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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적 혁명,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 일으키다
포퓰리즘적 혁명,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 일으키다
  • 최승우
  • 승인 2023.03.22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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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㊵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25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부상」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41강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 관계」, 제42강은 전재성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위기」, 제43강은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동서양의 ‘자유’ 비교」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포퓰리즘은 대안적 프로그램을 발전시키지도 않으면서, 
정당에 대한 충성이나 정당들의 프로그램들의 선택을 약화시킨다. 
정치를 통해 프로그램을 성취하는 것보다 감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일관된 정책 선호를 갖지 않는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충원한다.

한국 민주화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지난 1980년대 이후 민주주의는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순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세대 이전 민주화 운동 시기에 비교되는 대규모 ‘촛불 시위’로부터 시작되는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민주주의는 뚜렷하게 위기를 맞게 됐다. 

이 장(章)에서 필자는 특히 2016년의 촛불 시위로부터 시작해 민주당의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정부를 이끈 중심 세력으로서 지난 1980년대 민주화를 이끌었던 개혁파 그룹들과 그들의 중심에 위치한 이른바 386(때로는 586)세대 정치 지도층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방식에 설명의 초점을 두고자 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는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은 포퓰리즘적 또는 민중주의적 민주주의의 특징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라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러 나라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포퓰리스트 민주주의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촛불 시위의 거대한 시민 동원의 결과, 당시 보수 정부를 이끌던 대통령은 탄핵되기에 이르렀고, 그 여세로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5월과 2020년 4월 시행된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각각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의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정의하고 그 시각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정의하면서 일찍이 보기 어려웠던 광폭의 개혁 정책들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적폐 청산, 역사 청산을 모토로 삼았던 개혁의 결과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라 할까, 이해 방식이 두 방향으로 분절화되기에 이르렀다고 이해될 수도 있다. 

하나는 촛불 시위 이전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주의적, 또는 포퓰리즘적 민주주의이다. 우리는 민주당 정부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방식에서, 개혁의 이름으로 큰 충격이 가해진 포퓰리스트 민주주의에 의해 크든, 적든 큰 영향을 받기에 이르렀다. 촛불 시위는 과연 개혁파들이 말하듯이 혁명인가, 우리는 이 격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촛불 시위가 불러온 엄청난 사회적 동원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표현코자 했던 민주당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의 방향과 내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직접적으로 효과를 불러왔다.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은 포퓰리즘적 또는 민중주의적 민주주의의 특징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여러 나라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포퓰리스트 민주주의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 엘리트, 내지 정치 계급이라 부를 수 있는, 기득 이익의 대변자를 민중 내지 인민과 대립시키는 구도는 직접 민주주의의 중심에 위치하는 논리이다.

만약 이를 포퓰리스트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이해한다면, 한국 또한 그 사례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냉전과 권위주의하에서의 전후 신생 국가 한국의 조건은 자유를 산 경험으로 체험하고 알기 전에 먼저 민주주의를 알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한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도록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서는 민중의 의미가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넓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1980년대 한국 민주화는 민중주의적 민주주의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발전이 어려웠을지 모른다.

세계의 정치학자, 민주주의 또는 포퓰리즘 이론가들 가운데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관점에 입각해 포퓰리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의 모든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다음에서 두 정치학자들을 통해 이 문제를 보도록 한다. 대표적인 민주주의 이론가의 한 사람인 필립 슈미터는 포퓰리즘의 장단점을 균형적으로 말하고 있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면 이런 것이다. 포퓰리즘은 기존의 경쟁하는 정당들의 프로그램들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프로그램을 발전시키지도 않으면서, 정당에 대한 충성이나 정당들의 프로그램들의 선택을 약화시킨다. 정치를 통해 프로그램을 성취하는 것보다 감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일관된 정책 선호를 갖지 않는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충원한다. 

이슈나 정책이 아니라, 인물이나 성향으로 관심을 전환시키는 불가 예측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것으로 주의를 돌린다. 정치 행위나 정책 결정의 방식이 더 화끈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 효과 면에서 잘못 판단하거나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장점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퇴영적인 정당에 대한 충성을 해체해 버리거나, 야합적인 정당 체제를 새로운 정치 형성을 통해 개방적일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 

이전에는 정치에 무관심이던 사람들을 충원하고, 선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동원한다. 그동안 중요하지만 산재해 있고, 무시돼왔던 정치 이슈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통해 억압돼온 균열들과 기대를 끌어내 연결하고 활성화한다. 

포퓰리즘은 강대국과 약소국가라는 국가 간 관계에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약소국의 위치에 있는 국가가 그동안 수용해온 외부적 제약에 도전하고, 외세에 대한 기존의 그리고 자주 착취적이던 의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포퓰리즘 연구로 유명한 또 다른 정치학자들 카스 무데와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는 그 장단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정적인 것은, 포퓰리즘이 다수결 개념과 관례를 활용해 소수자의 권리를 우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 분열을 조장해 안정적인 정치적 연합의 형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합의에 이르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합의를 극히 어렵게 만드는 정치의 도덕화로 귀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과는 달리 긍정적인 영향은, 정치 엘리트층에 의해 대표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집단들에 발언권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회에서 배제된 부분들을 동원하는 것을 통해 정치 체제에 좀 더 통합시킬 수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 배제된 부문들이 선호하는 정책의 실험을 촉진해 정치 체제의 응답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쟁점과 정책을 정치 영역의 일부로 만들어 민주적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다.

위에서 대표적인 정치학자들의 포퓰리즘에 대한 다른 두 평가를 봤지만, 그들의 평가가 포퓰리즘에 대해 균형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글이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으로 쓰여졌다 하더라도 필자 자신은 가능한 한 균형감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균형감을 가지고 썼다는 것이 정확한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필자가 한국에서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때는 현실, 내지 경험적 사실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말하기보다, 역사적, 정치적 사실을 근거로 하되, 이론적이고, 규범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포퓰리즘에 대해 말할 때는 이론과 더불어 더 많이 경험적 현실에 근거하여 말했다. 정확한 비교가 되려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역시 포퓰리즘을 말할 때처럼 경험적 현실에 더 많이 기초해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글에서는 균형적인 비교가 되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는 마음의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균형적이 되고자 했다.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전체적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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