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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 공공성은 멀고 개인만 남았다
데이터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 공공성은 멀고 개인만 남았다
  • 이선민
  • 승인 2023.07.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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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44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새로운 지형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미디어 생산과 이용 주체가 분리됐던 환경에서는 
개인의 비판적이고 효율적인 미디어 이용이 중요했다. 
지금은 개인이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데이터 생산에도 동원되는 단계다. 
생산해낸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되는 환경에서 
다른 차원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자. ‘사흘 논란’(대체로 MZ라는 상상의 집단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되는)에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10대의 학력수준 저하를 우려하는 상황에도, 때론 아동의 스마트폰 과의존의 해결책에도 미디어 리터러시가 등장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국정과제가 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보통명사가 됐다. 그러나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 등 같은 듯 다른 표현이 넘쳐난다. 

리터러시는 말 그대로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뜻한다. 미디어를 잘 읽고 이용하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미디어를 통해 자기표현을 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과거에는 콘텐츠 해독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미디어가 도구가 아닌 공간화된 시대에 미디어화된 환경과 맥락을 이해하며 개인·사회와 소통하는 능력으로까지 확대됐다.

사실 이런 능력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돼 있다. 트위터의 글자 수 제한(현재 1만 자로 확대)이 우리의 사고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틱톡의 짧은 동영상 문법이 표현의 수용 범위를 바꾸면서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식 또한 변화하고 있다.

근거와 설명이 없는 두 단어의 조합이 대통령 선거의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이것이 일부 집단에서 힙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미디어 콘텐츠와 형식의 관계, 그리고 개인의 인식과 사회 전체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디어 활용 넘어 ‘미디어 환경’ 바로 보기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는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되고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모든 사물이 디지털화되는 맥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당연히 디지털 미디어를 포함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고 경도하는, 그래서 국가 차원의 관심과 자원이 집중되는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도구적 수준에서 디지털 기술의 능숙한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조기 코딩교육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또한 허위정보 유통, 스마트폰의 과다 이용과 같은 미디어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교육을 통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기르기가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이때 혐오 표현·허위 정보를 유통해 이윤을 챙기는 플랫폼의 사업모델과 공격적인 추천 등 다크 패턴 규제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개인이 교육을 받고 역량을 길러서 미디어를 잘 이용하라는 것이 핵심인 듯 하다. 

정부 등 공적 영역에서 미디어 환경·구조를 바꾸려는 노력과 제도적 접근이 수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강조는 립서비스일 뿐이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가깝다. 공영미디어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미디어의 공공성을 말하는 것은 대단히 공허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 활용 역량을 넘어 미디어 환경을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기도 하다. 즉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개인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연결된다.

거칠게 말해 데이터 사회에서 ‘21세기 원유’인 데이터의 수집에 순응하며, 데이터 활용 기술을 익혀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향하는 것과 기업의 인간 행동 데이터화에 의문을 제기하고 저항을 고민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한국 아동·청소년의 프라이버시 위협 요인을 설명한 것이다.

청소년 프라이버시 권리로서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 교육을 하는 공공기관에 입사해 처음으로 책임연구를 맡아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청소년 프라이버시 권리를 위한 교육방안과 제도 개선 연구」(2021)를 냈다. 그간 국내 미디어 리터러시 논의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프라이버시,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시민으로서 권리, 미디어 제도의 개선 등을 미디어 리터러시 논의와 연결시킨 연구이다. 데이터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아동·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프라이버시 위협과 침해 요인을 이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미디어, 학교, 가정 세 차원에서 분석했다.

이와 함께 프라이버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교육 방안과 제도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소셜미디어 등 각종 플랫폼을 통해 개인 데이터의 수집·저장·활용 등을 통해 행동 타깃팅, 자동화된 정보처리, 프로파일링, 의무적인 신원 확인, 정보필터링, 대중 감시가 일상화되어 있다. 플랫폼 기업은 배터리 잔량, 가족관계, 연인 유무 등 개인에 관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보유하고 있다. 

반면 개인은 플랫폼 기업이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수집한 정보로 자신을 어떤 대상으로 프로파일링하는지, 프로파일링에 근거해 내보낸 맞춤형 정보가 자신의 의사결정, 관계, 인식체계 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지 못한다.

국민통제 시스템이자 개인의 정체성을 기호화한 주민등록번호의 과도한 이용에서 드러나듯 한국 사회는 프라이버시 개념도 희박하다. 더구나 아동·청소년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동·청소년의 프라이버시는 의제화되지 못했다. AI스피커 ‘이루다’ 사건에서의 여성혐오 표현은 널리 알려졌지만 14세 미만 아동 20여만 명의 개인정보가 보호자 동의 없이 수집된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아동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해서 아동이 특정 지역에 들어가면 부모에게 출입 알람이 가거나 아동이 무슨 단어(이성, 학업 고민 등 검색)를 검색하는지를 부모가 확인할 수 있다.

또 집안에 홈캠을 설치해서 부모가 실시간으로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고 개입하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일상화된 감시는 아동·청소년들은 인간으로서 성장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중학교 정보교과를 통해 개인정보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나 해외와 달리 프라이버시 권리를 다루지 않고 법적 개인정보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출처=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학교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학습 환경이 조성되면서 아동의 표정, 과제제출 여부, 가정 환경(줌의 배경) 등의 정보가 아무렇지 않게 공개된다. 에듀테크가 아동·청소년의 프라이버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별다른 검토 없이 학교에 도입됐다.

문제는 국가교육이라는 대규모 시스템을 통해 이런 과정이 이뤄져서 거부도 어렵다. 에듀테크 기업이 수집한 학생 정보가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프라이버시를 위협·침해하는 학교와 미디어의 환경은 개인에 대한 교육과 함께 제도 개선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새로운 지형과 질문

연구가 끝날 즈음, 왜 한국은 해외와 달리 프라이버시가 아닌 개인정보 교육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는 개인정보 교육은 정보윤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2005년 헌법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개인정보에 관한 권리를 명시했음에도, 중학교 정보 교과가 ‘권리’를 언급하지 않고 ‘정보윤리’라는 개념 하에 개인정보보호법을 중심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을 강조하는 지점을 연구에서 지적했다.

그런데도 그것으로는 해소되지 않은 질문이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표방하진 않았지만 미디어 이용과 직결된 교육이라는 점에서, 알고리즘 이용의 보편화로 프라이버시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개인정보 교육 담론을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디지털 미디어가 작동하는,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2000년대 초 정보윤리 담론이 인터넷의 확산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개인의 규범 준수 요구와 개인에 대한 규제로 해소하려 했고, 이것이 학교에도 스며들었으며, 오늘날의 미디어 교육에서도 윤리와 책임의 이름으로 수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규범을 앞세운 교육에서 권리의 자리는 줄어들고, 개인 규범의 강조는 미디어 기업의 책임을 가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정보 교육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미디어 생산과 이용 주체가 분리됐던 환경에서는 개인의 비판적이고 효율적인 미디어 이용이 중요했다. 이제 그 단계를 지나 개인이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데이터 생산에 동원된다. 생산해낸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정체성이 규정되는 환경에서 다른 차원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선민 시청자미디어재단 선임연구원 
클릭베이트 뉴스 이용이 뉴스에 대한 인식과 이용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연구로 2019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거 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확장해 저널리즘을 연구하고 있다. 미디어 전문 공공기관인 시청자미디어재단에 입사한 후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뉴스 댓글 쓰기 경험이 뉴스 댓글의 상호작용 및 참여 효능감과 언론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 「유튜브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노동: 20, 30대 사무직 여성의 직장인 브이로그에 대한 탐색적 연구」, 「세월호, 국가, 미디어 :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세월호 보도에 나타난 ‘국가’ 담론 분석」(공저) 등이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청소년 프라이버시 권리를 위한 교육방안과 제도 개선 연구」(공저) 등의 정책연구보고서를 펴냈다. 한국방송학회 김세은저널리즘상(2023)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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