕국’은 조선 민예에서 보듯이 다수 무명의 장인들에 의해 세워진 무사(無事)의 불국토 같은 세계다.

야나기의 사상은 민예운동과 현대 일본 디자인의 정신적 뿌리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서양과 동양, 미술과 공예, 미와 종교라는 서로 다른 범주와 층위가 얽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야나기가 서양의 휴머니즘과 동양의 민중주의를 대립시키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덧붙여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의 반응이다. 한국인들은 야나기가 설정한 서양의 휴머니즘과 동양의 민중주의라는 구도를 다시 일본의 제국주의와 조선의 민족주의로 치환하곤 한다. 그러면 이제 지배-피지배의 구조는 서양 대 동양에서 일본 대 한국으로 전이된다. 물론 이것은 제국-식민지 구조의 민족주의적 반복이며 일종의 동양적 오리엔탈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문화』 출간 80주년을 맞아 동양과 한국 근대의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 디자인을 한국 근대의 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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