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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진짜 선진국이 된 것일까
한국은 진짜 선진국이 된 것일까
  • 김선진
  • 승인 2021.08.17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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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눈 떠보니 선진국』 | 박태웅 지음 | 한빛비즈 | 228쪽

해답보다 질문으로 문제 정의할 줄 알고
모범과 기준을 제시할 때 진짜 선진국

자고나니 유명해졌다는 식으로 눈떠보니 우리가 선진국이 돼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상을 수상하고 BTS가 빌보드 정상을 10주 가까이 점령할 때만 해도 우리 역량이 이제 세계가 알아봐줄만한 수준이 됐나보다 정도였다. 그것도 소위 한류라 지칭되는 문화 산업분야에 한정된 현상으로만.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전세계적 전염병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방역도 우리가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선진국들이 코로나 모범국이라 인정해주는 걸 확인하고서야 이건 일시적인 게 아니라 뭔가 일관된 흐름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알아차리게 됐다. 개인이든 국가든 참된 가치는 항상 위기에 빛나게 되는 법이니까.

급기야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구가 창설된 1964년 이래 57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라 더 놀랍다. 사실 우리는 이미 2019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바 있어 이미 선진국 반열에 있었지만 이번 발표는 우리의 대외적 위상을 만방에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됐다는 증거는 도처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7월 우리 수출실적은 지난 해 같은 달보다 무려 30% 가까이 높은 무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게다가 상반기 중소기업의 수출액도 전 업종에서 고르게 늘어나면서 전년 동기 대비 21.5%나 증가했다. 대외 신인도를 확인하는 국채발행 조달금리,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최저 수준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구심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선진국답지않은 모습들이 여전히 보이고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번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 3관왕이 된 안산 선수에 대한 페미 공격 사례다. 숏컷 헤어스타일과 개인적인 소셜 미디어 메시지를 놓고 맹목적 혐오와 조롱이 이어지는 현상을 두고 외신들은 일제히 선진국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라 비판했다. 근대 이후 백년도 안되는 시간안에 압축 성장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챙겨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해 덩치는 커졌는데 사고수준이 걸맞게 성장하지 못한 문화지체 현상이 드러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그저 선진국이 됐다는 국뽕에 취해있어선 안된다고 문제제기한다. 그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리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오랜 기업 현장 경험과 IT 전문 노하우를 통해 해결책과 대안들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책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적용가능한 현실적 해결 방법도 제공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풍부한 현장 이력이 믿을만 하다. 저자는 한겨레신문에서 기자, 전략기획팀장으로 1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일하다 인터넷 업계로 전향해 KTH, 엠파스 등 20년 넘게 전문 경영인으로 일한 바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방송 신문 등 언론 활동을 하면서 써 온 글들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가 지적한 문제와 대안들은 읽는 내내 무릎을 치게 되는 내용들인데 일례로 몇 가지만 짚어보면 다들 공감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앞보다 뒤에 훨씬 많은 나라가 있는 상태, 베낄 선례가 점점 줄어들 때 선진국이 된다. 해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무턱대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과 ‘왜’를 물어야 한다. 언제나 문제를 정의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데이터 기반 사회에서 숫자가 말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이 말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국가 CIO와 CDO는 이를 위해서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사회의 보상체계와 평가기준이 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선진국이다. 합리적인 시민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협상과 타협의 태도가 몸에 밴 시민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신뢰자본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 규제는 과감히 풀되 징벌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과감히 하자. 죄를 짓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용을 물릴 게 아니라, 죄를 지은 몇몇 특히 화이트칼라 엘리트들에게 허리가 부러질 정도의 징벌적 배상제를 하자.”

기술한 사회적 문제와 더불어 IT 전문가답게 최근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을 별도의 장으로 다룬 점도 흥미롭다. 저자는 여기서 AI 시대의 의미, AI가 안고 있는 위험과 기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선진국이란 말 그대로 더 이상 우리 앞에 참조할만한 모범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베끼는 방식이 아니라 선도적으로 모범과 기준을 제시해야 할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의 부제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위해 우리가 ‘이미 선진국이 되었지만 아직은 아닌(already, but not yet)’ 것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무엇을 바꿔야할 지 제시한 그의 제언에 한번쯤 귀기울여 봄직하다.

 

 

김선진
경성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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