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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망국’의 기억이 중화 민족주의 키웠다
‘치욕·망국’의 기억이 중화 민족주의 키웠다
  • 최승우
  • 승인 2023.09.12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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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⑪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과)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10을 맞이해 「오늘의 세계」를 주제로 총 54회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의 세계’는 국제질서,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기술, 철학에 대해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상호 연결성을 통해 학문적 담론을 형성할 예정이다. 지난 7월 29일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과)가 「중화 민족주의와 동아시아」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2강은 곽준혁 중국 중산대교수(철학과)의 「유교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중국공산당이 중화민족 부흥론에서 활용하는 치욕 서사는 오랫동안 중국인에게 익숙한 무의식적 수준의 문화적 유전자이다. 그런 문화적 유전자 속에서 치욕의 극복과 정상의 회복은 이상적 인격과 군주에게 필요한 당위적 요소이자, 인간 삶의 기본 원리이다.

한 국가나 민족이 다른 국가나 민족으로부터 겪은 치욕스러운 역사 경험은 민족주의 성장에 좋은 토양이다. 그 치욕이 식민 경험이나 전쟁 등과 관련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근대 시기 제국주의에 반(半)식민 경험이 있는 중국의 경우 치욕적 역사 경험은 그 자체로 민족주의의 좋은 토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런 치욕 역사 경험이 민족주의 토양으로 작용하는 데 조금 더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있다. 자신을 가장 수준 높은 문화를 지닌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중화주의 문화 전통, 여기서 연유하는 중국판 선민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높은 민족적 자존감, 문화적 유전자로서 중국인의 체면 의식, 그리고 그러한 자존감과 체면이 손상당했을 때 느끼는 치욕감과 그 치욕을 씻고 기어이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갚음 의식 등, 일련의 중국 문화의 핵심 요소가 결합되면서 치욕적 역사 경험이 중국의 독특한 민족주의로 발현된다.

21세기 중국 부상 시대에 등장한 중화 민족주의가 바로 그러한 중국 민족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 아편전쟁(1840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1949년)까지 근 100년의 시기를 치욕의 한 세기, 치욕의 백 년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서구라는 양이(洋夷)와 소일본(小日本)에 중국이 침탈당하면서, 망국멸종(亡國滅種)의 위기에 직면했던 때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직면한 위기가 사상 유례없는 치명적 위기였다.

당시 중국 지식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3천 년 만의 대변국(大變局)은 중화민족의 위기이자, 중화 문명의 위기로 여겨졌다. 이민족인 몽골족이나 만주족에 정복당한 시기에도 중화 문명의 연속성은 이어졌고, 정복 이민족이 궁극적으로는 중화 문명에 동화됐다. 그런데 근대 위기 때는 사정이 달랐다. 전혀 이질적인 서구 근대 문명의 공세 앞에서 중화 문명은 연속성마저 단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위기는 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중국이 이런 위기 시기를 치욕의 시기라고 부르는 것은 국토를 유린당했다는 차원을 넘어, 세계 중심 국가라는 문명적 자부심이 무너지는 데서 오는 중화 문명적 치욕감이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중국이 부상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사명으로 등장하면서 중국 근대 100년 동안의 치욕 기억에 관한 서사가 부상했다.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말이 중국공산당 지도자 연설문과 보고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장쩌민 시대였다. 

장쩌민 집권 시기인 1997년 제15차 당 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장쩌민은 같은 해 하버드대 강연에서 이 말을 사용했고, 2001년 창당 80주년 기념식 등에서 자주 사용했다. 2002년 제16차 당 대회에 장쩌민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보고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면서 9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후진타오 시대에도 계속 이 구절을 사용했다. 

중국공산당이 중화민족 부흥론에서 활용하는 치욕 서사는 오랫동안 중국인에게 하나의 무의식적 수준의 문화적 유전자이다. 사마천 식의 치욕 극복 서사 패턴이든, 무협 소설과 영화 속 치욕과 복수 서사 패턴이든, 중국인의 무의식과 문화적 유전자 속에서 치욕의 극복과 정상의 회복은 이상적 인격과 군주에게 필요한 당위적 요소이자, 인간 삶의 기본 원리이다.

중국공산당이 치욕 서사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거두는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치욕-복원(회복)이라는 중국 문화 속 원형 서사를 활용해, 중화민족의 치욕과 부활을 마치 인생의 과정처럼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내고 있고, 중국인이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서사를 이상적 인격과 삶의 한 과정처럼 수용하는 가운데 중화민족 부흥 비전을 제시하면서 강국을 추구하는 중국공산당을 이상적 인격이자 중국 문화의 원형으로 정당화, 인격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과)는 “중국 부상과 함께 대두한 중화 민족주의는 중국공산당과 중국인의 새로운 정체성을 재구축하고, 중화성 회복을 도모한다”라며 “그것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라고 여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과)는 “중국 부상과 함께 대두한 중화 민족주의는 중국공산당과 중국인의 새로운 정체성을 재구축하고, 중화성 회복을 도모한다”라며 “그것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라고 여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중국몽 시대 중화 민족주의의 치욕 기억 서사는 민족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원래 상태를 회복하려는 자기 치유 기제 차원인가? 아니면 치유의 궁극적 실현 과정으로서 치욕을 가한 타자에 대한 복수로 열려 있는가? 중국이 중화민족 부흥을 이루는 것이 치욕을 발분 노력으로 승화시켜 끝내 성취를 이루는 사마천식의 자기 보상의 서사 패턴인가? 아니면 결국 복수를 통해 치욕을 안긴 상대를 제압해 치욕을 씻는 타자 보상의 무협 서사 패턴인가? 이를 두고 중국과 중국 밖, 특히 중국에 근대 치욕을 안긴 제국주의 역사를 지닌 국가들 사이에서 그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여기에는 중국과 서구 사이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된 오해와 편견은 물론이고, 미래 세계 질서를 향한 힘겨루기까지 작용하면서 시각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 부상과 함께 대두한 중화 민족주의는 중국공산당과 중국인의 새로운 정체성을 재구축하고, 중화성 회복을 도모한다. 그것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중화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치욕의 한 시대를 청산하고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민족주의적 욕망이다. 

그런데 이 욕망은 단순히 과거를 회복하고 민족적 트라우마가 생기기 이전의 온전한 중화적 자아를 회복하려는 수세적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과거로 회귀하는 방식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공세적 방식이기도 하다. 즉, 과거 중화적 자아를 회복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새로운 중화적 자아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중화 민족주의의 꿈은 중화성을 토대로 중국 근대 민족적 트라우마를 안긴 서구 근대를 초극해 새로운 주체가 되려는 미래로 열려 있다.

이러한 중화 민족주의 시대 중국과 가장 인접해 있고, 오랫동안 문화와 역사를 교류하기도 하고 서로 갈등하기도 한 경험을 지닌 동아시아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어떻게 중화 민족주의 시대 중국에 개입해야 하는가? 사실 21세기에 중국이 추구하는 반서구 민족주의 형태의 서구 초극 모델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서구 초극을 시도했다. 다만 중국이 중화인을 기반으로 한 대중화공동체를 구축하려는 데 비해 일본은 동아시아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려 하였다. 서구제국주의의 침략과 압박 속에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그 위협 속에서 근대가 진행된 동아시아에서, 동아시아 특정 국가의 힘이 강해지는 시기와 서구가 기울어가는 시기가 맞물릴 때면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는 반서구적 민족주의의 한 유형인 것이다.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내세우는 동양의 서구 초극론에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동아시아인들이 동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서구 선봉에 선 일본을 동아시아의 길의 상징이자 동아시아의 새로운 희망으로 여긴 것이다.

이 글에서는 중국이 부상한 이후 중국에 대두하는 민족주의를 중화 민족주의로 규정한 가운데 그 구성 요소와 특징을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했다. 하나는 중국 근대 치욕 기억이 중화민족의 부흥 서사와 더불어 부상한다는 것에 주목하고, 이것이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정당성을 구축하고, 중화인이라는 정체성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분석했다.

또한 중화 민족주의의 두 번째 구성 요소로서 중국적인 것, 즉 중화성 추구를 들고서, 중국이 중화성을 중국 현실과 문명의 특수성이라는 차원에서 강조하는 논리를 살폈다.

이는 중국 문제를 동아시아 지평에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자, 중국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동아시아 국가의 내부 개혁과 맞물리는 길을 모색하자는 제안이다. 동아시아는 서구의 충격 속에서 근대를 시작했다.

이제 근대의 황혼 시기에 동아시아는 중국의 충격 속에서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 인류 문명을 쇄신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적극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동아시아 자국 현실을 혁신하는 일과 하나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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