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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0] 눈치에 대한 오해
[한민의 문화등반 40] 눈치에 대한 오해
  • 한민
  • 승인 2022.07.1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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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40

 

한민 문화심리학자

눈치는 한국의 독특한 행위양식으로 꼽힌다. 한국살이를 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Nunchi라는 책이 유행할 정도다. 눈치란 말하지 않고도 상대방의 의중을 살펴 ‘알아서’ 행동하게끔 하는 문화적 행위양식으로, 일종의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눈치와 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은 관계주의 문화권에서는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일본에도 눈치와 유사한, 이른바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은 이 눈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표현을 제한하는 집단주의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눈치를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자기 주관 없이 다른 이들에게 휘둘리는 것이라 거침없이 진단한다. 독립적 주체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눈치 따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던 2000년대 초반, 외국에 나가니 눈치 볼 일이 없어 좋다는 후기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지금도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한국은 너도나도 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나라이고 외국(대개 서구 선진국)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저마다의 인생을 꽃피우는 곳이라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필자는 ‘외국에서 눈치 안 보니 좋다’는 말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다. 눈치를 보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신경 쓰는지 안쓰는지는 왜 신경을 쓰나. 정작 외국에 나가서 봐야 할 것들은 보지 않고 누가 나한테 눈치를 주나 안 주나를 열심히 눈치보고 있었을 그이들의 심리과정에 실소를 감출 수 없다.

눈치는 문화적 행위양식이다. 문화 구성원들 사이에 내재화된 행위양식이라는 뜻이다. 외국에서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지 않음을 인식하고서야 자유로울 수 있는 그들의 행위는 이미 한국 문화의 산물이다. 눈치가 나쁘다는 인식 역시 눈치 문화에서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화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그것이 좋게 작용하는 맥락과 나쁘게 작용하는 맥락이 있을 뿐이다. 한 문화가 일관되게 부정적이기만 하다는 생각, 다른 문화가 일관되게 좋기만 할 거라는 생각 ‘문화적 행위양식’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눈치에 대한 부정적인 맥락과 표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눈치는 한국문화에서 의사소통의 도구로 기능한지 오래다.

눈치는 의사소통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줄 뿐만 아니라 구구절절한 언어적 표현 없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해 준다. 구체적인 언어적 설명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가까운 관계에서의 의사소통이나 어느 정도의 공유된 이해를 상정한 높은 수준의 소통에 있어서 언어는 때로 방해가 된다. 불가의 염화미소(拈華微笑), 도가의 언어도단(言語道斷) 등 한국이 예로부터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높이 평가해 왔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읽는다는 ‘Nunchi’도 눈치의 의사소통 기능에 대한 내용이다. 한국에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이 존재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한국살이의 기본 지침서이지 눈치는 한국인들을 불행으로 이끌며 한국사회의 발전과 한국인들의 행복을 위해 없애야 할 문화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눈치를 뺄 수는 없다.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고 어떤 문화를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다. 설령 없앤다고 해도 그 문화가 기능하던 측면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눈치의 경우에는, 눈치가 무엇이고, 왜 눈치를 보며, 눈치를 볼 때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내 삶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고, 다른 이들과 사회에 해악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은 통제하고 제어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눈치 때문에 못한다, 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눈치 때문에 해야 한다, 나는 더 잘 살 수 있는데 눈치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는 주장은 나의 삶을 사회와 문화에 돌리는 태도로 독립적 개인의 주체적 자세라 하기 어렵다. 눈치가 자존감 낮은 이들의 주관 없는 행동이라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리라.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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