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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감, ‘MEGA’를 접했던 그 낯선 감정…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당혹감, ‘MEGA’를 접했던 그 낯선 감정…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 이회진
  • 승인 2023.10.02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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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53 MEGA와 MEGA 한글판
이회진 MEGA 한글판 편집위원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MEGA 번역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의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의 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는 MEGA를 MEW와는 다른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 정도로만 알고 있다.

당혹감 그 자체였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서울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Marx Engels Gesamtausgabe(이하 MEGA)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정이다. 그전까지는 줄곧 Marx Engels Werke(이하 MEW)가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으로 알고 있었다. 국내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번역본 모두 MEW를 번역 대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낯선 감정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도 MEGA를 구성하고 있는 부속 자료(Apparat)가 도대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더 나아가 MEW와 MEGA에 수록된 같은 텍스트가 왜 순서가 다른지도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런 상태로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런 당혹감을 기억 저편 어딘가에 묻어둔 채 지낼 무렵, 강신준 교수(동아대 경제학과)가 의뢰한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와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미완성으로 알려지고 있는 『경제학-철학 초고』가 수록된 MEGA 제1부 제2권에 대한 번역에 착수했다. 당혹감은 번역 과정에서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학에 들어서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이 MEGA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무력함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MEGA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MEGA를 번역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결코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MEGA 자체’가 MEW와 달리, 텍스트 비판(Text-Kritik) 방법, 즉 아주 작은 실수로 보이는 문법 오류부터 각 텍스트의 연대순 및 내용적 연관성에 따라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 모두를 수록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보다도 부속 자료의 다양한 정보를 해석하는 데 있다는 것을 MEGA 제1부 제2권의 텍스트를 전부 번역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MEGA 번역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필자가 새로운 연구 분야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필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MEGA 자체’의 무게감 때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는 MEGA를 MEW와는 다른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이 주도하는 MEGA 작업은 2030년까지 독일 정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총 114권(121책)을 출판하는 사업이다. 현재까지 약 70권이 출판됐다.

MEGA는 국내외에서 유일하게 ‘학술 정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이다. MEGA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요 저작이, 제2부는 『자본』 및 『자본』의 사전 작업물이, 제3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고받은 서신 및 양자가 제삼자와 주고받은 서신이, 제4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작성한 각종 메모·발췌록·난외 방주 등이 수록돼 있다.

그리고 MEGA 한 권은 텍스트와 부속 자료로 이뤄져 있다. 텍스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작성한 원문을 있는 그대로 연대순으로 수록하고, 부속 자료는 텍스트에 대한 집필 과정과 전승 과정, 변경사항 목록, 교정사항 목록, 그리고 해설 등으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도 MEGA의 부속 자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학 연구의 기초자료라는 점에서 텍스트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MEGA, 114권 출판 예정…현재 70권 출판 완료
국내 MEGA 번역과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이 주도하는 MEGA 작업은 2030년까지 독일 정부의 재정적 지원으로 총 114권(121책)을 출판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현재 약 70권이 출판됐다. 이와 달리, 국내 MEGA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탈냉전·탈이데올로기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인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선입견, MEGA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국내 연구자의 무지와 무관심, 양적 성과주의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에 가까운 국내 연구 상황과 이로부터 비롯된 번역 및 번역자에 대한 저평가, 고갈 위기에 처한 번역자 등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MEGA 또한 여러 차례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MEGA 편집자의 문헌학적 작업물의 축적과 작업 방식이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연구 성과물이 상당히 축적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의 연구 성과물이 주로 시대사적 요청에 따른 실천적인 문제에 치중돼 있을 뿐, 아직도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에 관한 문헌학적 연구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리야나노프와 모스크바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소 사진이다.

MEGA 한글판, MEGA 연구의 씨앗

이런 상황에서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소장 강신준)가 주도한 MEGA 한글판은 2021년 5월 최초로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1분책』(김호균 옮김, 도서출판 길)과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2분책』(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을 출판했다.

이 두 권의 책은 MEGA 연구 시대를 국내에서 개시할 씨앗일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 연구와 관련해서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두 권의 책으로 향후 국내 연구자가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적 연구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MEGA 한글판(MEGA² Ⅰ-2, Ⅰ-5, Ⅰ-10,Ⅰ-26,Ⅰ-27 번역 참여)과 MEGA 편집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는 국내 최초로 MEGA² 제4부에 수록된 「밀-발췌록」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맑스의 인정개념-『경제학-철학 초고』와 MEGA² Ⅳ-2의 「밀-발췌록-」을 중심으로」(2020년)를 발행했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의 인정 개념을 현존하는 (비)대칭적인 권력 구조 내의 기만적인 상호 인정이 현존하는 질서를 존속하게 하며, 상호 호혜적인 인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비판적 척도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았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들’에 대한 문헌학적인 정보를 수집해 「독일이데올로기 문헌 논쟁사와 MEGA² Ⅰ-5의 출판의 의미」(2020년)를 발행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기존 ‘독일이데올로기 초고들’의 편집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문헌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았던 ‘독일이데올로기 초고’. 

마르크스에게 철학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독일이데올로기 초고들’이 계간지 형태의 원고였다는 MEGA 편집자의 문헌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기원을 반철학과 비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마르크스 역사철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반철학과 비철학」(2022년)을 발행했다.

여기서 반(反)철학이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의미다. 비(非)철학이란 철학적 개념을 토대 혹은 원리로 정초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전제한 후, 역사적 유물론을 ‘역사철학’으로 재해석할 수 있음을 논증했다.

요컨대 필자가 MEGA 번역을 통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마르크스에게 철학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기존 논의처럼 마르크스는 정말로 철학을 완전히 폐기했던 것일까?

그때 폐기한 철학은 분명히 추상적인 담론을 형성하면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전공 철학이었을 텐데, 전공 철학이 아닌 철학은 엥겔스의 말처럼 세계관(Weltanschauung)에 불과한 것일까? 알튀세르 말처럼 과학일까?

이 질문은 곧 마르크스에게 철학은 과연 무슨 의미였는지로 귀결한다. 이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MEGA 한글판의 지속적인 출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르크스 사상 전체를 조망할 문헌에 대한 이해와 그 번역을 통해서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초의 위기 겪는 MEGA 한글판

그러나 MEGA 한글판은 대장정의 출발 지점에서 이미 좌초의 위기를 겪고 있다. 올해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연구소지원 사업 중 순수학문연구형-번역 과제에 선정되지 못함으로써, 그동안 MEGA 한글판을 위해 개인적인 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다양한 학문의 전공자, 개별 연구자의 문헌 해석 능력, 연구자의 번역 협력 과정, MEGA 한글판 편집자의 편집 기술과 능력 등이 사장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MEGA가 여러 차례의 부침을 겪고 한동안 중단되었을 때처럼, MEGA 한글판도 같은 길을 가야 할 운명에 처한 것인가? 필자만 느낀 것이 아닌 그 당혹감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회진 MEGA 한글판 편집위원
전남대에서 「생산력, 시간, 개인 -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 -」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2021년 8월까지 재직했고, 2021년 9월부터 “역사적 유물론의 뿌리로서 마르크스 역사철학 - MEGA² Ⅰ-5를 중심으로 -”라는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술연구교수(A유형) 사업에서 지원을 받아 마르크스 역사철학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MEGA 한글판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마르크스 역사철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반철학과 비철학」, 「맑스의 인정 개념 - 『경제학-철학 초고』와 MEGA² Ⅳ-2 「밀-발췌록」을 중심으로-」, 「자연의 유물론과 생태 민주주의 - 칼 맑스(K. Marx) 『경제학-철학 초고』와 코로나 이후 새로운 삶의 양식을 중심으로 -」(공동), 「독일이데올로기 문헌 논쟁사와 MEGA² Ⅰ-5 출판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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