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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일대일로’ 외치는 중국, 걸프에도 손 뻗쳤다
[글로컬 오디세이] ‘일대일로’ 외치는 중국, 걸프에도 손 뻗쳤다
  • 성일광
  • 승인 2023.05.19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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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 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3월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했다. 중동의 앙숙이던 두 국가가 정상화에 합의한 것도 놀라운데 중재자가 중국이라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미국이 지금까지 풀지 못한 난제를 중국이 외교력과 영향력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는 파격이기도 했다. 가장 큰 승자는 사우디와 화해를 통해 경제난에 숨통을 틔운 이란이고, 그다음 승자는 중국일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빈자리를 이용해 걸프 국가들과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풀지 못한 난제를 중국이 해결했다는 점에서 매우 파격적이다. 사진=위키백과

시아와 순니, 반미와 찬미, 혁명정부와 왕정으로 7년간 대치하던 이란과 사우디는 왜 지금 정상화에 합의했을까? 사우디가 미국과 ‘거리를 둘 결심’을 한 결정적 이유는 2019년 아부 카이크와 쿠라이스의 아람코 정유 시설이 이란의 드론과 순항미사일의 공격을 받은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안전보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적인 이란과의 화해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이란이 중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은 최악의 경제난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란은 중국의 경제 협력이 절실한 만큼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올해 초 달러 대비 이란 리알이 30% 올랐고, 최근 몇 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매년 50% 이상 뛰어올라 서민 경제 상황은 최악이다.

중국과 이란은 2016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으며, 2021년 3월 테헤란에서 향후 25년 동안 경제·안전보장 외 여러 분야에서 연대를 강화하는 내용의 포괄적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이란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유와 가스를 공급받는 대신 4천억 달러(약 452조원)를 25년에 걸쳐 이란의 금융·에너지·항만·철도·5세대 이동통신(5G) 부문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순니와 시아를 대변하는 두 국가의 화해는 역내 화해과정에 변곡점이 될 모양새다. 우선 시리아를 둘러싼 중동의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11년 시리아는 반정부 시위에 나선 자국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 아랍연맹 회원 자격을 잃었다.

UAE는 지난해 3월 아랍국가로는 처음으로 시리아의 독재자 아사드를 초대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둘러싸고 아랍국가 간 견해차가 드러났지만,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이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지난 4월 파이살 메크다드 시리아 외무장관을 자국으로 불러 양국 관계 개선을 타진하고, 5월에 사우디에서 열릴 아랍연맹 회의에 아사드를 초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모든 아랍국가가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아사드의 복귀를 반대하고 있으며, 카타르와 모로코 역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시리아는 ‘가난한 자의 코카인’이라고 불리는 저가 마약 캡타곤의 최대 생산지로 사우디와 UAE에 마약을 공급하는 배후이다. 아사드 가문이 직접 운영하며 마약을 판매해 국가통치자금으로 이용해 왔다. 아사드는 걸프국가에 더는 캡타곤을 밀매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아랍연맹 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역내 다른 국가의 화해 움직임도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UAE와 터키는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에서 대리전으로 충돌했지만 10여 년간의 냉각기를 접고 관계를 정상화했다. 지난해 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UAE를 방문하면서 관계 개선에 속도를 냈다. 

터키와 이집트도 다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에서 서로 다른 진영을 지지하면서 소원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데탕트 물결에 동참했다. 터키와 사우디도 2018년 사우디 출신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라는 대형 악재를 뒤로하고 관계 개선에 나섰다.

바레인과 카타르는 2017년 사우디와 UAE 등이 카타르에 제재를 가하면서 관계가 악화됐다가 2021년 초 제재 해제 이후 외교 관계 복원을 위해 접촉을 시작했다. 사우디와 이란이 화해하자 바레인과 카타르는 대사 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바레인과 이란도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제 역내에 남은 난제는 이란 핵문제다. 이 문제가 꼬이면 말 그대로 핵폭탄급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은 역내 해상은 물론 미군이 주둔하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서로 충돌할 수 있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데탕트 훈풍에 자신감에 찬 이란이 과감한 군사 작전을 계획하거나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부추겨 이스라엘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위안화 결제확대와 이란-사우디 합의를 끌어낸 것은 역내 중국의 위상을 보여준다. 싱크탱크 아시아 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국가와 아시아 국가의 교역량은 2030년까지 60% 증가해 5천780억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걸프국가와 중국의 밀착, 한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대중동 진출 확대는 걸프국가의 아시아화를 의미한다. 중동을 미국과 유럽의 눈이 아니라 중국과 아시아의 눈으로 볼 필요가 생겼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 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중동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 이스라엘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 (Palgrave MacMillan, 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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