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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새만금 잼버리에서 돋보인 아랍의 스카우트
[글로컬 오디세이] 새만금 잼버리에서 돋보인 아랍의 스카우트
  • 정진한
  • 승인 2023.09.1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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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새만금 잼버리의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뜨겁다. 파행을 거듭한 끝에 각국 대원의 중도 이탈이 속출하던 대회 중반에 사우디는 다른 2개국과 함께 캠프 잔류를 선언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다소 생뚱맞았지만 다른 이들은 역경을 인내하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라는 스카우트 정신의 모범적 실천 사례라며 치하했다.

복지가 잘 갖춰진 석유 부국이라는 대중적 인식에 힘입어 사우디에서 온 110명의 단원에 대한 시선에는 고생을 덜 하고 큰 부잣집 도련님 같은 선입견이 담겨 있기도 했다.

하지만, 늪지라는 자국과 정반대의 자연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는 이런 편견을 떨궈냈다. 각국의 잇단 중도 이탈 와중에 잔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하마드 알라야 사우디 대표단장은 폭염 등의 혹독한 환경은 세계 어디서나 발생하고 작금의 잼버리 행사는 과거에 비해 훨씬 좋은 환경이기에 사우디 단원은 캠프 잔류는 물론 2주간 더 한국에 체류할 예정이라고 단언했다.

매년 수백만명의 무슬림 순례객들의 성지순례기간 동안 사우디 스카우트 대원들은 길 안내, 노약자 이동 지원, 시설이용 안내와 같은 활동에 대대적으로 투입된다. 사진=사우디 스카우트 연맹
매년 수백만명의 무슬림 순례객들의 성지순례기간 동안 사우디 스카우트 대원들은 길 안내, 노약자 이동 지원, 시설이용 안내와 같은 활동에 대대적으로 투입된다. 사진=사우디 스카우트 연맹

사실 이러한 단원들의 인내와 적응력에는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스카우트의 전통과 경험이 힘을 발휘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랍권의 스카우트는 규모가 매우 크고 활동 역시 한국보다 더 활발한 측면이 있다. 올해 기준 무려 4천300만 명에 육박하는 남녀 단원을 거느린 세계스카우트연맹은 174개 국가별 지부를 총 6개 지역구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16개국의 지부를 거느린 아랍지역연맹이다. 가입 지부도 소수고 인구도 적은 아랍의 16개국이 독립적인 지역연맹을 거느리게 된 원인에는 활발한 참여 활동과 강력한 조직력이 있다. 이들 16개 국가의 인구는 세계스카우트 연맹에 가입한 17개국 인구 총합의 0.5%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아랍지역연맹 소속 스카우트 대원수는 2018년에 이미 5백만 명을 초과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구수 대비 스무 배 이상의 단원 가입률은 아랍 국가들의 적극적인 스카우트 단원 양성과 활동 지원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수치다. 아랍은 세계 잼버리를 유치한 적이 없지만, 그들끼리는 격년마다 잼버리 대회를 개최해 단결을 다져왔다. 1954년 시리아를 필두로 아랍 잼버리는 벌써 32차례나 아랍 각지
에서 개최됐다. 또 이들은 매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잼버리, 조티-조타(JOTI-JOTA, Jamboree On The Internet - Jamboree On The Air)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오는 10월 대회를 앞두고도 아랍 언론은 각국의 남녀 대원의 JOTI-JOTA 준비 양상을 보도 중이다.

반면 한국 언론의 온라인 잼버리 관련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아랍 대원들은 잼버리와 같이 대원들 간의 축제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함께 참여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사우디 대원들은 1961년 이후 매년 수백만의 무슬림 순례객들이 수 주 간 메카와 메디나 일대의 성지를 순례하는 핫즈(Hajj) 기간 동안 길 안내, 노약자 이동 지원, 시설 이용 안내와 같은 활동에 대대적으로 투입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순례 규모가 위축되기 전인 2018년 메카와 메디나에는 각각 3천 명과 1천500명의 남녀 단원이 활동했다.

이 숫자는 순례객이 줄어든 코로나 유행기와 회복기에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사우디가 순례 수용 규모를 코로나 이전의 곱절로 늘릴 준비에 착수한 이상 앞으로 핫즈 봉사 단원들의 참여 역시 곧 전성기를 훌쩍 넘어설 것이다.

즉 이들 수천 명의 단원들은 정찰대라는 이름 그대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 현장의 최전선에서 봉사 활동을 펼친다. 매년 절기가 바뀌는 이 이슬람의 성지순례 시즌이 올해처럼 한여름에 돌아오면 메카와 메디나의 한낮 기온은 무려 섭씨 오십 도를 오르내린다.

황량한 사막의 산을 오르고 광야에서 야영하는 이 일정에서 길 잃은 외국인들을 베이스로 모셔오고 장애인과 노인들의 휠체어를 밀면서 단련된 이들의 적응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또 수백 개국 출신의 남녀노소들과 부대끼며 교류하는 경험을 쌓는 이들이기에 세계적인 축제에서 적응력이 강하다. 

이에 반해, 한국의 스카우트 단원들이 내한객들을 상대로 봉사활동에 이처럼 대규모로 투입된 전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한국은 사우디의 성지순례만큼 대규모의 연례 국제행사는 없지만 여느 나라 못지않게 다양한 국제행사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 한국 단원들의 참여와 활약의 기회가 확대된다면 개인 단원들의 자긍심 고취와 경험의 확대는 물론 국가 청소년 자원의 세계시민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이미 잼버리는 지나갔지만, 한국 스카우트 단원들이 국제행사를 통해 활동할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특히 엑스포 유치에 성공해서 흔치 않은 초대형 이벤트에서 봉사하는 기회를 통해 한국의 스카우트 단원들이 보다 세계화된 동량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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