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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이 목표다’…근대 대학사 재구성하는 학술사의 최전선
‘기원이 목표다’…근대 대학사 재구성하는 학술사의 최전선
  • 이우창
  • 승인 2022.03.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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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② 대학과 학문의 위기에 응답하는 출발점은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오늘날 우리가 ‘토대’이자 ‘기초’라고 생각하는 학문의 규정도, 대학의 모습도 
다른 시공간의 다른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과연 우리 시대의 조건은 무엇이며, 그에 적합한 학문이란 무엇인가? 
답변은 인문학자들이 스스로의 활동 자체를 엄격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때에만 가능하다."

지난 20여 년간 홀로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인문학 전공자들을 위해 2020년대는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했다. 이른바 ‘대학의 위기’가 그것이다. 위기라는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던 잘난 동료들이 이제 대학원생이 오지 않고, 미래의 직장도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빠르게 합류한다. 인문학자들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 스스로임을 알면서도, 어느덧 선배로서의 은근한 자부심마저 생길 지경이다.

그럼 20년을 먼저 고민해 온 우리 인문(그리고 일부 사회과학)학자들은 ‘대학위기학’ 석사 신입생들을 위해 어떤 썰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미래의 전망을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으니, 대학과 학문의 역사부터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겠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학과 학문은 서구 대학의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설명할 수 없다. 근현대 대학·학문의 역사는 서구 학계에서 하나의 전문적인 연구주제로 성립하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인문학계에서 해당 분야의 연구는 제한적으로만 소개되었다(볼프강 J. 베버의 『유럽 대학의 역사』 국역본은 드문 예외다). 여기서는 먼저 현대 대학제도의 중요한 분기점인 냉전대학에 관한 연구동향을 짚고, 다음으로 인문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역사가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현대 대학제도의 분기점, 미국 ‘냉전대학’

대학의 전통적인 목표는 전문기능인과 통치자집단의 재생산이었다. 19세기 독일대학은 전문적인 연구자집단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 근대 대학의 모델로 여겨진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국가 및 사회가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고 대학이 국가발전전략에 필요한 인적·지적 자원을 배출하는 관계가 본격적으로 성립된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 냉전대학(Cold War University)부터라 할 수 있다. 

영어권에서 냉전대학 및 냉전기 인문·사회과학의 성립과정을 다룬 단행본 크기의 연구가 나오는 것은 관련 문서고들이 본격적으로 개방된 이후인 2000년대부터다. 우디 그린버그Udi Greenberg의 『바이마르의 세기』(2018, 원저는 The Weimar Century: German Émigrés and the Ideological Foundations of the Cold War, 2014)는 그 기저에 있는 주요한 맥락을 잘 보여준다.

마크 마조워Mark Mazower의 『암흑의 대륙』(원저 Dark Continent: Europe's Twentieth Century, 1998), 토니 주트Tony Judt의 『전후 유럽 1945~2005』(원저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 2005) 등을 시작으로 20세기 유럽사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연구가 늘어난다.

특히 20세기 전반기에 동시대에서 가장 발달한 연구대학 및 지식세계를 구축한 독일어권과 영미권의 인적 교류를 추적하는 연구가 축적되었다. 더불어, 냉전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개시됨에 따라,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문자 그대로 제국으로 급작스럽게 발돋움하는 과정 자체를 상세히 살펴보는 역사가들이 등장했다. 제국의 통치와 관리에 참여한 인적·지적 자원을 추적하는 작업에서 대학과 학자들, 대표적으로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수행한 역할 역시 중요한 연구주제가 되었다(최근 1950-60년대 한국사회과학사의 경우 최근 중요한 연구서가 나왔다).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혁신주의 시대까지 독일은 미국 지식인·관료의 주요한 참조대상이었다. 그러나 나치 집권 후 다수의 유태인·반나치 지식인 망명자들이 유입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갑작스레 선사 받은 세계 최고급의 인적 자원을 다음과 같이 활용했다. 이제 공산권과의 지구적 경쟁에 돌입한 미국 정부는 유능한 관료집단을 빠르게 길러낼 수 있는 선진화된 교육과정을, 또 세계통치를 위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할 전문가집단이 필요했다. 

록펠러재단 등 민간기구는 파시즘·공산주의와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위해 독일·프랑스 등 서방세계의 학문을 부흥시키고 지식인을 원조하는 과업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할 의향이 있었다. 세속정부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꺼리던 미국의 명문대학은 이제 정부 및 민간기구와 협력하면서 사회의 분석과 통치를 위한 전문지식을 생산하고 연구자와 기술 관료를 대규모로 육성하는 기지로 재구축되었다. 민·관·학의 연계로 형성된 냉전대학의 기본적인 골격은 냉전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고 대학이 국가발전전략에 필요한 인적·지적 자원을 배출하는 관계가 본격 성립된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 냉전대학부터라 할 수 있다. 사진은 1941년 7월 <LIFE>지에서 ‘전시상태에 돌입한 예일대’라는 제목으로 미국 대학의 변화 모습을 다룬 기사다. 사진=LIFE 

나치를 피해 이주한 학자들은 영미권 인문학에도 갖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초기 근대 이래 인문학적 지식·학문활동의 역사를 전문적인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술사의 등장이다. 이탈리아 토리노대학의 로마사 교수였던 아르날도 모밀리아노(Arnaldo Momigliano)는 영어권 망명 후 ‘역사서술의 역사’로 불릴 수 있는 일련의 작업을 내놓았다.

특히 17~18세기에 살았던 역사가 및 고문헌학자가 발전시킨 문헌비판 기법의 함의를 정밀하게 읽어낸 연구는 당대의, 또 후대의 연구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이는 그의 학생 앤서니 그래프턴(Anthony Grafton, 『각주의 역사』 등이 번역되어 있다) 등을 주축으로 현대 영어권 지성사에서 학술사(history of scholarship) 연구가 부흥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과거 인문주의자 및 인문학자가 사용한 ‘학문적 방법’ 자체를 본격적인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16세기의 인문주의자 조제프 스칼리제르를 다룬 그래프턴의 기념비적인 전기(Joseph Scaliger: A Study in the History of Classical scholarship, 1983-93)에서 보여주듯, 문인과 학자의 이데올로기와 정치관만이 아니라, 이들이 학술활동에서 활용하는 학문적·전문적 기법 자체에도 주목해야 한다.

역사서를 포함해 과거의 다양한 학술문헌을 매우 깊이 있게 검토하면서 학술사가들은 하나의 전문지식으로서 인문학적 방법론이 활용되고 또 정교해지는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과는 다른 언어, 다른 전제를 가진 세계의 문헌·유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타자의 언어와 문화, 정신을 타자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인문학 연구의 기본적인 접근법은 적어도 초기 근대 시기에서부터 구축된 산물이었다.

근대 인문학의 역사를 새로 쓰기

2010년을 전후로 영어권 학술사 연구의 성장세는 인상적이다. 세 가지 경향을 지적하자. 첫째, 학술사의 방법론과 정치사상사적 관심사의 결합이다. 학술사 연구자들은 과거의 문인·학자들이 사용한 정교한 학술적 방법론이 동시대의 정치적·문화적 논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는 데 주목한다. 학문과 전문지식을 정치적인 주장을 정당화하고 논박하는 용도로 쓰는 것은 현대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드미트리 레비틴(Dmitri Levitin), 니컬러스 하디(Nicholas Hardy) 등의 대표적인 신진 학술사가들은 영국 및 프로테스탄트 세계의 복잡한 학문정치적 구도를 복원하고, 전문적인 학적 실천과 정치적 실천이 과거의 학문적 저작에서 어떻게 교차하는가에 주목한 혁신적인 연구를 내놓았다.

둘째, 르네상스 시대에서 출발했던 학술사는 이제 18세기 이후의 학문적 논쟁을 재검토하는 방향으로도 확장 중이다. 예컨대 레비틴은 계몽주의 시대의 여러 종교적·역사적 작업이 실제로는 인문주의자들이 구축해놓은 학문적 논의의 연장선에 있음을 지적한다. 철학적 이성이 비합리적인 신학을 무찔렀다는 계몽시대의 신화는 수정되어야만 한다.

이미 17세기부터 종교 논쟁의 주전장은 문헌학과 역사학, 동방학의 영역이었다. 성경과 고대사, 그리고 그에 기초한 세계사의 해석투쟁은 인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문헌비판의 칼날을 통해 이루어졌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1978) 역시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조안-파우 루비에스(Joan-Pau Rubiés)의 연구가 보여주듯, 유럽 바깥의 세계를 다룬 여행기와 민속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초기 근대에 이미 비유럽세계를 단순히 타자화하는 대신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탐구하는 학자들 또한 등장했던 것이다.

셋째, 가장 선도적인 학술사가들은 19세기 이래 인류학·사회학·언어학·고고학 등 근대학문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근대학문의 주창자들과 그 이전 지식인들의 관계는 복잡한 문제였다.

물론 근대 인문사회과학의 역사는 결국 19세기 독일대학·학계의 연구를 거쳐야 한다. 수잔 마찬드(Suzanne L. Marchand)와 같은 영어권 독일사가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두툼한 19세기 독일 동방학·고전학 연구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초기 근대로부터 내려오는 학술사가들과 이들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주제다.

한국의 근대학문이란 해외의 완성품을 수입하여 모방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렇기에 한국의 연구자들, 특히 인문학자들은 현재와 같은 대학 학문분과 체제를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학의 모델, 분과 간 구별, 학문적 방법론 자체가 각 시대의 문제에 대응하면서 생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이는 우리가 마땅한 ‘토대’이자 ‘기초’라고 생각하는 학문의 규정도, 대학의 모습도 다른 시공간의 다른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과연 우리 시대의 조건은 무엇이며, 그에 적합한 학문이란 무엇인가? 그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경구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이 목표다Ursprung ist das Z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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