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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22] 일본의 스승 vs 한국의 스승
[한민의 문화등반 22] 일본의 스승 vs 한국의 스승
  • 한민
  • 승인 2021.10.2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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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22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분야 중 하나가 ‘스승’에 대한 생각이다. 일본의 스승과 제자 관계는 ‘이에모토(家元)’ 제도에 잘 드러나 있다. 이에모토는 일본의 전통적 전승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술이나 기예 등을 가르치고 이어받아 운영하는 다양한 규칙이 포함된 일본의 전통적 제도로서 예술과 기예 분야 외에도 종교, 사업, 학교, 공장, 사무실 등 일본 사회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매우 일본적인 문화다.

인류학자 프랜시스 슈가 정리하고 있는 이에모토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이에모토(최고 스승)의 절대적 권위다. 이에모토는 조직의 비법을 보호하고 조직의 실력 수준을 유지, 관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제자들의 세력을 조정하고 비위를 행한 이들을 파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자들은 이에모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받는데, 특히 제자에 의한 예술, 기예 내용의 해석이나 수정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제자는 스승에 대한 헌신적 봉사의 의무를 지니며 스승의 말을 거역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스승을 바꾸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프랜시스 슈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로 이에모토 제도의 스승 제자 관계를 요약한다. 

여기까지 보면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국인들도 스승님을 꽤나 존경하던 사람들인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임금과 스승, 아버지는 동격이었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 않은가. 그러나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사정이 많이 다르다. 

한국에는 왕실이나 관(官)에 소속된 공방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일본의 이에모토처럼 제도화된 전승체계가 없었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는 꽤 옛날부터 발견된다. 바로 가야의 악성(樂聖) 우륵과 그 제자들 이야기다.      

우륵은 가야사람으로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의 12지역을 상징하는 12곡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야가 어려워지자 우륵은 신라로 망명하는데(522년),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진흥왕은 우륵의 음악에 감명을 받고 계고, 법지, 만덕이라는 3명의 제자를 우륵에게 보내 음악을 배우게 한다. 어느 정도 음악을 익힌 제자들은 우륵의 음악을 번잡하고 음란하다며 12곡을 5곡으로 줄여버리고 마는데… 처음에 우륵은 화를 냈지만 제자들의 곡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즐거우나 절제가 있고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하다”며 탄식하였다. 자신을 뛰어넘은 제자들을 인정한 것이다.

음악에 한정된 사례들이긴 하지만 이러한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는 한국 문화의 이곳저곳에서 종종 발견된다. 요약하자면 제자는 스승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승 또한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인데 그 결과로 연주자들의 자유로운 표현은 한국음악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는 천 년 전의 연주법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반면, 한국은 같은 곡이지만 시대에 따라서 그 연주법의 변화가 눈에 띈다고 한다. 국악학자 이혜구는 이러한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자유분방하고 속되게 표현해서 제멋대로 한다는 것, 자기를 숨기지 않고 기교 없이 자기를 그대로 내놓는 것이 한국음악의 특색이 아닐까 그렇게 봅니다. 한국인은 선생이 가르친 대로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은 것을 둘로 만들자고 해도 모양을 똑같이 만들지 않는 것이 한국사람의 기질인 듯이 보입니다…

일본적인 전승과 한국적인 전승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엄격한 전승체계의 결과로 일본은 세계에서 전통이 가장 잘 지켜져 오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을 방문하는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은 변치 않는 일본의 예스러움에 탄복한다. 일이년이 멀다하고 스카이라인이 바뀌는 한국의 풍경과는 분명 다른 일본만의 장점일 것이다. 반면, 한국의 전승은 소위 콜라보와 융합에 적합한 방식이다. 어느 정도 기본이 됐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자기 소리를 내기 바쁘기 때문이다. 남과 조금이라도 구별되려면 남들이 이제껏 하지 않았던 시도들을 하게 된다. 그런 시도들 중에는 깜짝 놀랄 만큼 창의적인 것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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