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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32] 자기객관화의 길
[한민의 문화등반 32] 자기객관화의 길
  • 한민
  • 승인 2022.03.23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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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32

 

한민 문화심리학자

사람에게는 자존의 욕구가 있다. 존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다. 아들러는 이를 우월의 욕구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모든 사람보다 우월할 수 있을 리는 없으므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열등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아들러는 열등감에서 벗어나 우월함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 한 사람의 생활양식(Life style)이 된다고 하였다. 개인의 성격, 집단의 문화에 해당하는 용어다.

우리의 삶은 우월감과 열등감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들로 점철되어 있다. 일단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정신건강에 이롭다. 여기저기 하도 많이 나와 이제는 약간 지겨워진 개념, 자존감의 기능이 그것이다. 적절한 자존감을 갖춘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 자기 할 일도 잘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활하게 유지한다. 물론 이렇게 좋은 기능을 하려면 자존감은 우월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른바 자기객관화가 이루어진 자존감이 필요하다. 자기객관화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나만의 생각, 나만의 입장이 아닌 제3자의 생각, 제3자의 입장에서 나와 나의 행위를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이다.

아이들은 자기애적이다. 제가 제일 잘난 줄 알고 제가 가장 센 줄 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기애는 자기 자신과 어머니가 떨어져 있는 존재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어린아이가 욕구를 느끼면 곧 충족되는 경험-예를 들어 배가 고파 울면 젖이 입 안으로 들어와 배가 불러지는-을 하면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고 믿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기애는 점차 희석되는데 첫째는 자신을 어머니와 분리해서 보게 되고 자신이 사실은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둘째는 다른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서부터다. 이 시기 아이들은 열등감에서 벗어나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공룡과 같은 크고 강한 대상을 선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등감도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보다 못하다는 자각은 상황을 바꿀 동기를 제공한다. 열등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곧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룡이나 로봇 등에서 부모 등 주변의 어른들로 모델을 바꿔 자신들이 우월해질 방법을 찾아내며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한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렇듯 자기객관화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열등감을 동반하지만 열등감에 압도되는 것 역시 올바른 자기객관화라 보기는 어렵다. 비교 대상에 따라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자기상은 위축되고 삶이 우울해진다. 따라서 앞서 말했듯이,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살면서 경험해야 할 우월감과 열등감의 균형을 이루어주는 것이 자기객관화의 능력이다.

이러한 자기객관화의 과정은 집단에도 적용된다. 사람은 개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집단정체성을 동시에 갖기 때문이다. 무조건 우리 집단이 잘났고 대단하고 맞다는 생각은 대단히 객관화가 부족한 자기인식이다. 좋은 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잘못인 줄 모르는 태도는 가히 유아적이라 할 만한 모습이다. 유아는 귀엽기라도 하지. 근처에 이런 사람들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무조건 우리 집단을 깎아내리는 것 역시 제대로 된 자기객관화는 아니다. 내 집단에 대한 일체의 칭찬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며 비판과 비난이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인 줄 아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늘 내가 속한 집단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러신다고 말한다. 잘한다 잘한다만 하면 무슨 발전이 있겠느냐고.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게 당신들의 책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칭찬을 할 때는 칭찬을 하고 자랑스러울 때는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 채찍질을 한 만큼 당근도 줘야 균형이 맞는다. 잘 달리는 데도 채찍질만 당한 말은 성격이 비뚤어지기 마련이다. 부모의 정서적 친밀감 없이 성취만을 강요당한 아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갖게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다른 말로 소시오패스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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