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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인간이 가야 할 길
불확실성의 시대, 인간이 가야 할 길
  • 김선진
  • 승인 2023.10.27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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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핸드 지음 | 전대호 옮김 | 더퀘스트 | 320쪽

모든 건 우연의 일치, 통계학적으로 설명 가능
필연성부터 충분함까지 우연의 법칙 다섯 가지

제목만 보면 양자역학을 비판했던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고전 물리학의 마지막 과학자로 알려진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이 말을 물리 세계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만약 절대 의지를 가진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결코 주사위 놀이처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우주를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을 담은 말이다. 결정론적 과학관에 경도된 고전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법도 하다. 

이 책의 원제는 ‘The Improbability Principle’(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의 원칙)으로, 출판사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 목적으로 책의 제목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붙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수많은 우연의 일치나 기적이라 믿는 일들이 통계적 관점에서 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설명한 통계 과학에 관한 책이다. 

통계학은 단순히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패턴을 발견해 미래를 예측하는 역할로 확장되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지평을 연 양자역학이 통계에 기초를 둔 확률적 사고에 의존할 뿐 아니라 소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등장한 인공지능은 데이터 과학을 토대로 최근 ‘생성형 AI’라는 혁신을 만들어냈다. 인공지능뿐 아니라 의학·약학·생명공학·화학 등 현대 과학은 이제 데이터에 기초한 통계적 추론에 의지하지 않고는 발전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얘기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요컨대 통계학은 철저히 데이터 중심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만연한 사이비 과학, 비과학적 사고를 검증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통계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습관적 사고와 고정관념, 편견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대인의 게으른 사고 태도에 경종을 울릴만한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십여 년 전 출간 당시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은 우연한 일에 숨어있는 통계학적 법칙을 대중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점점 더 통계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요즘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로또에 100퍼센트 당첨되는 방법’, ‘월드컵의 결과를 맞히는 문어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비법’, ‘창조주가 없이도 지적인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대중의 호기심을 끌만한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책의 숨은 의도는 이성적 존재라는 우리 인간이 미신·사이비 종교·기적 등 얼마나 많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일깨우는 데 있다.

저자는 다섯 가지 ‘우연의 법칙’(△필연성의 법칙 △큰 수의 법칙 △선택의 법칙 △확률 지렛대의 법칙 △충분함의 법칙)을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떤 우주적 섭리에 의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받아들이는 일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뿐이고 확률 통계적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준다. 이를테면 사소하게는 영화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영화 출연 제안을 받은 책을 서점에서 찾지 못했는데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례부터 영국의 어느 부부가 여행 중 9.11 등 세 번의 세계적 테러에서 살아남은 경험에 이르는 일이 모두 우연의 법칙에 따르면 기적이나 요행이 아니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수천 년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최근 재현되는 사건을 목격하면서 새삼 종교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된다. 심지어 아브라함이라는 같은 조상을 가진 형제 민족이면서도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배타적 종교를 갖게 되었다는 이유로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의 본질적 목적과 상반되게 서로를 원수로 여기는 이율배반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와 같은 종교전쟁은 신(神)과 신(信)의 대결이 아니라 그저 돈과 땅이라는 세속적 욕망을 위한 싸움이 아닐까. 

「이매진」이라는 노래에서 종교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던 존 레논의 마음이 읽힌다. 과학의 시대에도 전쟁과 같은 비이성적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와 이를 극복할 방법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김선진
‘재미 연구서’ 『재미의 본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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