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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하마스로 촉발된 이스라엘-이란의 대리전
[글로컬 오디세이] 하마스로 촉발된 이스라엘-이란의 대리전
  • 성일광
  • 승인 2023.11.08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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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거의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 지구 진입으로 중동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공격 개시 1주일만에 1천300여 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재난을 당한 이스라엘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하마스는 육해공 3차원 침투를 감행했다. 

고속정과 패러글라이더, 행글라이더와 드론까지 이용하는 치밀한 작전으로 이스라엘의 방어망을 뚫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스마트 철책은 하마스의 폭탄과 불도저에 무너졌고 감시탑은 드론이 투하한 폭탄에 망가졌다. 로켓 공격과 비재래식 침투 전술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전쟁 방식이었다.

이스라엘 정보부는 하마스의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인지했지만 기습 공격할 의도를 간파하진 못했다. 주도면밀한 하마스의 작전 계획과 스스로의 군사적 우위와 첨단 기술을 믿은 이스라엘의 방심이 겹치면서 이스라엘은 치명타를 입었다. 

10월 11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의료진이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가자시티의 알 시파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10월 11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의료진이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가자시티의 알 시파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하마스의 아랍어 뜻은 ‘이슬람 저항운동’이다. 대 이스라엘 무장저항을 통해 자신을 다른 팔레스타인 정파와 차별화하는 것이다. 무장투쟁은 하마스의 존재 이유인 만큼 이스라엘을 급습한 것이다. 하마스의 민간인 살해도 처음이 아니다. 

하마스는 1993년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합의한 ‘오슬로 협정’ 이행을 방해하기 위해 수십 차례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PLO의 외교적 해법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마스는 이 시점에서 전쟁을 개시했을까? 하마스에 불리해진 역내 정세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와 수단과 관계 정상화에 나섰고 최근 추가로 사우디와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는 역내 이란의 입지를 어렵게 한다. 만약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다면 일부 다른 아랍 국가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어 이란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할 가능성도 점쳐지곤 했다. 

역내 헤게모니를 둘러싼 이란,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란이 자신에게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카드로 하마스를 이용했을 수 있다. 이란이 하마스를 오랜 기간 지원하고 지지해온 이유는 바로 이런 효용성 때문이다. 설사 이란이 하마스의 공격 배후가 아니더라도 하마스는 이심전심으로 이란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주려고 기습공격을 선택했을 수 있다. 

지난 19일, 이란의 또 다른 대리 조직인 예멘 반군은 드론과 순항미사일을 이스라엘 최남단 도시 에일랏으로 겨냥해 발사했지만 미군함의 요격으로 격추됐다. 후티 출신 총리는 자국 TV에 나와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한다면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 선박을 타격하겠다고 선언했다.

1982년 이란이 레바논의 시아파 주민들을 결집하고 이슬람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세운 헤즈볼라도 대 이스라엘 무력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미 2006년 이스라엘과 34일간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이스라엘을 이겼다고 자부하는 조직이다. 이번 전쟁 이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까지 헤즈볼라 대원 50여 명이 사망하고 이스라엘 측 사상자도 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피하는 대신 하마스와 연대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거스르고 있다. 

결국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알아끄사 홍수 작전’은 이란의 대리 조직이 참전하면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리 조직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결국 이번 전쟁은 맞닿은 국경이 없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첫 번째 전쟁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란은 수년간 이스라엘의 자국 내 핵시설 사보타지와 과거 핵과학자 암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해 왔지만 매번 작전 실패의 쓴맛만 보았다. 

이번 하마스의 성공적인 기습공격은 곧 이란의 승리로 볼 수 있다. 이제 이란의 딜레마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할 경우 보복하기 위해 키워온 헤즈볼라를 하마스를 구하기 위해 투입할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헤즈볼라가 전면전을 선언하면 미국의 개입도 예상되는 만큼 전쟁의 양상은 미국과 이란의 대결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국면으로 바뀔 수 있다. 20세기 중동의 분쟁은 이스라엘-아랍 전쟁이었다면 21세기는 이스라엘-이란 전쟁 양상이 될 것이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 연구실장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중동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
국 이스라엘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 (Palgrave MacMillan, 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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