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4:05 (일)
대만과 우크라이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기로에서
대만과 우크라이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기로에서
  • 최승우
  • 승인 2023.06.26 08: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②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부터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과 담론을 인문·사회·자연과학이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가 「탈냉전과 세계화 이후 국제 질서」을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강은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의 「지역 질서와 지역 기반 국제 정치: 세력 전이와 아태 지역 질서」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그 지원국들이 승리하고, 대만 문제가 평화적으로 관리된다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미래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그러한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역사가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세계는 과거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로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1980년대 국제 정세의 흐름을 관찰한 뒤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이데올로기 경쟁의 결과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했고 이제 더이상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해체되자 세계 역사의 미래 방향에 대해 이와 같은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의 낙관론은 미국의 상대적 국력이 세계 유일의 최강국 지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에도 기인했다. 이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가 없는 일극 체제가 시작됐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international order, LIO)를 추구했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는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세계 권력의 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의 외교 노선을 공세적 외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라며 “중국은 그동안 지켜오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 지침을 버리고 공세 외교를 펼치며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경제)는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세계 권력의 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의 외교 노선을 공세적 외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라며 “중국은 그동안 지켜오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 지침을 버리고 공세 외교를 펼치며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1990년대 이래 미국에서 진행됐던 이 같은 낙관주의적 자유주의 질서의 추구와 3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국제정치 상황을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1990년대 당시의 낙관론의 기저를 이루는 미국의 상대적 권력이 상당히 약화됐다. 이는 1980년대 이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의 상대적 권력이 강화된 것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미국의 상대적 권력 약화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 즉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규범 기반 질서도 힘이 빠지면서 오늘날 크게 도전받고 있다. 미국이 주창하던 자유민주주의는 도처에서 도전받고 포퓰리즘은 강화됐으며 각국에서 권위주의적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미국이 주도한, 미국의 이익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면서 자유민주주의 정치경제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권위주의적 정치경제 모델을 주창하며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 측면에서도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도전이 거세졌다. 세계화로 서로 통합되었던 미중 경제가 이제 디커플링이 운위되고 기술 전쟁과 보호주의 조치들이 경쟁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안보 영역에서의 대결이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안보 차원의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효율성 논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 세계화, 정경 분리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 측면에서도 결정적인 타격이 가해졌으니 그것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규범 기반 국제 질서가 그동안 완벽하게 지켜져온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1990년 8월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침공했고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응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와는 달리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이 퇴조하고 있을 때 일어난 전면적인 침공이었기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현재도 전쟁은 지속 중인데, 그 향배는 앞으로 규범 기반 국제 질서가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고 잘 유지될지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미국에서 촉발됐다. 2008년 9월 15일, 150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 금융 회사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그전까지 일어난 국제 금융 위기들은 대체적으로 멕시코나 태국, 러시아, 유럽 등에서 발생한 후 수개월이 지나면 해소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사상 최초로 최강대국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에서 발생했고 그 파장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사상 최대금융 위기로 기록됐으며 장기간에 걸쳐 세계 경제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줬다.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단순한 경제 위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세계 권력의 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의 외
교 노선을 공세적 외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패권이 기울고 있다고 보고 이제 중국이 국제정치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2009년경부터 중국은 그동안 지켜오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 지침을 버리고 공세 외교를 펼치며 미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외교 정책의 대전환을 단행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된 미국의 중국 포용 정책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의 임기 첫해인 2017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중국을 본격적인 경쟁국, 미국의 안보에 도전하는 도전국, 그리고 국제 질서를 바꾸고 전 지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4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이 미국 제조업 약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대결 전략을 계승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고립주의적 성향 때문에 대 중국 압박에서 단독 플레이를 했던 것에 반해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적 연대 전략으로 나섰다. 

상승 대국 중국과 기존 대국 미국은 외교, 군사, 경제, 기술, 이념의 분야에서 대결 구도를 굳혀가고 있다. 그렇기에 미중 대결은 신냉전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다양한 여러 분야의 대결 양상 중에서도 군사적 대결과 긴장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고 그 핵심은 대만 문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중요한 관심사는 중국의 태도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해 반대하고 다극화된 세계를 원하는 러시아와 전략적 이해관계가 합치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중국-러시아 연대가 강화돼왔고 지난해 2월 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러 정상 회담에서는 양국 정상이 “중러 협력에는 제한이 없다”고 선언했다.

탈냉전과 세계화 이후의 국제 질서는 이처럼 미국 권력의 상대적 하강과 중국 권력의 상대적 상승이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그 결과 2018년을 기점으로 미중 관계가 포용에서 대결 관계로 전환됐다. 세계화는 권력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분산되는 국제 경제적 틀을 제공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반세계화를 향한 미국 국내 정치적모멘텀이 강화됐다. 결국 2018년 트럼프 행정부에서 반중 대결 정책과 함께 반세계화 정책도 채택됐다.

탈냉전 이후 지난 30년의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왔는데 결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 특히 규범 기반 국제 질서를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강력한 지원을 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대만 해협에서의 무력 사용을 통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말 것과 남중국해에서의 국제 규범준수,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상황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 질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향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냐 아니면 약화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세 가지 정도의 핵심 변수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변수로 내년 미국 대선을 꼽을 수 있다. 차기 대선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만일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과거 4년간 트럼프 행정부의 행적을 볼 때 미국은 다시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리더십을 포기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 경우 세계 질서의 향배가 상당히 비관적일 수 있다.

둘째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다.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그 후원 세력인 미국 및 나토 국가들이 승리한다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다시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그 반대로 규범 기반 국제 질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셋째 변수는 대만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도를 성공적으로 억제해냄으로써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유지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중 간에 소통 채널이 열리고 미중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일종의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미중 양국 간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건대 차기 미국 대선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유지를 주창하는 후보가 당선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그 지원국들이 승리하고, 대만 문제가 평화적으로 관리된다면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미래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러한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역사가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세계는 과거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로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