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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은 어떻게 개인적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인민은 어떻게 개인적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 윤보영
  • 승인 2023.10.25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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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56 남한에서 북한을 공부한다는 것
윤보영 동국대 북한학과 강사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북한의 인민이 바라는 북한 사회의 변화와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은 어떠한 풍경일까. 
나는 북한 사회에서 뇌물이 갖는 의미의 변화, 
과시적 소비문화의 의미, 인민반 생활, 공장 노동자의 경제적 삶과 같은 
다양한 키워드로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 대 사람으로 같이, 서로를 존중하는 한반도 지역의 주민으로서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사유하고 감각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 

나는 북한을 공부한다. 남북 교류와 평화를 위해 연구와 활동으로 애써온 원로 선생님은 우리가 그동안 안 해본 노력이 대체 무엇인가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이 한탄 앞에서 전혜린의 글을 생각한다. 좌절감을 느낀 날인지 “또 다시 가을이 오고”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다.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공부이고, 하는 동안 좋았다. 견디고 버티며 계속하는 것, 그 외에는 어차피 방법이 없다. 

남북은 짧게 대화하고 길게 단절되어 왔다.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난 오늘, 그동안 주고받은 노력과 약속이 허무하게도, 한반도는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은 통일지향적 특수관계로 상정된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이 일제시기 이전부터 어떤 맥락 속에서 다른 체계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북한은 어떤 세계관을 가진 곳인지, 북한 정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은 어떤 성취와 어떤 정체를 겪고 있는지, 북한 사회가 어떤 구체적인 체계 속에서 작동하는지 알아야만 일반적인 이웃 나라 관계라도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북한 정부가 인민에게 노래·춤·연극과 같은 방법으로 정책을 전달하는 예술선전대가 북한 사회 전반에서 어떻게 활동했으며, 체제에 기여한 역할은 무엇인지로 북한학 연구를 시작했다. 

북한의 선전화

북한 이탈주민 ≠ 북한 + 남한 ≠ 북한 사람 ≠ 남한 사람

내가 공부하는 내내 북한은 가난했다. 식량난 때문에 머리만 커다랗고 배는 볼록해진 아이, 빨래판처럼 마른 맨가슴을 드러낸 사람의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나는 고난에 처한 사람을 단지 연구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자꾸 나의 위치에 대해 생각했다.

북한에 살고있는 사람의 삶과 내 삶의 거리감 혹은 괴리감을 느낄 때마다 자꾸만 나라도 뭔가 해야 한다는 다급함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NGO인 ‘머시콥(Mercy cops)’에 들어가 중국에서 여성과 아동 학대 사례 수집, 피난처·식량·교육·의료를 제공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고난의 행군기’로 알려진 1990년대 북한 주민의 삶은 참혹할 정도로 어려웠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 이탈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들이 삶의 터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위기가 들이닥치는 법이다. 어린아이, 소년, 소녀, 노인, 환자, 생활을 책임지는 역할을 짊어진 여성이나 남성도 예외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말하지만, 원래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떤 딸이고 아들이었는지, 어떤 엄마였고 아빠였는지,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자 ‘자기존엄’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 사람을 나는 감히 동정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사연들, 중국에서는 ‘불법’으로 다뤄지는 위태롭고 서글픈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에는 진흙탕을 기어 다니는 꿈을 꾸었다. 각자의 사연으로 절박하고 서러운 사람들의 잊을 수 없는 얼굴. 나는 이제 북한에 ‘고난의 행군’ 같은 시기가 다시 온다고 들으면,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북한 화가 황인재의 그림이다. 그림=koryostudio.com

조건부 환대의 대상, 북한 이탈주민

중국에서 북한 이탈주민을 만났을 때 나는 이들이 남한에 가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온 북한 이탈주민은 이주민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어려움을 이중으로 안고 있는 존재가 된다. 이들은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북한+이탈+주민’으로서만 위치지어지며, 북한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나는 어느 사회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개인의 삶에 어떤 압력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들어왔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 위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삶을 ‘경계인(Marginal Man)’이라는 이론적 렌즈를 통해 살피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북한 이탈주민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남한에 온 개별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으며, 불가침의 영역을 소유한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무조건적 환대를 받지 못한다. 대신 조건부 환대의 대상이 되는데, 그 속에서 이들은 남한에서 육성되어야 하는 인간형을 전달받고 통일을 위한 용도로서의 인간이자 자원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정부가 제안하는 북한 이탈주민다움은 통일자원, 생산적 기여자, 착한 이주민이다. 

북한 이탈주민은 남한 사회가 통일을 경험할 수 있게 먼저 온 미래, 통일의 연습장이기 때문에 북한 이탈주민을 ‘활용’하는 통일교육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착한캠페인, 착한봉사단, 착한사례 모음집에는 편견을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자기 몫이라는 걸 깨닫고, 착하고 솔직하게 노력한 끝에 자립에 성공한 북한 이탈주민이 취약계층을 돌보고 현충원에서 묘역을 정돈하며 남한 사회에 보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존재로 규정당하고 나아가 남한 사회에 생산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착한 이주민으로 훈육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에게 갖는 겹겹의 기대에는 식민주의적, 인종적, 젠더적 모순의 시각이 겹쳐있다. 근원적으로 남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북한 정부는 대외적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안정시키고 내수시장 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가 이데올로기만 강화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민에게 소비를 장려하며 내부경제를 관리하는 것이다. 사진은 1992년경 북한에서 발행한 50원 지폐에 있는 인민의 얼굴이다. 사진 제공=윤보영

저마다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 북한

북한을 공부할수록 북한이 남한사회의 어지러움을 비춰주는 “잘 닦여진 거울”처럼 느껴진다. 남한 안에서 북한을 이용한 정쟁은 위험한 수준이고, 과대 대표되는 극단의 논리는 북한을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며 남한 사회가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빼앗는다.

스스로에게 주는 맹목적인 믿음, 즉 “내 말이 맞다”는 기준에 기초해서 타인에게 요구하는 “당신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논의는 윤리적 폭력이다. 래퍼 김하온의 언어를 빌려보면 아무리 신념이라는 외투를 입어도 “그대들은 그저 verse 채우기 위해 화가 나있고” 북한을 땔감으로 삼는 “증오란  정말 질리는 맛”이다. 

북한을 공산주의라는 납작한 언어로 남한과 완전히 다른 체제, 남한과 반대되는 존재로 던져놓는 타자화는 참 철 지난 얘기다. 북한 정부는 대외적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안정시키고 내수시장 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가 이데올로기만 강화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민에게 소비를 장려하며 내부경제를 관리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적 가치와 규율은 북한이 처한 환경에 맞춰 일정 부분 조응하며 그 안에서 시장이라는 상반된 힘이 이미 상호결합하며 조율되고 있다. 

2002년경 북한에서 발행한 50원 지폐다.  사진 제공=윤보영

남과 북에서 사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국가 중심의 국제정책에 포커싱된 국가안보연구보다 북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인민은 어떻게 개인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억압받는 회색의 덩어리가 아니라 저마다의 얼굴을 가진 인민이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지평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에 집중하기 위해 북한 정부가 놀이에 부여하는 의례로서의 의미를 살펴보고 인민이 수행하는 놀이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세속화되는지 검토했다. 

북한 정부는 인민에게 어렵고 힘이 들수록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혁명적 낭만의 정신으로 고난을 이겨낼 것을 독려한다. 놀이에는 고난을 맞이하는 인민이 가져야 할 정신, 태도, 지향과 정부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가지고 있음을 확약하는 의례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북한 이탈주민은 북한에서의 삶을 회고하며 놀이를 했을 때, 그 의미를 생각하기 보다는 “노는 자유”를 만끽했음을 이야기했다. 안전한 범위 안에서 현란한 춤을 추며 무한한 해방감을 발산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어둡고 갇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북한 사회 안에서 인민은 풍부한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정치적 의견을 이야기할 자유가 없더라도 의식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인민이 바라는 북한 사회의 변화와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은 어떠한 풍경일까.

나는 이러한 질문을 이어 북한 사회에서 뇌물이 갖는 의미의 변화, 과시적 소비문화의 의미, 인민반 생활, 공장 노동자의 경제적 삶과 같은 다양한 키워드로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내가 감히 동정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알고 ‘만나는 것’ 나아가 사람 대 사람으로 같이, 서로를 존중하는 한반도 지역의 주민으로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사유하고 감각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 

윤보영 동국대 북한학과 강사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북한의 군중문화: 예술선전대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북한이탈주민의 탈경계적 실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구주제를 북한사회에 집중해 놀이, 뇌물, 소비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에는 북한의 노동자가 경제적 삶을 어떻게 꾸려가는지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북한 일상생활 공동체의 변화』(공저, 통일연구원, 2021), 『북한이탈주민 가치적응 실태연구』(공저, 통일연구원, 2019)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규범화된 조건적 환대와 도덕적 주체들의 부딪침」, 「북한사회 뇌물의 사회적 맥락」,「북한주민의 놀이에 담겨있는 이념과 실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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