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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다면 장내 미생물 바꿔보라
우울하다면 장내 미생물 바꿔보라
  • 김재호
  • 승인 2023.10.17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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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마이크로바이옴, ‘난치성 치료’ 어디까지 왔나 ④ 우울·불안·스트레스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염증성 장질환, 뇌혈관 등 난치성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그렇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2건에 대해 상용화를 승인하면서 바이오산업에서의 혁신적 장이 열렸다. <교수신문>은 각 질환별 난치성 치료 현황을 국내 최고 전문가로부터 들어 보고 치료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네 번째는 우울·불안에 대해 김세헌 고려대 교수(식품공학과)·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신철민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와 KIST·신흥섭 한국공학대 교수의 최신 연구 현황을 소개한다.

 

장내 미생물이 정신 활동,

나아가 정신 질환과 연관됐다는 사실로부터

새로운 치료 타깃이 제시된다.

장내 미생물을 유익균으로 바꿀 수 있으면

정신 질환의 증상도 나아지거나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여러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인간의 장 내부에는 매우 복잡한 미생물이 모여 살고 있다. 인체에 존재하는 미생물 수는 인간 세포의 수보다 1.3배나 많다. 이들 미생물의 유전자 수는 인간보다 10배 이상 많다. 

불과 수십 년 전에만 하더라도 장내 미생물군은 소화되지 않는 식품 성분을 발효시켜 숙주에게 영양분과 에너지를 공급하고 면역 체계의 균형을 유지시켜 주는 정도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과 뇌 사이에서 감정·사고·행동의 복잡한 정신 작용을 미생물 군집이 매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내 미생물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장에서 멀리 떨어진 뇌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첫째, 자율신경인 미주신경은 뇌에서 장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장신경계와 신호를 주고받는다. 직접 장 상피세포에서 장내 미생물과 상호작용할 수는 없지만 미생물 대사산물의 확산, 장 펩타이드 등과 작용으로 미생물과 소통한다. 둘째, 장내 미생물은 면역계를 통한 장-뇌 상호작용을 매개한다. 미생물 대사산물이 체내에 직접 들어오거나, 장내 수용체를 통한 선천면역계의 작용이 뇌내 면역 세포와 사이토카인 활성화를 통해 뇌의 숙제 세포에 영향을 준다. 셋째, 장내 미생물의 대사산물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을 조절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단쇄 지방산은 장내 미생물로부터 합성돼 전신에 순환되는데 이들 중 부티르산과 프로피온산은 도파민 합성을 조절하는 유전자 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왼쪽부터 신철민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 김세헌 고려대 교수(식품공학과),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고려대 정신건강연구소장)다. 김세헌 교수는 분변 이식을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치료에 적용하고자 한다. 사진=김세헌

 

만성 우울로 인한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 저하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Resilience)은 스트레스에 대한 손상을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이다. 가벼운 우울·불안·불면·집중력 저하와 같은 증상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이 저하될 수 있다. 이는 우울증 등의 만성질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많은 연구진들이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 증진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진행 중이다.

장내 미생물이 정신 활동, 나아가 정신 질환과 연관됐다는 사실로부터 새로운 치료 타깃이 제시된다. 장내 미생물을 유익균으로 바꿀 수 있으면 정신 질환의 증상도 나아지거나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여러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이 예시로는 유익균을 식품처럼 섭취하는 프로바이오틱스, 유익균이 좋아하는 물질을 섭취하여 균이 잘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프리바이오틱스 같은 치료가 있다. 한편 아예 유익균으로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완전히 치환하는 것이 분변이식(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이다.

그러나 아직 이들 치료의 기전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점 때문에 장내 미생물을 타깃으로 하는 치료가 당장 우울증의 표준 치료가 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항우울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치료에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는 전기 경련 치료나 에스케타민 투여 등의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는 시간적·비용적 제약이 크다. 이들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에 대한 장내 미생물 정상화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 고무적이게도 분변 이식에 의한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 사례가 보고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분변 이식을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에 적용하고자 하는 임상시험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아직 괄목할 만한 결과를 보고한 연구팀은 없는 상태로 우리나라 연구자의 시도가 기대된다. 이번 연구 과제를 통해 김세헌·한창수 교수 연구팀은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대한 분변이식 임상시험의 첫 관문 통과를 목표로 한다. 

 

불안 개선용 포스트바이오틱스 소재 개발

고려대는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고, 만성 스트레스 유래 우울증·불안장애를 개선하는 기능성 천연물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유산균의 발효를 통한 우울·불안 장애 개선용 포스트바이오틱스 소재도 개발하고 있다. 연구진은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굴해 새로운 포스트바이오틱스 기반 치료제와 FMT 치료제 후보 물질 탐색 및 효능 검증과 기전 분석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천연물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천연물라이브러리와 ‘장 생체 모사 시스템’을 활용하여, 우울·불안 장애 개선용 천연물 프리바이오틱스 소재 개발을 추진 중에 있다. 한국공학대(한국공대)는 최근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세로토닌 생합성 유전자의 발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새로운 세포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신흥섭 교수팀은 개발된 세포주를 활용해 향후 세로토닌 생산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물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동 연구를 통해 고려대가 축적하고 있는 프로바이오틱스 소재 개발 경험과 우울·불안 장애 치료 효과를 가지는 신규 프로바이오틱스 소재와 함께, KIST가 발굴한 장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천연물 프리바이오틱스 소재를 혼합함으로써, 우울·불안 장애 치료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한국공대의 세로토닌 검출용 세포주 검증 실험과 함께 고려대학교병원의 전임상·임상 연구를 통해 새로운 우울·불안 장애 치료 기술이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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