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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국제 에너지 질서…‘수입 다변화·탄력적 전환’이 답
각자도생 국제 에너지 질서…‘수입 다변화·탄력적 전환’이 답
  • 최승우
  • 승인 2023.07.21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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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⑥ 이재승 고려대 교수(국제대학원)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이 상호 연결성으로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4일 이재승 고려대 교수(국제대학원)가 「에너지 안보의 국제 질서」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7강은 이재민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공급망과 국제 정치」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와 단계적인 에너지 부문에의 제재 확대는 동시에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고조시켰고 전쟁이 야기한 혼란으로 에너지 안보는 다시 최우선 과제가 됐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 에너지 질서를 새로운 격랑으로 이끌고 갔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증가했다. 러시아 에너지 공급의 중단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고 경기 침체를 초래했다. 가스와 전기 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직면한 유럽은 대체 공급원을 찾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와 단계적인 에너지 부문에의 제재 확대는 동시에 유럽의 에너지 위기를 고조시켰고, 글로벌 시장의 동조에 따라 세계 경제의 가장 먼 곳까지 새로운 에너지 위기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혼란으로 에너지 안보는 다시 최우선 과제가 됐다.

이재승 고려대 교수(국제대학원)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일차적으로 수입국으로서의 위치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며 “지속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필수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 기반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이재승 고려대 교수(국제대학원)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일차적으로 수입국으로서의 위치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며 “지속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필수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 기반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새로운 국제 에너지 질서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 행동의 이중 의무로 정의됐고, 이는 과거보다 더 복잡한 변화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석유 생산과 소비 패턴의 변화, 지정학적인 긴장과 더불어 재생 에너지의 부상,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는 다양한 에너지 믹스로의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 수급과 기후 변화의 두 가지 목적은 서로 부합되기도 하지만 속도와 방식에 있어 충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실제 세계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석유와 가스의 공급이다.

그러나 2010년대 '짧은 평화'의 시기에 저조한 수익과 증가하는 기후 압력으로 인해 석유 및 가스에 대한 투자가 감소해 공급이 제한됐다. 팬데믹 시기에 더욱 위축된 투자와 수익은 전통 에너지 공급망상에서 석유와 가스를 더 희소하게 만들었고 가격 압박을 가중시켰다. 석유와 가스에 대한 투자는 감소하지만,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우 에너지 안보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생산자의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증가시키고, 자원 보유국과 국유 기업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게 된다. 에너지 안보의 주요 위험은 화석 연료 공급·투자 감소가 화석 연료 소비 감소와 동기화되지 못하는 불일치에서도 발생한다. 

화석 연료 기반의 에너지 생산 및 소비 시스템에서 풍력·태양광·조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원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기후 변화 대응과 청정 에너지 체제로의 이행이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합의된 감축 목표는 섭씨 1.5도 상승 제한의 목표로 강화됐고, 주요 산업국들은 2050년을 전후한 탄소중립(Net-Zero) 목표를 발표했다. 이제 기후변화는 국제 질서에 있어 더 이상 부차적인 의제가 아니다.

2010년대 풍부한 에너지 공급이 바탕이 된 평화의 시기에 에너지 논의의 초점은 탄소 중립과 탄소 배출량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 화석 연료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새로이 부각된 공급 위협과 가격 인상은 에너지 수급과 에너지 전환을 에너지 안보상의 딜레마로 되돌려놓았다.

에너지 전환을 통한 에너지 안보는 필연적으로 긴 시간과 불안정성을 동반하는 장기적인 해결책이고, 산업과 경제, 그리고 일반 생활에 긴요한 화석 연료와 전력의 수급은 즉각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긴급한 에너지 수요와 장기적인 녹색 목표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적·물량적·질적인 간극이 위기 상황에 있어서는 더욱 크게 부각된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 전환이 지금 시점에서 기존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원을 전적으로 대체하지 못한다. 석유 시대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고, 2040년대 이후에도 상당 기간 화석 연료는 주도적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석유가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겠지만, 산업용 수요는 여전히 지속되며, 천연가스 역시 발전과 난방, 그리고 산업 부문에서 계속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전환은 확실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에너지 안보에 대한 취약성도 내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의 심화로 대변되는 지정학적 갈등의 확산은 석유와 가스 등 전통 에너지원의 안정적 수급을 다시 한 번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갔다. 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전환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지만 단기간의 대응을 요구하는 에너지 수급과 장기간의 과정이 소요되는 에너지 전환 간에는 단층대가 존재한다.

에너지 전환 역시 탄소 절감에의 대응력과 재생 에너지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자원의 수급에 있어서 지정학적 갈등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국제 에너지 질서는 단기·중장기의 차원에서 복합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안보적 투사력과 에너지 수급에의 사활적 이익을 기반으로 형성된 미국과 중동의 파트너십은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의 에너지 자급도의 향상으로 구조적 변화의 조짐을 보여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러시아와의 공조를 확장시키며 OPEC+ 체제로 전환해 레버리지를 확장시켜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정된 공급원으로서의 신뢰를 상실한 러시아는 중국, 인도, 그리고 남반구 국가를 아우르는 새로운 에너지 역학을 구상하고 있고, 중국 역시 구매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중동 및 신흥 생산국에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역학 관계의 변화가 기존의 에너지 질서를 전적으로 재편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미국의 에너지 패권이 ‘선택적‘으로 바뀜에 따라 과거보다 분권화되고 파편화되는 조짐은 여러 차원에서 관찰되고 있다. 국제 에너지 질서가 ‘각자도생의 에너지 안보‘체제로 이행되고 있다.

아울러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탄소 경쟁력‘과 재생 에너지 기술 및 생산 역량에 따른 새로운 격차의 발생은 그린 어젠다의 실행이 반드시 협력적인 구도에서만 이뤄지지는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탄소 규제와 선진국-개발도상국 간의 ‘동반 에너지 전환‘ 문제는 지속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차원의 관리와 재원 마련을 필요로 한다.

국내총생산(GDP) 및 교역 규모에 있어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가진 한국의 경우 더욱 공고한 복합 에너지 위기 대응력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안정적인 수입원 확보, 원자력과 재생 에너지를 포함한 통제 가능한 에너지원의 확보, 그리고 기후 변화 대응력과 탄소 경쟁력 강화의 과제가 포함된다.

첫째,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일차적으로 수입국으로서의 위치에서 바라봐야 한다. 한국은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94%, 석유 소비량 세계 8위, LNG 도입량 세계 3위의 주요 수입국이며, 국가와 산업 수요를 충족하는 공급 물량의 확보가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특정 국가와 지역에 대한 편중을 줄이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전략과 수송로의 안전 확보, 그리고 적정 가격과 고품질의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중동·미국 등 기존의 주요 공급선과의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의 다층적인 공조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군사적인 긴장 관계하에서 분단국의 위치를 반영하기도 한다. 한반도에 있어서 군사적·비군사적 위협 요인은 상존해왔으며,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 미사일, 재래 무기를 동반한 군사적 충돌 및 테러, 사이버 공격, 환경 위기, 기타 국가적 재난을 동반하는 전통, 비전통적 안보 위협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 분야뿐 아니라 안정적인 국방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단 없는 필수 에너지와 광물 자원의 공급과 비축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 전환과 상호 보완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실제로 지속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필수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 기반이 이뤄져야 한다. 주요 일차 에너지원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곧바로 에너지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에너지 체계 자체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 환경의 요소와 에너지의 요소는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이는 마치 “화성에서 온 환경, 금성에서 온 에너지”와 같이 보호를 중심으로 한 환경의 우선순위와 사용을 전제로 한 에너지의 우선 순위 상의 긴장 관계를 반영한다. 그러나 복합 위기의 시기에 있어서 한국의 에너지원 선택과 수급에 있어서는 에너지 전환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속도와 구성 방식에 있어 유연성을 지닌 탄력적 에너지 정책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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