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30 00:10 (토)
[한민의 문화등반 33] 젊게 산다는 것
[한민의 문화등반 33] 젊게 산다는 것
  • 한민
  • 승인 2022.04.04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민의 문화등반 33

 

한민 문화심리학자

오랜만에 대학 때 친구를 만났다. 파릇파릇한 새내기였던 우리는 50세를 바라보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웃을 때 눈이 없어지게 웃던 친구의 눈가에는 주름이 깊게 패였고 드라이기를 해도 늘 제멋대로 곱슬거리던 나의 머리숱도 이제는... 우리는 반가운 인사 너머 서로의 얼굴에서 재빠르게 30년 가까운 세월을 훑었다. 

중년은 억울하다.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는 것이 억울하고 늙어간다는 사실이 억울하다. 「은교」의 노시인 이적요의 한탄처럼, 너희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늙어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중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년의 심리는 젊음과 늙음의 양극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늙음의 끝은 죽음이다. 따라서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슬프고 우울한 일이다. 그럴수록 젊음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다. 그래서 내가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사람들은 어려보이는 것, 젊게 사는 것에 집착한다. 염색을 하고 주름제거 수술을 받고 젊은이처럼 옷을 입으며, 정력에 좋다는 약초며 동물의 씨를 말리거나 비아그라를 찾는다.  

그러나 중년에게 있어 운동을 하고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지 영원히 청년에 머물러 있기 위함이 아니다. 청년에게는 청년의 할 일이 있고 나이든 이에게는 나이든 이의 몫이 있다. 늙어감을 거부하고 젊음에 머무르려는 시도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놓치게 만든다. 

하지만 나이듦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곧 정체와 퇴행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여러 발달심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중년 안의 젊음과 늙음이 조화를 이뤄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발달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40세에서 90세에 이르는 성인 700명을 조사하여 노화를 경험하는 방식을 8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이 중에 성공적인 노년에 도달하는 것은 그녀가 통합적 성격이라 이름 붙인 유형뿐이었다. 

통합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노화 및 사회적 역할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자신의 생활방식을 재구성하며 적극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적 노화의 키워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화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회적 관계에서 위축되어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감수해야 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라 여겨져 왔다. 

심리학자 엘렌 랭거는 사람들이 나이가 드는 과정을 쇠퇴로 느끼는 이유는 “나이가 들면 정신적, 사회적으로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배웠기’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는 50대에는 뭘 하고, 60대에는 뭘 하고… 등의 확고한 기준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20~30년 전 만해도 사람들은 환갑만 넘으면 영정사진을 찍으려 했다. 이제 갈 날만 남았다는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이 죽을 일밖에 없다는 사람의 삶이 어떨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인식 속에 굳어진 연령기준은 나이 들어 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주저하게 하고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즉,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다.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야말로 중년이 유지해야 하는 젊음이다. 

하지만 조급해서는 안 된다. 중년은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청년은 더더욱 아닌 나이다. 중년의 성장은 청년기의 성장처럼 직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갈 때도 있지만 다음 순간에는 뒷걸음질을 치게 될 수도, 때로는 위를 향하지만 다음은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다. 

중년은 그럴 때마다 꺾이고 좌절할 여유가 없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짊어진 부담도 많다. 중년의 유연성은 이러한 인생의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준다. 바다에서 파도는 당연히 있는 것이다. 제때 타 넘고 피할 줄만 알면 뱃사람이 파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