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8:15 (일)
난치 질환 치료제 ‘마이크로바이옴’…“상용화 멀지 않다”
난치 질환 치료제 ‘마이크로바이옴’…“상용화 멀지 않다”
  • 김재호
  • 승인 2023.09.18 1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FMT’로 맞춤형 치료 시대 여는 고홍 연세대 세브란스분변미생물이식센터장

마이크로바이옴이 가장 풍부한 장내 미생물의 경우 
과민성대장증후군·염증성장질환·대장암 등과 연관돼 있다. 
 뇌-장 연결축을 통해 치매·자폐·뇌혈관 등과도 관련이 있다. 
이외에도 알레르기·천식·아토피 등 여러 질환의 발생과 악화에도 
마이크로바이옴이 관여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 
또는 치료 보조제로로 활용이 가능하다.

고홍 연세대 의대 교수(세브란스분변미생물이식센터장·사진)는 공대 출신 의사다. 연세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의대에서 다시 공부했다. 공학을 전공한 것이 현재 의학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 교수는 학부 시절부터 콜레라 등 병원균에 관심이 많았다. 미생물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생명공학과 졸업 후, 의대에 들어가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 교수는 시스템 생물학 등 생명공학과 교수들과 협업을 많이 한다. “그 당시 미생물을 연구하는 분들이 적어서 ‘빅샷(중요 분야)’이 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희귀 질환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분들이 희귀해서 시간이 흐르면 대가가 되듯이 말이다.” 그만큼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고홍 연세대 의대 교수(세브란스분변미생물이식센터장)는 연세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의대에서 학·석·박사를 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휴먼마이크로바이옴 상용화제품 기술개발 사업’(2022∼2025) 총괄 책임을 맡고 있다. 사진=김재호

“장 내부가 극혐기(極嫌氣)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은 혐기성 미생물이다.” 혐기는 공기(산소)를 꺼린다는 뜻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대해 고 교수는 “예전에도 마이크로바이옴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종류의 마이크로바이옴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라며 “분석 기술의 발달과 종류·기능·대사산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옴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치료제로서의 개발에 대한 연구가 최근 3년 사이에 매우 활발하게 국내외에서 진행됐다. 미국 FDA에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기반으로 하는 치료제가 최근 2건 승인됐다. 아직 한국은 많은 질병을 대상으로 치료 후보물질 발굴 단계에 있다.”

그런데 흔히 마이크로바이옴 하면 유산균을 떠올린다.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유산균과 마이크로바이옴은 균을 이용해 장내 환경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다. 유산균의 경우 유익하다고 알려져있는 미생물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고 마이크로바이옴의 경우 건강한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하는 것이다.” 고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건강한 사람의 균총 환경을 넣어주는 것으로 유산균보다 좀 더 확장되고 변형된 개념”이라며 “유산균의 경우 건강 보조제로 주로 건강한 사람이 복용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만 마이크로바이옴은 여러 질병의 상황에서 치료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민관학병 합작으로 난치 질환 새 치료 열기

고 교수는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국책사업 PI로서 ‘휴먼마이크로바이옴 상용화 제품 기술개발 사업’(2022∼2025) 총괄 책임을 맡고 있다. 이 사업은 △궤양성대장염 △비알콜성지방간질환 △알레르기천식 △우울·불안에 대해 장내 미생물 이식(FMT)을 활용해 어떤 게 효과가 있는지 찾아서 1차 컨소시엄(다양한 미생물의 연합) 솔루션을 만들고, 이 중에 어떤 게 진짜 핵심 물질인지 찾아내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사업의 핵심 목표와 가치는 무엇일까.

“휴먼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경우,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연구다. 한 회사에서 감당하기엔 어려운 프로젝트이며 국책과제를 통해 여러 연구실·회사·병원이 모여 서로 강점을 살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난치 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면 국가적 이익과 환자의 치료에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고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국책사업 ‘휴먼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난치성 치료제 기술개발’(2023∼2025)에도 참여하고 있다. △간이식 후의 효과적인 면역억제(효과적인 면역억제를 위한 장내 미생물 개발) △난치성요로감염 △한선염(자가면역성 질환으로 중증의 여드름 같은 피부 질환) △뇌혈관질환이 그 대상이다. 지난해 5월 유명 여배우 강수연 씨가 뇌동맥류 파열로 사망했고, 7월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뇌혈관질환을 조금이라도 억제해보자는 취지에서 치료제 기술 개발에 나섰다. 

휴먼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장내 미생물 이식은 과연 인류의 난치성 질환에 어떤 도움을 줄까. 이미지=픽사베이

 

치료제·치료균주 찾고 승인 위한 검증 거쳐야

‘휴먼마이크로바이옴 상용화제품 기술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이유는 분석비용 때문이다. “어떤 균이 있는지, 그 균의 기능은 뭔지, 균이 만들어내는 대사체는 무엇인지, 그 대사체의 기능은 무엇인지, 균과 균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것은 뭐가 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고 교수는 “원래는 장내 미생물 중에 치료효과가 있는 미생물이거나, 치료효과가 있는 미생물이 만들어낸 물질 등이 치료제가 될 것”이라며 “장내 미생물에서 그런 치료제나 치료균주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진짜 그 치료를 하는 것이라고 자타공인 승인받을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문제는 임상이다. 환자들은 당장 치료제가 필요하다. “과학에 기반한 정교한 치료제가 필요한데, 시간이 꽤 걸린다. 다만, 특정 미생물과 환자 간의 관계는 분명히 밝혀졌으니, 이 지점에서라도 당장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 예전에는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환자에게 그대로 줬다. 그러나 이제는 효과 있는 환자와 효과 없는 환자에 대한 통계 분석을 통해 효과 있는 환자에게 영향을 주는 균주를 선별할 수 있게 됐다. 효과 있는 균주로 치료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다. 이 첫 단계를 미국 FDA에서 승인했다. 그다음 단계는 더욱 정교하게 각 질환마다 장내 미생물 중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미생물을 이식하는 것이다. 

 

뇌혈관, 어지러움·편두통에도 영향

마이크로바이옴이 몰고 올 혁명적 변화는 무엇일까. “마이크로바이옴이 가장 풍부한 장내 미생물의 경우 과민성대장증후군·염증성장질환·대장암 등과 연관돼 있다. 더 나아가 뇌-장 연결축(brain-gut axis)을 통해 뇌혈관, 치매·자폐, 어지러움·편두통 등과도 관련이 있다. 장-간 연결축(gut-liver axis)을 통해 간질환에도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알레르기·천식·아토피 등 여러 질환의 발생과 악화에도 마이크로바이옴이 관여하고 있다.” 특히 약물 저항성이 있는 경우 FMT로 약물의 반응성을 높일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 또는 치료 보조제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관련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상용화를 위한 정부 규제 등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제대로 된 규제가 존재하지 않아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평가받고 제품화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마이크로바이옴 활용 의약품인 ‘생균 치료제’를 생물의약품에 추가하고 새로 정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의 제품화를 지원하고 국제적 조화를 위해 허가와 심사 체계도 정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분야로 인정돼 평가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DNA 시퀀싱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DNA 시퀀싱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

그동안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개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드웨어 차원에서 대표적인 게 바로 ‘DNA 시퀀싱 기술’이다. 16S rRNA(원핵생물 리보솜의 30S 소단위체를 구성하고 있는 RNA) 유전자를 PCR 증폭해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으로 읽어내는 기본적인 방식에서 추가로 전체 메타유전체를 읽어내는 샷건 해독방식까지 점차 그 기술이 발전해 오고 있다.” 아울러, 미생물을 샘플링하고 처리하는 장비와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향상됐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맞춤형 치료와 최적화의 길이 열렸다. “정밀의료에 대한 관심이 커져 환자 개별 치료에 대해 미생물 프로필에 따라 치료를 최적화해 가려 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와 AI 출현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의 방대한 데이터를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됐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국에서 이에 대한 윤리와 안전 규제 등이 생기고 있는 것도 중요한 발전이다.”

최근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는 비용이 저렴해졌다. 이 때문에 자신의 장내 미생물 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다. “겉으로 느끼기에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피와 분변 검사 등을 해보면 10명 중 9명이 탈락한다. 장내 미생물까지 건강한 구성을 갖고 있어야 진짜 건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 교수는 FMT가 자폐에 효과적이라는 보도가 된 후, 자폐아 부모가 이식해달라고 많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심지어 하소연하는 부모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연구와 시술은 생명윤리위원회(IRB)의 심의를 따라야 하고, 준비도 부족했을 때였다. 그래서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치료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