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7-01 17:55 (금)
[한민의 문화등반 35]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한민의 문화등반 35]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 한민
  • 승인 2022.05.06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민의 문화등반 35

 

한민 문화심리학자

갑질이란 갑(甲)+질의 합성어로 양자의 사회적 지위에서 기인한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단순히 계약의 양 당사자를 일컫는 말인 갑(甲)과 을(乙)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는 것은 거기에 한국적인 무엇이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수많은 을(乙)들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분야와 계층을 막론한 갑질논란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갑질 자체가 한국인들의 문화적 행위양식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갈등해결 방식의 문화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지배’와 ‘양보’라는 갈등해결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지배란 상대를 억누르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것, 양보는 자신의 요구를 접고 상대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해결 방식에는 이 외에도 갈등 자체를 피해버리는 ‘회피’와 양쪽의 요구를 맞춰나가는 ‘타협’ 등이 더 있다.

집단주의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한국인들이 ‘지배’와 ‘양보’를 많이 사용한다는 결과는 다소 의외인 면이 있는데, 개인의 욕구와 지향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회피나 지배가, 집단 내의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양보’와 ‘타협’ 등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지배’ 점수는 개인주의 문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미국보다도 높고, ‘양보’는 집단주의 문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일본보다 높았는데, 이러한 결과는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의 틀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으로, 보다 한국적인 문화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상대에게는 ‘지배’를, 자신보다 지위가 높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게는 ‘양보’를... 어딘가 익숙한 이 문제해결 방식은 갑질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대방보다 우위에서 자기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지배와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는 양보는 서로 이질적인 듯 보이지만 ‘상대방의 지위’가 이 둘 사이를 조절한다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나보다 지위가 높으면 양보를 하고 상대방이 나보다 낮으면 지배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권위주의적’ 행위양식이다.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은 권위가 시작되는, 상대방의 지위에 관심을 갖고 그 지위로 상대방과 나의 위치가 파악되는 순간 상대방에게 하게 될 행동의 종류와 범위를 결정한다. 이렇게 보면 갑들의 갑질만이 아니라 을(乙)들이 병(丙)들에게 하는 을질이나 병(丙)들이 정(丁)들에게 하는 병질?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갑질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래도 된다’는 생각,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모든 문화적 행위가 그렇듯이. 특히 한국에서 갑질은 ‘그 사람의 지위가 곧 그 사람’이라는 생각과 관련이 깊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오랜 관료제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생각이다. 그 사람이 그 지위에 있다는 것은 그만한 인품과 능력,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위가 높은 사람은 그에 걸맞은 권위를 갖게 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지위가 낮은 사람 역시 그럴 만하니까 그렇다는 생각으로 윗사람의 권위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갑질은 권위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유형화된 한국적 행위양식이다. 이러한 갑질의 본질은 한국사회에서 갑질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갑질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법적인 제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든 권위주의적 행위양식이 곧 갑질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게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는 그런 사고방식 말이다. 내가 당한 갑질에만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는 갑질을 할 수 있다(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상대의 지위와 관계없이 상호존중에 기초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갑질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화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믿음의 체계다. 지위가 높은 나는 이렇게 행동할 권리가 있고 지위가 낮은 너는 내 행동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의 목표는 누군가보다 높은 지위에 서는 것뿐이다. 이런 문화에서 갑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