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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인간중심 페미니즘의 경계 뛰어넘기
기후위기 시대, 인간중심 페미니즘의 경계 뛰어넘기
  • 김신효정
  • 승인 2022.11.03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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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28 페미니즘과 자연을 다루는 에코페미니즘 연구

<교수신문>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연재를 시작하며: 새 세대 한국 인문사회 연구자를 만난다

 

한국 학계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연구기관과 학과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여성학계에서도 자연과 생태의 문제는 여전히 시급한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와 같은 시민사회 영역의 자발적 지식공동체에 의해 연구가 근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서울 시청역 일대에서 개최된 기후정의행진에서는 다양한 피켓의 구호를 볼 수 있었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기후위기는 농업의 위기’, ‘우리는 늙어서 죽고 싶다’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어떻게 기후정의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지금 전 세계는 전쟁과 기근, 폭력과 혐오, 자살과 기후재난 등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과연 나는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의 문제에 대해 과연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어떠한 질문을 제기하고 어떻게 새로운 대안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지난 9월 24일 서울 시청역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사진=환경운동연합

인간중심 페미니즘의 성찰 

사실 페미니즘의 제도 학문인 여성학에서도 자연과 생태는 주요한 의제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국가 시스템 역시 생태라는 인간너머의 세계를 하나의 행위주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개발을 위한 자원, 수단, 도구로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이란 자연의 반격은 인간과 생태라는 행위자 간 새로운 공존 관계의 모색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 개념의 비판을 위해 여성을 자연에서 분리하고자 노력해왔고, 자연을 더욱더 자연화 해왔다. 즉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위해서 자연을 고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물질로 다루는 동시에 인간, 문화, 문명, 발전과 구분되는 하위로 다루어 왔던 것이다. 

이에 에코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여성 억압과 자연 억압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의 새로운 관계성을 구성해왔다. 에코페미니즘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 생태와의 관계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존에 페미니즘에서 다루어온 여성의 법적, 제도적 권리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영원히 부재하거나 결핍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의 국민국가 시스템 내에서 여성의 시민권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승인되기를 기다려야하는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법제도의 변화를 넘어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왜 나는 에코페미니즘을 연구하는가

나는 에코페미니즘을 연구하면서 인간중심사회에서 보자면 더욱더 비주류 연구자가 되어가고 있다. 연구자로 먹고사니즘도 어려운 여성학자로 살아가면서 인간만이 아닌 자연, 생태와의 관계성을 여성학적으로 연구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비주류 연구는 급진적인 상상력과 새로운 전환의 모색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여성학의 힘이기도 하다. 나는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여성학을 전공했고 국제개발협력을 부전공했다. 나는 지난 15년간 농촌, 농업, 여성농민, 토종씨앗, 토착지식, 먹거리, 대안경제, 에코페미니즘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나는 대학 학부시절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여성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다. 20대 중반에 성매매 연구를 하기 위해 여성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나, 여성학의 다양한 논의들을 공부하면서 특히 여성노동과 대안경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여성이 경험하는 다양한 폭력이 종결되고 난 이후의 삶은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커져갔다. 10년 전 석사논문으로 ‘토종씨앗지키기 운동을 통해 본 여성농민의 토착지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할머니 여성소농이 지켜온 토종씨앗과 토착지식이 어떻게 GMO의 대안이자 식량주권운동의 주요한 매개체로 새로운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하였다.  

당시 여성학과에서 여성농민에 대한 석사논문은 1990년대 이후로 20여년 만에 처음 나온 상황이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여성학 연구의 경향성이 농촌이 아닌 도시 중심의 여성 연구였음을 반증한다. 한국 사회의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였고, 현재 농민은 또 다른 소수자로 위치된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현장연구를 진행할 때 여성농민들로부터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연구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내가 더 고마웠다. 좌충우돌 석사과정 학생의 부족한 연구 질문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어주는 연구 참여자들에게 내가 하는 여성학 연구가 연구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연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한편으로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이야기에 그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여성학의 매력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이라는 자연의 반격은 인간과 생태라는 행위자 간 새로운 공존 관계의 모색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서울 시청역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사진=환경운동연합

뛰어넘고 교차하는 여성학의 매력

박사논문으로 인도네시아와 한국 여성농민의 대안농업운동 사례를 통해 어떻게 여성농민주체가 생태시민이 되어 가는지를 비교 연구했다. 여성농민이 현재의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대안농업운동을 통해서 생태적이고 시민적인 경험세계를 새롭게 구축해나가고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존재로 변화해나가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특히 이러한 새로운 생태시민성의 출현이 가능한 조건으로 대안농업운동을 하는 여성농민이 어떻게 흙, 땅, 종자, 작물과의 관계성을 통해서 더욱더 땅을 옹호하는 주체가 되어 가는지 여성농민과 생태라는 물질, 지식, 돌봄, 정동의 새로운 구축과정을 비교 분석하였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두 지역 사례에서 여성농민들은 각기 다른 대안농업운동의 실천 전략 속에서 생태를 하나의 행위자로 재발견하고 이들과 새로운 관계성을 구축하는 가운데 새로운 농민 주체성을 발현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보였다.

여성농민들은 흙, 땅, 종자, 작물을 주체성을 가진 행위자로 위치시키면서 관계성을 재구성하는 가운데 특히 생태라는 물질을 자신의 생애 계보와 가치체계 속으로 상호 연결하면서 스스로의 사회적, 정치적 정체성을 여성농민이자 생태농민으로 새롭게 형성해가고 있었다. 

나는 박사논문에서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의 이론적 논의를 가져와서 인간중심 여성주의 시민권 개념을 다종 간의 윤리, 즉 인간과 인간 너머의 세계 간 새로운 윤리로 분석하고자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과 생태라는 행위자의 새로운 공존 관계를 모색하고 지금의 사회와 국가 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건과 실험이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태라는 행위주체를 중심으로 시민성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고자 했다. 

생태를 중심으로 재배열되는 세계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이란 자연의 반격은 인간과 생태라는 행위자 간 새로운 공존 관계의 모색을 긴급히 요청하고 있다.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생태라는 행위자를 중심으로 재배열되는 세계는 인간, 식물, 동물 등의 다종이 각각의 행위자로 위치될 수 있다.

나는 에코페미니즘 연구자로서 앞으로 생태돌봄과 여성주의 생태시민성에 대한 사례 연구, 기후위기의 생활정치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볼리비아의 어머니 지구 권리 법과 같은 자연이 어떻게 법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등을 계속해서 연구해가고 싶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학계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앙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연구기관과 학과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여성학계에서도 자연과 생태의 문제는 여전히 시급한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와 같은 시민사회 영역의 자발적 지식공동체에 의해 연구가 근근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바라며 

1982년 아시아와 한국 대학 내 최초로 여성학과가 개설된 이후 올해는 4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40년 간 여성학은 여성운동 및 여성정책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다양한 법제도의 제정과정과 한국 사회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한국사회에 성폭력과 가정폭력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여성학과 논문이 나왔고 1990년대 이후 섹슈얼리티, 여성노동, 정치, 정책, 역사, 공동체, 아시아 연구 등 통합적인 학제 간 연구와 지식이 계속해서 생산되었다. 특히 여성학을 전공했던 졸업생들은 시민사회와 정책 영역에 몸담으면서 여성학 의제는 계속해서 현실과 맞부딪히는 가운데 확장되어왔다. 

한편 대학에서 여성학 전공은 마치 한국 사회 여성부의 설립과 축소, 확장과 존폐 논의처럼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여성학 협동과정이 생기고 없어지는 부침의 시간을 거쳐 왔다. 페미니즘의 제도화로 인한 여성운동의 약화, 여성혐오의 등장과 페미니즘 리부트, 미투 운동과 백래쉬, 낙태지 폐지 등 페미니즘 실천과 이론, 여성학과 여성운동, 여성정책은 한국사회에서 의미 있는 변화와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위기와 생태재앙의 문제에 응답할 차례이다. 우리는 자연과 생태를 다시 사유해야한다. 이제는 공존이 아닌 생존을 위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 최근 포스트모던 에코페미니즘은 환경문제가 여성뿐만 아니라 민족, 빈곤, 노인, 장애, 섹슈얼리티와 어떤 식으로 교차 연결되어 있는지를 자연과 소수자들에 대한 착취 구조로 설명한다.

이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재구성할 것을 주장하는데, 인간이 생태계와 서로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부정의, 억압, 위계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기획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제는 인간중심 패러다임을 넘어서 여성학의 급진적이고 새로운 상상력이 요구된다. 

김신효정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 나무’ 연구위원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여성농민의 대안농업운동 사례의 비교연구를 통해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난에 대응하는 여성농민의 새로운 주체적 실천과정으로써 생태시민되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씨앗, 할머니의 비밀』(2018)이 있고, 공저로는 『다시 쓰는 여성학』(2021),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세상도 바뀌겠지』(2020),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2016)가 있다. 해외 공저로는 『Indigenous Wisdom and Innovations for Planetary Health and Sustainable Food Systems』(2023년 출간예정),  『Soberanía Alimentaria: Un diálogo crítico』(2018) 등이 있다. 여성학의 관점에서 인간과 생태의 관계성에 대한 다양한 현장 연구와 새로운 논의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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