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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창안한 교수, 왜 구글 떠나며 후회할까
딥러닝 창안한 교수, 왜 구글 떠나며 후회할까
  • 김선진
  • 승인 2023.05.18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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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 안정효 옮김 | 소담출판사 | 400쪽

모든 필요 충족돼도 능동성 잃으면 디스토피아
통제되지 않는 과학기술과 문명의 이기는 위험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딥러닝을 창안한 인공지능의 대부 제프리 힌튼(Jeffrey Hinton)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컴퓨터과학과)는 최근 10년간 몸담았던 구글을 사직하면서 밝힌 소회가 세계 지성계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내가 평생 이룬 성과가 후회스럽다”라고 자신이 이룬 평생의 업적을 부정하는듯한 얘기를 한 것이다. 이유는 통제되지 않는 인공지능은 핵무기보다 인류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봤는데, 더 암울한 것은 국가간, 기업간 치열한 개발경쟁으로 인공지능이 사실상 핵무기보다 더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킬러 로봇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통제되지 않는 인공지능은 핵무기에 버금가는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우려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인류 문명의 진보가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는 강력한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생존과 안락함에 기여하기 위해 개발한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고 있는가, 반대로 인간의 자유와 본성을 억압하는가 하는 질문이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바로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비평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의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이다. 1932년에 발표한 SF소설 작품으로 인간성과 인간 존엄성을 상실한 인류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풍자적으로 그린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이라는 상상력의 틀에 의지해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실감나게 묘사하며 자유와 행복, 인간 본성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어 인공지능에 대처하는 인류의 대응에 대해 시의성높은 성찰의 기회와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다. 무엇보다 독특한 점은 소설임에도 미래 예언서에 버금갈 정도로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을 예측하고 있으며, 단순한 스토리를 넘어 철학서에 비견될 정도로 인간의 존재론적 회의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답변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멋진 신세계』는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해 사회의 모든 면을 관리, 지배하고, 인간의 출생과 자유까지 통제하는 미래 문명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헉슬리가 그리는 이 소름 끼치는 미래상이 공상소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기 어려운 점은 인간 존엄의 본질과 인간성이 맞게 될 위기를 다루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한편,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고 비판한다. 이 책은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와 마찬가지로 충격적인 미래 예언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본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와는 다른 관점의 인지적 충격을 던지고 있다. 

현대인들이 당면한 문명의 위험에 대해 오웰과 헉슬리는 문제의 원인을 상반된 관점에서 찾고 있다. 이를테면 오웰은 책이 금지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사람들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아 책을 금지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정보를 차단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너무 많은 정보가 주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진실이 감춰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진실이 무의미한 소식에 파묻힐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무리가 폐쇄적인 문화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쓸데없는 문화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 소설은 한 편의 SF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감나고 흥미진진하다. DNA나 유전자 복제같은 개념이 등장하기도 훨씬 전에 상상만으로 인공수정이나 유전자 조작같은 기술을 배경 스토리로 설정한 것만으로도 작가의 과학적 이해가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출생 전 단계부터 사회적 계급을 만들기 위해 유리병 속에서 온도와 산소, 햇빛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조건반사에 의한 세뇌와 교육이 이뤄지는 장면 묘사는 소름끼칠 정도로 구체적이어서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인류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삶의 행복에 대해 모든 필요가 충족되고 안정된 삶, 모든 불편함과 고통이 제거된 삶,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획득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주어진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설에서 제시된 완벽한 삶은 안전하고 안락하고 안정된 삶을 댓가로 가족과 같은 기본적인 유대 관계, 자유와 평등같은 기본적 가치마저 박탈된 상태로 묘사된다. 쾌락과 만족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고 문제점에 대해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 상태가 과연 행복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지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영국 출신의 작가로서 다방면의 글을 썼다. 사진=위키백과

진보를 유일한 미덕으로 여기며 나날이 발전해온 인류 문명이 코로나 펜데믹을 통해 배운 교훈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요약되는 자본주의의 욕망이 우리 자신의 지속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래 등장인물의 대사는 통제되지 않는 과학 기술과 문명의 이기가 인류의 미래를 반어적으로 ‘멋진 신세계’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삶의 능동성과 주도성을 잃지 않고 ‘건강한 불편함’을 용납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난 차라리 나 자신 그대로 남아 있고 싶어요. 불쾌하더라도 나 자신 그대로요. 아무리 즐겁더라도 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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