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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못 태어나거나 잘못 길러진 존재일까?
당신은 잘못 태어나거나 잘못 길러진 존재일까?
  • 김대현
  • 승인 2023.11.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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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58 퀴어로 한국사 논문 쓰기
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성소수자/퀴어를 한국사 논문으로 쓰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참으로 여러 번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 이전 한국의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 당사자들은 
기이할 정도로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해진 병리화와 배제의 구조를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과거 한국의 사회적 소수자 낙인찍기에 
동원된 지식과 제도를 재현하고 분석하겠다는 발상이 비롯되었다. 

성소수자들이 지금도 수시로 듣는 질문이 있다. 과연 성소수자는 유전자의 특성으로 그리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양육 과정의 영향으로 그리 자란 것인지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은 다음과 같다. 이성애자나 시스젠더(트랜스젠더의 반대말로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이 정체화한 성별과 같은 사람을 뜻한다)가 정작 그런 질문에 맞닥뜨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그런 양자택일의 질문을 듣거나 대답을 내놓아야 할 의무는 없다. 어딘가 잘못 태어났거나 잘못 길러졌다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어느 한쪽이 당사자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 각자의 원리로 서로 다른 형태의 낙인을 생산한다. 

우생학과 정신분석학의 낙인 

잘못 태어남의 낙인에 일조한 지식이 우생학이라면, 잘못 길러짐의 낙인에 일조한 지식은 정신분석학이다. 박사학위논문의 주요 분석 대상인 두 갈래의 지식이 이런 이유로 정해졌다. 19~20세기의 우생학이 인류 전체의 ‘퇴행’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배제를 합리화했다면, 20세기 중반까지의 정신분석학은 주로 인간의 성적 발달 단계의 기준을 이성애로 상정해놓고 거기에 어긋나는 존재를 ‘퇴행’의 결과로 보는 방식으로 그것을 합리화했다. 

‘보호’받아야 할 성적 존재를 구별했던 가정법원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쉽게 뱉는다. 그 발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무게는 사람마다 경중의 차이가 있다. 낙인을 생산하고 체계화하고 합리화하는 지식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한 이들과 더불어, 구체적인 조직과 법정 기구를 통해 그 지식의 사회적 적용에 몸담았던 이들은 그 책임의 첫머리에 놓일 사람들이다. 박사논문의 분석이 1948~1972년 한국의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지식을 넘어 제도를 겨누었던 까닭이 이와 같다. 

오늘날의 성소수자에 비견되는, 이성애·시스젠더 규범에 어긋나는 과거의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에 대해 혐오 발언을 했던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가정법원이라는 제도적 기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남성간의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하자고 주장한 권순영은 1963년 서울가정법원 설립에 큰 역할을 담당한 법조인이었다.

우생학이 만연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에서 등장한 가정법원의 이념은 ‘보호’의 명분 아래 특정 행위·존재를 문제로 폭넓게 규정하고, 사회사업학·심리학·정신의학·법학 등의 학문을 동원해 그들을 조사·감별하는 것이었다.  사진은  1964년『새가정』12호에 실린 ‘가정법원은 바쁘다-창설 일주년을 맞이하여’의 일부 내용이다. 

19세기 유럽에서 그러하였듯이, 동성애와 성매매와 자위행위를 묶어 이성애 생식의 성 규범에 어긋나는 성적 실천으로 보았던 정신의학자 유석진은 서울가정법원 초대 조정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무려 42년간 재직하였던 정신의학자 백상창은 정신분열증의 첫 단계로 동성애를 꼽는 한편, 동성애의 원인으로 여성운동의 ‘유행’으로 인한 남녀 성역할의 ‘착란’을 근거로 들었다.

성행위의 규제 및 성 규범의 형성이 가정의 몫이라고 간주되었던 당대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가 ‘가정 문제’와 매개되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당대 가족법의 한계 가운데 가정의 ‘부녀’, 즉 남성 호주 가부장의 아내와 딸은 이른바 ‘보호’해야 할 차등적인 존재로 각인되었고, ‘퇴행’의 증거로 인지되었던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호’의 대상이 되었다.

나아가 이 ‘보호’의 역할을 때로는 국가가 자임하였다. 우생학이 만연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에서 비롯된 가정법원의 이념은 ‘보호’의 명분 아래 특정 행위·존재를 문제로 폭넓게 규정하고, 사회사업학·심리학·정신의학·법학 등의 학문을 동원해 그들을 조사·감별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각계의 지식인들이 서울가정법원을 매개로 동성애뿐 아니라 성매매여성, 비행소년, 이혼 여성 등을 함께 병적인 존재로 낙인찍은 것은 이러한 이념적·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은 것이었다. 즉 여기서의 ‘보호’는 문자 그대로의 보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반사회성, 행위의 개연성만으로 처벌받는 존재

이러한 ‘보호’의 대상으로 가장 앞서 호명된 존재는 소년범을 포함한 ‘비행소년’이었다. 가정법원의 전신은 바로 이들을 처분하고 재판하기 위해 설립된 소년법원이었다. 서울가정법원 역시 서울지방법원 소년부지원을 계승하여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서울가정법원 설립 후 1년간 취급한 사건 중 84%는 가사사건이 아닌 소년보호사건이었다. 

여기서의 ‘소년비행’은 이미 발생한 범죄행위를 넘어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우범소년’의 개념은 1942년 제정된 조선소년령과 1958년 제정된 소년법을 거쳐 현행 소년법의 법문에도 잔존하고 있다. 행위의 개연성을 포괄하여 법적으로 처분하는 일은 대개 일반 형사법이 아닌 ‘복지’의 필요에 따라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합리화되었다.

민법의 범주에서 복지법을 바라볼 때는 복지의 혜택을 되도록 널리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형법의 범주에 적용된 ‘복지’의 개념은 어딘가 위험하고 문제 있어 보이는 존재들을 ‘싸잡아 처넣는’ 형태의 통치를 합리화하는 데 동원되었다.

오재환, 「보안처분에 관한 고찰」, 『사법행정』 242, 한국사법행정학회, 1980.10.

행위의 개연성을 처벌하는 또다른 법령 중 대표적인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1950년대 형무소에 수감된 사상범은 종종 국가의 은혜를 모르고 잘못된 사상에 빠져든 ‘고아’에 비견되어 ‘보호’받을 존재로 인지되었다. 이렇듯 ‘보호’를 명목으로 법원의 판결을 거친 형벌 외에 별도로 부과하는 일련의 형사처분을 ‘보안처분’이라 부른다.

한국에서 법제화된 보안처분은 국가보안법상 보도구금, 소년법상 감화원·소년원 수용을 비롯하여, 윤락행위등방지법상 ‘요보호여성’ 보호지도소 수용, 마약법상 약물중독자 강제수용, 전염병예방법상 격리수용, 모자보건법상 유전·전염질환자 강제불임수술 등을 망라하였다.

이 보안처분의 법적 계보에는 나치 독일의 형법이 있고, 나치 독일에서 실시된 보안처분 가운데에는 남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성적 이상자’에 대한 거세 조치가 포함되었다.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이른바 ‘반사회적’ 존재로 열거된 대상과 그들에게 가해진 통치의 진용이 이러하였다. 

낙인은 흐른다…한국 퀴어운동의 연대

성소수자/퀴어로 한국사 논문을 쓰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참으로 여러 번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 이전 한국의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 실천 당사자들은 기이할 정도로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남은 것은 그들의 존재를 희화화한 통속잡지의 기사, 혹은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기사 등이 대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당사자들이 전혀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록되었을 그들의 면면에 앞서서, 그들에게 가해진 병리화와 배제의 구조를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과거 한국의 사회적 소수자의 낙인찍기에 동원된 지식과 제도를 재현하고 분석하겠다는 착상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거기에는 과거의 성소수자/퀴어를 역사적으로 성격 규정할 때, 그들을 당대에 특이하고 이례적인 존재로 그리기보다, 그들이 당대의 다른 역사상과 어떤 식으로 고립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가 고립될수록 그 누군가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용되고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퀴어운동이 전개해온 연대의 정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2001년 한국의 법령 중 성적 지향(동성애·양성애) 차별금지조항이 처음 명시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만들 때, 2000년 연말 동성애자 단체를 포함해 민가협·유가협 등 유수의 민주화운동·인권운동 단체들이 함께 단식 투쟁을 전개했다. 2012년 성적 지향과 더불어 성별 정체성(트랜스젠더) 차별금지조항이 한국 최초로 명시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에도, 성소수자 단체를 비롯하여 숱한 사회운동 단체들이 조례의 원안 통과를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웠다. 

거기에 성소수자를 포함한 누군가가 함께 있었고, 누군가가 함께 낙인이 찍혔고, 누군가가 함께 맞서 싸워나갔다. 그 명징함의 힘으로 퀴어를 다룬 한국사 논문을 썼다. 그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22년 2월,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 만들기 대국회 집중 유세 ‘가자, 평등의 나라로’ 시가 행진 모습이다. 사진=김대현

당대에 소외된 것들로부터 길어 올린

사회운동뿐 아니라 스스로 몸담아 온 역사학계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웠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군부독재 시절의 민주화운동가, 노동을 탄압하던 시대의 노동운동가, 냉전 치하의 통일운동가들 모두, 몇몇 명망가를 제외하면 소위 당대에 ‘팔자가 드센’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존재와 그들이 겪은 낙인을 통해 불의를 낳는 사회 구조가 드러나고, 그것이 드러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가 당대의 사회상과 역사상을 설명하는 데 놓쳐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 되는 과정은 학부 시절부터 한국사 학제에 몸담으면서 줄곧 목격해 온 바였다. 

사회 구조가 서로 교차하여 작동한다는 인식은, 역사와 사회의 각 현장마다 곡진하게 겪어온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한 사회와 역사를 설명할 때 누락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감각으로부터 나왔다. 과거 한국 사회에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이 서로 얽혀있었듯이, 교차성이란 별도로 힘주어서 나온 교양의 언어가 아니라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현장의 경험이 얽혀있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거기에 여성과 성소수자의 존재와 경험이 빠져서는 안되겠듯이, 과거와 현재의 한국 사회에도 분명 빠져서는 안될 존재와 경험이 사람들의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가운데 앞으로의 학술 활동에 매진하고 싶다. 

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2023년 연세대 사학과에서 「성 규범의 지식·제도와 반사회성 형성, 1948~1972」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운영위원, 가족구성권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현대의 젠더·섹슈얼리티 낙인의 형성과 그에 결부된 지식·제도에 관해 공부해왔다. 저서로 『‘손상’과 장애의 문화사』(2023, 공저), 『불처벌』(2022, 공저), 『세상과 은둔 사이』(2021), 『원본 없는 판타지』(2020, 공저)가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1950~60년대 ‘요보호’의 재구성과 ‘윤락여성선도사업’의 전개」(『사회와 역사』 129, 2021), 「1980~90년대 게이 하위문화와 대안가족의 구성 : 제도적 이성애와의 관계를 중심으로」(『구술사연구』 12(1), 2021) 등이 있다. cryingk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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