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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전후’ 낯설어진 일본, 그들이 핵에너지를 다루는 방식
[글로컬 오디세이] ‘전후’ 낯설어진 일본, 그들이 핵에너지를 다루는 방식
  • 서동주
  • 승인 2023.10.03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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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일본 정부의 결정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이 이뤄졌다. 이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여론 동향은 방출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이번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 결정을 한번 바라보고 싶다. 즉, 이번 결정을 패전 이후 ‘전후’라 불리는 시간 동안 일본의 국가가 핵에너지에 대해 견지했던 태도라는 관점에서 보려 한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기시감’과 ‘낮설음’을 떠올렸다.

약 40년 전에 일본 정부는 자국 내의 소위 ‘위험 물질’을 외부로 내보내는 결정을 철회했다. 과정은 지금과 비슷했지만 결말이 달랐다. 지금의 정부는 인접 국가 국민들의 강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실행에 옮겼다. 사진은 체르노빌 폭발사진. 사진=픽사베이
약 40년 전에 일본 정부는 자국 내의 소위 ‘위험 물질’을 외부로 내보내는 결정을 철회했다. 과정은 지금과 비슷했지만 결말이 달랐다. 지금의 정부는 인접 국가 국민들의 강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실행에 옮겼다. 사진은 체르노빌 폭발사진. 사진=픽사베이

예를 들어 ‘기시감’은 체르노빌 원전의 폭발 사고 이후 일본 정부와 시민들이 보여줬던 모습에서 연유한다. 1986년 4월 26일, 당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동북부 유럽까지 확산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그때까지 일본인들이 갖고 있던 ‘평화적’이며 ‘안전한’ 에너지라는 원자력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인들은 유럽에서 수입되는 식품의 방사능 오염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주부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반원전 데모가 일어났다. 결국 여론에 밀려 방사선 오염 식품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여론의 영향으로 북유럽, 터키 등에서 들어오는 수입 식품에 대한 검사 체제를 강화했다. 

외부로부터 닥쳐올지 모르는 오염의 공포에 불안을 느낀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 사회의 모습은 지금 한국 사회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래서 ‘기시감’이 들었던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일본과 한국의 입장이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에는 방사능의 피해를 우려했던 국가(일본)가 이번에는 타국에게 불안을 안겨주는 입장이 돼버렸다.

한편 필자가 ‘낯설음’을 느낀 것은 다음과 같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1979년에 일본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해양에 투기하는 계획을 결정했다가 철회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태평양 섬들 쪽에서 이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80년 8월에 개최된 태평양 수뇌부 회의에서는 일본의 해양 투기 계획 중지를 요구하는 결의가 채택됐다. 일본 정부도 회의에 전문가를 파견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설득에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외국의 강한 반대 의견 앞에서 계획을 단념한다. 약 40년 전에 일본 정부는 자국 내의 소위 ‘위험 물질’을 외부로 내보내는 결정을 철회했다. 과정은 지금과 비슷했지만 결말이 달랐다. 지금의 정부는 인접 국가 국민들의 강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실행에 옮겼다. 현재의 일본 정부는 자국 내의 리스크를 외부화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이 ‘낯설음’의 원인이었다. 필자가 ‘기시감’과 ‘낯설음’으로 표현했지만, 이 두 사건은 전후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어떤 심성에 공통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그 심성이란, 일본은 외부의 위험에 연루되고 싶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내부의 위험을 외부화시키는 일도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최근의 광경은 많이 달라졌다. 내부 리스크를 외부화하지 않는다는 관행은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해방 방출로 깨졌고, 유력 보수정치인들은 미국과의 ‘핵 공유’를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익숙한’ 일본은 이제 과거의 것이 돼 버린 것 같다. 

과거 가토 노리히로라는 평론가는 사죄와 망언을 반복하는 관료의 모습을 두고 일본 정치는 인격분열에 빠져있다고 말한 바 있지만, 최근에는 ‘망언’은 들려오지만 그것을 이유로 누군가가 ‘사퇴’했다는 소식은 듣기 어렵다. 여기서 일본 정치가 ‘우경화’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제 역사문제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일본 정치는 소위 ‘전후의 가치’와 결별을 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걸로 ‘전후’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평화주의를 표방한 ‘전후’의 가치는 정작 일본 정부의 손에 의해 훼손되지만, 동아시아 역내의 점증하는 갈등과 위기는 새로운 ‘전후’의 상상력을 촉구한다.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의해 손상된 ‘전후’를 트랜스 내셔널한 가치로 전환시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사상적 자원으로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나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일본의 영해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떠올리며 ‘전후’의 탈 국가적 갱생을 생각해 본다.

 

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연구분야는 일본근현대문학과 사상이며, 최근에는 냉전기 전후일본의 문화적 상상력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전후의 탈각과 민주주의의 탈주』, 『에너지혁명과 일본인의 생활세계』 등의 공저서가 있고, 『핵과 일본인』(근간 예정), 『전후일본의 사상공간』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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