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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회의주의가 인류를 구원한다
건강한 회의주의가 인류를 구원한다
  • 김선진
  • 승인 2022.06.17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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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 마이클 셔머 지음 |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571쪽

잘못된 믿음에 끌리는 사고의 오류와 그 이유
전 세계로 확산되는 비이성주의·반지성주의

인류사는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노예사냥, 홀로코스트 등 종교, 이념, 인종주의같은 나름의 신념체계에 기초한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문제는 그것이 과거 15세기 이전의 중세 암흑시대, 20세기 양차 세계대전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8세기 계몽시대를 거쳐 21세기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현재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손해와 고통을 멀리하고 상호공존과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는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전제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근거를 잃었다. 신나찌화하는 우크라이나를 해방해야 한다는 푸틴의 망상에서 비롯된 일이다. 인류의 모든 비극은 결국 잘못된 믿음이 빚은 결과다. 사이비 과학, 미신, 신화, 심령술, 마술이 횡행하고, 민족주의, 인종주의, 가짜뉴스 등 편견, 차별과 혐오가 심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최근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비이성주의, 반지성주의가 있다.

이를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 해명하려고 시도한 책이 바로 ‘과학적 회의주의’를 주창한 심리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마이클 셔머의 이 책이다. 그는 이런 ‘이상한’ 믿음들이 생겨난 이유를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를 구분하고 그 차이를 다루면서 이런 믿음들에 대항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원저는 무려 25년 전인 1997년에 출판된 책이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조차 왜 그토록 이상한 사고를 하고 잘못된 믿음에 끌리는지 사고의 오류가 나타나는 스물 다섯가지의 이유를 제시한 분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설득력이 높다. 저자는 과학서적 중 명저로 꼽히는『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에게 이 책을 헌정하면서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 그리고 우리를 미혹하는 다른 많은 모든 것들을 검증한다는 기치로 회의주의 학회를 설립하고 이 단체에서 발행하는 과학 저널 『스켑틱(Skeptic)』을 창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이런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우연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패턴을 추적하고 인과관계를 찾도록 진화한 까닭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두뇌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믿음 엔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냥을 할 때 바람을 등지고 서면 사냥감이 냄새를 맡기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밭에 소의 배설물을 뿌렸더니 수확이 늘었다. 이렇게 ‘믿음 엔진’을 통해 의미있는 패턴을 찾아낸 우리 선조들은 진화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불행히도 우리 뇌가 항상 의미있는 패턴만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기우제를 지내면 가뭄이 물러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런 마술적 사고는 인과적 사고 메커니즘이 진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부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인간사가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우연히 발생한 일들을 억지스럽게 인과적으로, 경우에 따라선 필연적 결과처럼 받아들이는 성향을 갖게 된 것인가. 이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반사적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또는 삶 일반이 불확실해질수록 사람들은 이 우연성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어하고, 이런 마음이 사이비 과학이나 미신, 미혹에 속기 쉬운 상태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의 바탕엔 세 가지 동기 요소가 작용한다고 본다. 첫째, 편안하고 위로가 되기 때문에 믿는다.(크레도 콘솔란스: 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에 믿는다.) 96년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성인의 96%가 신의 존재를 믿고, 90%가 천국의 존재를 믿고, 79%가 기적을 믿고, 72%가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둘째, 잘못된 믿음은 즉석 만족을 주는 것이 많다. 심리 상담이나 치료는 오래 걸리지만 심령술사나 주술사는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 답을 준다. 셋째,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세상살이를 쉽게 설명해 주는 단순성이 효과를 발휘한다. 과학적 설명은 십중팔구 복잡하고, 알아들으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운명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미신과 믿음은 삶의 복잡한 미로를 시원하게 관통하는 단순한 길을 제공한다.

사회가 혼란하고 미래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미신과 주술에 빠져든다. 심령술사나 점성술사들은 위안과 희망을 얻고 싶어하는 불행한 이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비판 능력을 마비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온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런 주술적 믿음이 사회에 더 확대될까 우려된다. 독심술사의 얘기를 다룬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2020)」라는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냐,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지”라는 대사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확증편향의 제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이와 같은 지적 나태와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한 회의주의를 이도 저도 아니니 아무 것도 믿지 말자는 불가지론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비판적, 과학적 회의주의는 불안한 미래 앞에서 사기꾼의 사탕발림에 현혹되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방패다. 저자는 조직적 비합리주의에 맞서는 이성의 선봉이 바로 회의주의이며,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시민적 품위에 이르도록 해주는 열쇠의 하나도 회의주의라고 설파한다. 복잡한 현실을 단숨에 꿰는 쉽고 단순한 해답을 얻으려는 성향을 조심해야 한다. 단순한 해답은 그리 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들을 믿는 위험을 회피하고 싶다면 저자가 인용한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공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증거와 조화시킬 줄 안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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